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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천 누들로드

동인천 칼국수거리의 칼국수와 신포시장 쫄면



인천은 다양한 식도락의 도시며 맛 골목의 천국이다. 애주가들의 발길을 이끈 50년 역사의 동인천 삼치 거리부터 용현동 물텀벙이 거리, 해물탕 거리, 송도 꽃게 거리, 연락골 추어마을, 송현동 순대 골목, 연안부두 밴댕이 회무침 거리, 만석동 주꾸미 거리 외에도 화평동 세수대야 냉면 거리, 동인천 칼국수 거리, 북성동 차이나타운 짜장면 거리, 신포동 쫄면까지 누들로드가 굽이굽이 이어지는 미식의 도시다.     



 


동인천 신포동 북쪽에는 용동 큰 우물이라는 특별한 동네가 있다. 옛날 이곳에 있던 커다란 우물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물맛이 뛰어나 수많은 양조장과 술집이 주변에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유흥가가 형성됨에 따라 해장을 위한 칼국수 집이 하나둘 생기면서 골목이 만들어졌다는데, 초가집과 더불어 새집 칼국수, 원미 칼국수가 긴 세월을 함께 이어가는 중이다. 40년의 역사를 이어가는 칼국수 골목은 직접 반죽한 투박한 면발에 시원한 바지락을 듬뿍 넣어 옛날식 칼국수를 맛볼 수 있다.      



용동 큰 우물마을의 칼국수 거리

     

신포동 길병원 부근 골목에는 주변 유흥가의 빛바랜 흥망성쇠에도 불구하고 40여 년이 넘도록 제 자리를 지키는 노포가 몇 곳 남아 있다. 남루하나 소박한 골목에는 여전히 구수하게 멸치국물 냄새와 국수 삶는 냄새가 머물러 있다. 주인장들은 대부분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이다.




세월은 무심히 흘러갔어도 칼국수 맛은 변함없을 거라는 기대감이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노포의 정겨운 풍경이 물씬 풍기는 작은 가게 입구에서 실내를 살피다 주인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어서 오세요."

자, 이제 칼국수만 주문하면 될 일이다.



       

해물 칼국수 한 그릇에 만두 한 접시를 주문한다. 혼밥 한 끼에는 넘칠지라도 직접 빚은 손만두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칼국수가 끓는 동안 가게 안을 둘러본다. 누군가의 추억을 소환해내기에 충분한, 손때 묻은 옛 물건들이 식당 구석구석에 놓여 세월의 무심함을 떠오르게 한다.




은은하게 퍼지는 멸치육수 냄새에 칼국수도 추억도 말랑하게 익어갈 무렵, 주인 할머니가 혼잣말처럼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기도 예전 같지 않아.. 점심시간이면 칼국수 먹으려고 저기 우물까지 줄을 서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젠 어딜 가나 칼국수가 제일 흔한 음식이니 예까지 누가 오겠어.. " 무심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나 회한은 느껴지지 않는다. 세상살이의 욕심을 내려놓은 담담한 목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반찬과 함께 서둘러 나온 보리밥에 열무김치와 고추장을 넣어 애피타이저로 후딱 비우고 나니 하얀 연기를 폴폴 날리며 칼국수 한 그릇이 나왔다.      




평범한 비주얼의 칼국수는 뜻밖에 담백하고 시원하다. 손으로 빚은 만두는 뜨끈한 칼국수 속에도 통통하게 숨어있다. 맑고 시원한 바지락 국물과 만두가 만나 풍부한 맛이 느껴진다.




헛헛했던 속이 든든하게 채워지면, 낯선 동네의 어색하던 첫인상도 느긋해지고 기분좋은 노곤함이 몰려온다. 어느 비 오는 날에 생각날 것만 같아 그릇에 남은 국물을 마저 들이켜고 일어난다. 할머니의 무심한 눈인사가 담백한 국물만큼이나 오래오래 기억날 듯하다.




신포시장의 쫄면은 인천의 향토음식으로 사랑받는다. 1970년대 초 인천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 쫄면은 쫄깃한 면발과 매콤 달콤 새콤한 양념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인천시 중구 경동에 있는 제면소인 광신제면은 우연한 계기로 쫄면을 탄생시킨 곳으로 유명하다.

냉면발 주문에 바쁜 나머지 면을 뽑는 체를 잘못 끼워 실수로 굵은 면발이 나온 것이 쫄면의 시작이다. 우연히 시작된 쫄면이지만, 오랜 세월 쫄면의 식감과 풍미를 살리는 노력로 지금의 쫄면을 만들었다. 신포시장에서 먹는 쫄면은 그래서 더 특별다.




신포시장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전통시장이다. 인천 최초의 근대적 상설시장이고 개항장을 통해 온갖 물건들이 들어온 곳이다. 신포시장은 볼거리도 많지만, 먹거리로 유명한 곳이다. 원조신포닭강정과 신포순대 소문이 자자하지만, 쫄면이 맛있는 분식집 인기도 빠뜨릴 수 없다.

콩나물이 아삭한 쫄면을 맛있게 먹다보면 모락모락 김을 내는 만두의 비주얼에 마음이 흔들린다. 얇은 피속에 비치는 고기만둣속과 김치만둣속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어 한 접시 시켜 맛을 보게 된다. 누들로드, 차이나타운의 짜장면은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다.




 위 기사는 2015년 사보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이후 정보는 변경되었을 수 있으니 방문하기 전에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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