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얼굴에 있다
우리는 가끔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요즘 무슨 일 있니? 니 얼굴에 다 쓰여 있어”
그러면 우리는 ‘뭐야 어떻게 알았지..’ 싶은 마음에 손으로 얼굴을 만져보기도 하고, ‘맞아.. 내가 요새 그렇게 살지’ 하며 그 얘기를 통해 내 상태를 깨닫기도 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내 삶을 꿰뚫어 본다는 얘기다.
남들이 어떻게 내 마음을, 내 상황을 알아챌 수 있을까?
정답은 표정이다.
열길 물속보다 깊은 사람 속마음. 구체적인 내막까지야 알 순 없지만 무의식 중에 드러난 표정을 보면 대강의 흐름은 파악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결과론적 이야기.
이 결론을 내기까지 나는 부끄러운 일들을 많이 겪었다.
슬럼프에 빠졌을 때가 있었다.
워낙 치열하게 일했던 경험이 별로 없어서 슬럼프라고 말하기가 슬럼프에게 미안하지만 '위축' '자책' '무기력' '집중력 저하' 등의 감정을 한데 묶으면 일어나는 상태가 슬럼프이니 그 말을 써보겠다.
당시에는 모든 일이 어렵고 안 풀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서 작업을 하면 맥락이 안 보이고, 집중력이 떨어져서 항상 작업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바쁜 현장에서는 일을 '찾아서' 해야 하는데 난 왜 시키는 것만 하고 몸만 바쁘게 뛰어다닐까. 아.. 멍청하다.. 싶은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또 한마디를 해도 정확하고 쿨하게 전달하고 싶은데 입에서 나오는 말은 두서없이 주절주절.
걷는 걸음걸이 조차 일 못하는 사람이 걷는 걸음걸이 같았다. 그런 게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근데 그런 게 있다)
나 빼고 다 잘하고 있는 느낌.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을까 한심할까 위축되는 남들의 시선.
주변인 한 명 한 명이 부럽기만 했다.
나만 왜 이럴까.
나만 왜 이럴까.
근데 신기한 건 그렇게 자책하면서도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정확히 짚어지지 않았다.
직장 생활이 다 그렇지 한잔 술에 털어버려~ 하면서 깊은 고민을 미루기도 했고, 다시 돌아온 아침부터는 일에 치여 현실 직시할 시간이 모자랐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안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부러움이 습관이 되던 그때 무의식적으로 주변 사람들을 많이 관찰했다.
일단 내 위에 사수.
눈빛이 아주 똘! 망! 한 사람이다.
순둥순둥 부드러운 눈매이지만 눈동자가 또렷하고 의견을 말할 때 항상 눈에 확신을 가득 담고 전하는 사람이다.
멍 때리는 표정을 본 적이 없고, 항상 새로운 생각을 하느라 골똘하거나 그 이후의 확신에 찬 표정의 반복.
그런 강렬한 눈빛을 볼 때마다 '전생에 맹수였음이 틀림없어... 그녀는 표범이었을까 치타였을까' 라며 쓸데없는 고민까지 하게 한 사람이었다.
후배 한 명이 있었다.
보송보송 뽀얀 피부에 무심하게 뜬 시크한 눈빛, 앙다문 작은 입이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다.
시크한 눈빛엔 어려도 카리스마라는 게 묻어 있었다.
명문대 체대를 졸업한 그녀에게는 깡다구라는 아우라도 비쳤다.
우선 그녀의 눈빛은 눈치를 보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항상 무심하게 고정되어 있는 그 눈빛이 문득 변하는 그 순간! 뭐지? 지금 어떤 감정인 거지? 싶어 굉장히 신경이 쓰였다. 나보다 더 선배들 중에서도 그녀 눈치를 보는 이들이 있었다.
또 움직임이 크지 않은 작은 입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존재감이 있었다. 저 입에서 과연 어떤 말이 나올까? 항상 앙 다물어 있던 그 입이 한마디 하려고 "어~" 하고 숨을 내뱉으면 거의 다 그 입에 주목을 했던 것 같다.
또 기억나는 동갑내기 동료 한 명이 있다.
소피 마르소를 닮아 예쁘게 처진 눈에 부스스한 펌이지만 좁고 작은 얼굴이라 그게 되려 분위기 있었던.
사람을 보는 눈빛이 참 부드러웠고 얼굴 전체에서 여성미가 흐르는 타입이었다.
처진 눈 생김새 때문인가.. 싶어 보면 눈빛 자체가 유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반전 없이 고요하다.
온화한 눈웃음과 부드러운 표정 때문에 처진 눈이 돋보였던 거지 눈의 생김새 때문에 그런 인상이 풍기는 건 아니었다.
바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할 일을 하고 어디 가서 누구한테 안 좋은 소리는 절대 안들을 것 같던 적당한 미소가 고왔던 그 표정.
역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나는 뭔가?
나는 과연 무엇을 무기로 살아가야 하는가... 멘붕 속에 살아가던 어느 날 복도를 지나가다가 문득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너무 뚱해! 바보 같은데? 하는 인상을 받았다. 짧았지만 강렬하게 꽂힌 그 표정.
약간의 각성 이후 다른 거울 속, 또 다른 쇼윈도 속에서 문득문득 마주한 내 모습은 무기력한데 주눅까지 든 한심한... 딱 그 정도의 인간이었다.
정제되지 않은 내 표정은 저렇구나.
내가 저러고 다니는구나.
그땐 자괴감이나 실망보다 오히려 신기했다.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내 표정을 보니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왜 일을 잘 못하는 거지?"라고 질문만 던져오던 어느 날
계산대에서 나를 바코드로 찍어보니
삑! 무기력
삑! 뚱함
삑! 확신 없음
삑! 귀찮음
삑! 게으름
삑! 개선보단 회피
삑!
삑!
삑!
내 값어치에 대한 영수증이 줄줄이 찍혀 나오고 있었다.
한마디로 견적이 나왔던 것이다.
표정 하나로 읽을 수 있었던 내 당시의 값어치가 저런 수준이었다.
아.. 이거였구나.
그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그때 이 맹한 표정이, 구부정한 자세가 나 스스로를 그렇게 만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빛 좋은 개살구가 되자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 가장 쉽게 당장이라도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표정뿐이었다. 표정이라도 바꿔보자.
날 모르는 사람에게 조차 "내가 이렇게 한심해요~"하고 광고할 필요 없으니 잘하는 척이라도 하자! 결심했다.
그렇게 나는 좀 더 나를 관찰하기로 했다.
역전의 시작은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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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꿰뚫어 보는 셀프 관찰 팁
나의 역전기는 2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