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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에서 유유자적 정자 여행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담양에 가면 시간도 천천히 흘러간다. 창창하게 이어지는 푸른 숲을 지나 낡고 부드러운 툇마루에 앉아 긴장을 풀면 스마트 폰과 시계도 숨을 죽인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더없이 감미롭게 느껴지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고 아무 욕심도 생기지 않아 좋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로움, 담양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정자에서 찾았다.  


  


붉은 백일홍의 꿈명옥헌 

스물아홉 그루의 배롱나무가 석 달하고도 열흘 동안 붉은 꽃을 피우는 원림이 있다. 한여름에  붉은 꽃잎의 유혹이 시작되는 담양의 명옥헌(鳴玉軒)이다. 고서면 산덕리 후산마을 자락의 명옥헌으로 가는 길엔 가로수가 온통 배롱나무다. 붉은 꽃으로 배롱나무가 활활 타오른다. 연분홍에서 진분홍, 보랏빛으로 길가의 배롱나무들이 눈부신 꽃다발을 피우기 시작할 즈음에도 명옥헌은 조금 느리고 차분하게 아직 초록빛이 많다. 



명옥헌을 둘러싸고 있는 배롱나무와 붉은 소나무 숲은 명승 제58호의 주인공이다. 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곳, 명승지로 지정될 만큼 명옥헌 원림의 경관은 빼어나다. 정자 누마루에 앉아 땀을 식히고 한숨 돌리면 여름날의 배롱나무가 꽃 대궐을 이룬다는 연못이 보인다. 네모난 연못에 동그란 섬이 있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그곳에 한그루의 배롱나무가 꽃을 피운다. 숲의 초록빛에 눈이 맑아지고 그림 같은 풍경에 근심을 잊고 서늘한 산바람에 마음이 착해진다. 



장계 오이정(1619-1655)은 부친인 명곡 오희도(1583-1623)가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은거하다가 다시 벼슬에 나간 지 1년에 유명을 달리 하자, 그곳에 명옥헌을 짓고 부친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숲 속에 정자를 짓고 앞뒤로 네모난 연못을 팠는데, 계곡 물이 연못을 채우고 그 물이 아래 연못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옥에 부딪히는 것 같다 하여 연못 앞에 세운 정자 이름을 명옥헌이라 지었다. 꽃 핀 지 열흘 만에 떨어지고 백일동안 매일 새로운 꽃잎을 피운다는 배롱나무, 부친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처럼 연못으로 후두두 꽃잎을 떨구는 풍경이 애틋하다. 


계곡옆 암반에 우암 송시열이 새겨놓은 글씨, 명옥헌 계축



맑고 깨끗한 정원소쇄원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원림이며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소쇄원(瀟灑園)의 시작은 푸른 대나무 숲을 지나는 일이다. 곧게 자란 대나무 숲을 걸으며 마음은 차분해지고 머리는 맑아진다. 하늘을 가렸던 대나무 길이 끝나면 환한 소쇄원의 세상이 나타난다. 자연과 인공이 적절히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그 자리에 원래 있었던 하늘과 나무와 물처럼 바람에 말갛게 닳은 정자마저도 자연의 일부로 느껴진다. 명승 제40호인 소쇄원의 주변은 대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숲으로 울창하다. 


사방이 탁 트여있는 광풍각은 소쇄원에서 가장 시원하다


소쇄옹 양산보(1503-1557)는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되자 일찌감치 세상의 뜻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가 은둔생활을 하며 소쇄원을 조성했다. 속세를 떠나듯 청정 대숲을 지나면 대봉대가 나오고 애양단 담장의 동백나무를 지난다. 오곡문 담장을 가로질러 광풍각과 제월당 쪽으로 가려면 외나무다리를 건넌다.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면 마음도 몸가짐도 차분해진다. 어느 곳 하나 소홀하게 지나치지 않았을 소쇄원의 주인, 양산보의 발자취가 느껴진다. 


 

계곡과 숲 속에 있어 소쇄원에서 가장 시원한 공간인 광풍각은 사방이 탁 트여서 마루에 앉아 있으면 온몸으로 바람이 들어온다. 광풍각은 조선 시대 학자 김인후가 만든 시문집 소쇄원 48영 중에서 제2영에 ‘침계문방’이라 하여 머리맡에서 계곡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선비의 방으로 표현했다. 


제월당에서 쉬고 있는 가족의 모습이 다정하다


광풍각이 사교의 공간이라면 사색의 공간이었던 제월당은 소쇄원의 풍광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공간이다. 아쉬운 대로 벽에 잠시 기대어 눈만 감아도 소쇄원의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는 여전히 감동적이다. 스승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칠 때마다 깊은 슬픔을 다독여 주었을 부드러운 바람과 은은한 달빛을 상상하는 시간이다. 


제월당 두 번째 마루 위에 걸린 소쇄원 48영 현판



풍류와 문학식영정과 송강정 

성산 언덕 노송 사이로 우뚝 서 있는 작은 정자는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의미를 가진 식영정(息影亭)이다. 명승 제57호이며 전라남도 기념물 제1-1호다. 서하당 김성원(1525-1597)이 스승이며 장인인 석천 임억령(1496-1568)을 위해 지은 정자다. 


식영정 아래 부용당에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여유롭다


<어떤 지날 손이 성산에 머물면서/ 서하당 식영정 주인아 / 내 말 듣소/ 인간 세상에 좋은 일 많건만은/ 어찌 한 강산을 그처럼 낫게 여겨/ 적막한 산중에 들어 아니 나오시는고>로 시작되는 정철의 <성산별곡>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정자 문화에는 가사문학을 빼놓을 수 없다. 식영정이 사랑받았던 까닭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성산 주변의 자연과 그곳에서 풍류를 즐겼던 선비들의 문화 덕분이었다. 식영정 사선이라 불렸던 임억령, 김성원, 고경명, 정철은 성산의 절경 20곳을 택해 20수씩 모두 80수의 식영정 이십영을 지었다. 이것은 후에 정철의 성산별곡이 만들어지는 데 기틀이 되었다.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의미를 담은 식영정


송강 정철이 정권 다툼을 피해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인 성산으로 내려와 4년 동안 지냈던 송강정은 정자 정면에 송강정, 측면에 죽록정이라는 두 개의 현판을 달고 있다. 송강 정철이 송강정에 머물며 지은 ‘사미인곡’은 조정에서 물러나 왕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여인의 마음에 비유하여 썼는데, 그 시구는 남녀의 열애보다 더 애절하다. 


돌계단과 너른 마루가 아름다운 서하당


한국 가사문학관 전시실에 가면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보았던 가사문학이 눈앞에 실제로 펼쳐진다. 담양의 가사문학은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외에도 정식의 축산별곡, 유도관의 경술가 등 18편의 가사가 전승되고 있어 가사문학의 산실이라 할 만하다. 가사문학관의 전시품으로는 가사문학 자료를 비롯해 송순의 면앙집, 분재기 등과 정철의 송강집 및 친필유묵 등 귀한 유물을 만날 수 있다.


송강 정철이 사미인곡을 지은 송강정


글과 사진 | 민혜경(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5년 7월에 작성한 것으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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