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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 Jan 26. 2022

2억 받고 독립한 그저 그런 '쇠수저 집 첫째 딸'

자자, 이제 돈 쓸 일이 늘어납니다~ 둘째 드루와 드루와!

오늘의 물건

- 가습기 : $45

- 아기 세탁 세제 : $30

- 아기 젖병 세제 : $20

- 샤워기 라인 : $30

- 세 달치 기저귀 : $170

- 크립 매트리스 : $100


$395(약 47만 원)






5살 무렵에는 엄마 아빠의 맞벌이로 외갓집에 맡겨진 적이 있었고, 중학교 1학년까지는 전셋집에 세 들어 살며 2,3년에 한 번씩은 이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중2부터는 인근에 우리 가게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장사가 번창하여 구겨진 형편이 급격히 피어나는 바람에 아파트를 사고, 아빠는 그랜저를 몰고 나한테는 제일 비싼 sony cd  플레이어를 사주셨다. 밤이면 돈통에 현금을 세느라 한참이 걸리던 시절이 지나고 고등학교 때 맞이한 IMF의 여파로 짧고 강렬했던 아빠의 수입 전성기는 끝이 났다. 나는 대학 등록금을 집에서 전액 받았지만 7살 어린 동생은 학자금 대출을 받아 다닌 걸로 보아 나의 졸업 즈음해서는 다시 허리띠를 졸라 매야 되는 형편이 된 것 같다.


엄마와 아빠는 가난과 부자를 오가는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이었겠지만 나는 형편이 구겨져 있었을 때나, 피어 있었을 때나 학교 다니고, 친구들하고 놀기 바빴고, 놀다 심심하면 간식  먹을 용돈만으로 그저 즐겁던.


 '가세' 지장을 크게 받지 않았으며, 그런 의미에서 누구의 집에나 있는 그저 그런 평범한 '쇠수저' 집안이 아닐까 싶다.


대학 졸업 무렵에 아빠가 나를 불러 말씀하셨다.


"니 밑으로 2억이 들어갔다 2억!"


헉! 20대 초반, 물론 지금도 큰 금액이지만 그땐 더 어마어마하게 다가왔던 상상 속의 거~액! "2억"


금수저도 아니고 은수저도 못된(물론 더 들겠지만) 쇠수저 주제인 내가 2억???


내가 한 거라곤 떡볶이 사 먹고, 좋아하는 가수 CD랑 굿즈들 좀 사 모았고, 목돈으로 대학 등록금과 자취방 월세, 용돈이 있을 텐데 아무리 계산을 때려봐도 2억이라고??


'혹시!! 대학만 들어가면 차 사주고, 성형수술도 시켜주겠다던 아빠의 약속이 4년째 미뤄지고 있어 그 약속은 못 지킬 거 같으니 얼렁뚱땅 그동안 들어간 돈을 뻥튀기하여 뻥을 치시는 거 아닐까?'


'결혼 자금을 포함시켰나...?'


 후로도  오랫동안 "에이~ 말도  ~" 하면서 믿지 않았던 전설 같은 2억이...결혼을 하고~ 첫째 아이를 낳고~ 첫째를 디폴트 값으로  태어날 둘째 양육비를 따져보니 이건 !! 2억이 우습다 우스워.  


'딸린 입이 얼만데...' 할 때 그 작은 다섯 살짜리 입에 얼마나 떠 먹여 줄게 많은지~ 이제야 아빠의 계산법이 결코 틀리거나 허풍이 가미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럼 자, 다시 한번 부모의 마음에서 내가 받은 2억의 정체를 되짚어 보자.


이미 알고 있는 등록금에 월세, 용돈을 크게 두고  사이사이에 


- 1살부터 시작된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몇 배나 더 비싼 겨울까지의 계절별 옷들 25년 치

- 5살 때부터 시작되어 20년간 이어진 학원비, 교제비

- 토요일마다  마리씩  혼자  마리씩 먹었던 치킨값 (맛있었지)

- 용돈 이외에도 정기적으로 보내주던 반찬비 및 추가 용돈들


잡다하게 들어가면 끝도 없는 지출 항목의 마지막에

80% 이상 내 밑으로 몰래 들어온 엄마의 비상금까지 합하면 2억 + 알파가 되고도 남을 것이었다.


받는 자식의 마음과 주는 부모의 마음은 달라

어렸을 때는 왜 내가 우기지도 않은 최신식 CD Player를 사주셨을까 생각했지만 부모가 되고 보니 '여력'이 된다면 더 좋은 거, 비싼 거 자식새끼한테 해주고 싶었던 그 심정 너무나 이해가 간다. (아빠의 차와 성형수술 공약도 거짓말은 아니었을 듯)


 받는 자식의 체감과 주는 부모의 실제 지출 내역 또한 달라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지출들도 크게 있었을 것이다 


아... 이 금전의 온도 차이라니...  

(엄마 아빠 고생하셨수)


어렸을 때부터 짧게 쓰고 버릴 것들에 대해 큰 물욕이 없었던 나는 엄마가 되어서도 어린아이가 짧게 쓸 것들에 대해서 짠순이가 되었지만 둘째가 태어나기 전달, 지출이 슝슝 늘어간다.


사실 당장에 늘어나는 기저귀 , 분유값은 상관이 없으나 내가 정말 지원해 주고 싶은 아이들을 위한 수많은 '경험치' 만들어 주는 데에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사실 아찔해진다.


일을 더 하고 싶어 지고, 내가 사랑하는 횟집 외식을 고민하게 되고, 코스트코 마니아 남편에게 눈치를 주게 되고, 더불어 풍성했던 펜트리가 조촐해지고, 내가 좋아하는 캐시미어는 세일이 아니면 매장에서 만져 보지도 않고, 빛바랜 탐스 신발을 보고 아버님이 짚신도 아니고 저게 뭐냐며 신발 사라고 주신 큰 용돈 중 일부만 신발을 사고 나머지는 아이 주식 계좌에 넣고 싶어 지고…


그래서 이래저래 쇠수저집 첫째 딸은 막연히 생각이 많아진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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