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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 Jan 05. 2022

아이에게 희생 안하는 엄마의 변

intp의 특징 중 하나,

철학을 좋아하고 하나에 관심이 생기면 끝까지 판다.


인팁인의 특징에 걸맞게 어려서부터 "나는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라는 철학적인 질문이 늘 있었다.

 

하찮은 미물일 뿐인가?

나만의 가치와 역할, 사명이 있는 것인가?


우주에 떠 있는 별의 개수를 보며,

우리 몸속에서 있는 무수한 세포 수를 보며

그 수많은 것들 중에 나는 고작 1에 불과하니 그냥 목숨 끊어질 때까지 대충 살아내도 문제없는 건가 싶은 생각도 있었고


사람은 자기가 이루고 싶은 뜻이 있어 현생을 스스로 택한다는 소설 속, 최면술사들의 이야기와

몸속 작은 세포 하나지만 내가 봤을 때나 작을 뿐이지 세포 스스로는 순간을 열심히 살아 내고 있으며, 몸속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면,


그럼 나는 어떤 역할이 있을까? 다시 질문 속으로 빠져 든다.


그래서 한때 철학 고전을 수집하고 다녔고(읽지는 않음)

나름 이렇게 저렇게 글도 써서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럼 우리는 왜 사는 거야?라는 질문의 답으로 연결시키기도 했다


그러다 30대 초반쯤 우스운 인생 고민 하나를 크게,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는데

그건 내가 일하는 시간, 특히 회의시간에 일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진지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장난을 자꾸 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에 대한 고민이었다


특히, 상사나 선배들이 하는 말에 말꼬리를 잡고 싶고, 농담을 하고 싶어 해서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철딱서니 없게 그것도 고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 진지해서 나는 도대체 왜 이런 것인가... 이런 정신 상태로 험한 이 세계에서 버틸 수 있을지, 이런 이상한 애가 결혼은 할 수 있을지 너무 두려워졌던 시기였다.


결론은 불편한 상황을 깨서 더 이상 긴장하고 싶지 않은 내 정서적 불안감도 문제였고, 뭔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회피하고자 했던 것도 원인이었던 듯싶다.


그런 문제들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순간 회의시간에 딴생각이나 장난도 덜해지고 더 집중할 수 있었는데 무엇보다 가장 내 마음이 편안해진 계기는 나에 대한 큰 명제 하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말 나라는 존재의 특징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아.. 어쩌면 나는 정말 이렇게 까불고 즐기려고 세상에 태어났구나"


중요한 건 두 번,

"아.. 나는 재밌으려고 이 세상에 태어났구나"


학교 때 선생님한테 제일 많이 들었던 말 "그만 까불어라"

집에서 제일 많이 들었던 말 "또 재밌나? 또 재밌어?"

친구들한테 제일 많이 들었던 말 "8절까지 그만해"


내 존재 의미는 내가 사는 세상을 재미있게 즐기려고 태어난 거구나! 그래서 그렇게 까불었던 거구나! 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재밌고 싶었던 내가 철이 없는 게 아니고 그냥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인정을 하게 되니까 마음이 너무 편안해졌다


나에 대한 이해로 샤워를 한 느낌이랄까

한방에 속이 시원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인생을 더 재미있게 즐기며, 내가 재밌어하는 부분을 찾고 대단한 결과에 가치를 두기보다 이 순간 재미를 중요하게 여기며 새로운 도전을 많이 해나가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살아도 제대로 살아진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나니 내가 재미있는 것들을 매! 우! 많이 줄여야 했다  


갑자기 내 인생에 떨어진 '희생' 덩어리

'희생'이라는 말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 베스트 10>이자 <가치를 이해 못 하겠는 단어 베스트 5>안에 들어가는데, 그 '희생'으로 접근하니 육아가 이만저만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이 녀석 때문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꿀잠도 포기해야 하고,  

술 약속도 포기해야 하고

뭐 자꾸 눈앞에서 딸랑이를 흔들어 줘야 되는데 세상 재미없고

태교책도 뭔 이런 당연한 소리를? 혹은 이건 아니지 싶은 구닥다리 같은 소리뿐이고

몸조리할 때도 내가 왜 한 달 내내 미역국을 먹어야 하지? 성질이 나서 숟가락을 실제로 던진 적도 있었다


그래도 이런 생각들이 하루 종일을 지배하지는 않았고, 순간순간 치고 올라오는 거라 다행이라면 다행.


그래서 그때마다 그래! 즐기자! 난 즐기려고 태어났으니까 하며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나에게 새로 닥친 일을 '희생'이 아닌 '재미'로 치환시키며


배가 절정에 달했던 만삭 때는 배에 연필이나 리모컨 등 가벼운 물건을 거치해 둘 수 있어 좋다며 남편에게 불편하고 뚱뚱한 배를 자랑하고  


새벽 수유를 마치고 아이를 안아 재울 때 새벽녘 창밖을 보며 슈퍼 주니어의 'sorry sorry'를 조용히 읊조리며 바운스 바운스 타며 아이를 재우고 (신남 + 다이어트 효과)


태교는 태교책으로 도저히 할 수 없어 차라리 더 재미있는 '일'에 더 집중하는 것으로 창의력, 사고력, 문제 해결 공감 능력을 키우는데 주력했고


아이에게 이것저것 가르쳐주며 밖에서는 할 수 없는 '꼰대 짓'을 해가며 카타르시스 하며 그렇게 살기를 어언 5년째.


어느새 아이는 사랑이고, 재미고, 기쁨이고, 내 존재의 일부로 소중하게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 내가 까불고 재밌으려고만 이 세상에 태어난 건 아니구나.

이 아이도 어떤 가치를 펼치려고 태어났을 텐데 나를 통해 세상에 태어났으니 스스로 일들을 잘 해낼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그 혼자의 삶을 더 잘 살 수 있도록 품 안에 있을 동안 잘 키워야겠구나 하는 사명감이 생겼다


우리 아이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어서 세상에 태어났을까?


나는 아이로 인해 삶이 더 뚱뚱하게, 풍성하게, 풍족하게, 풍요롭게 재밌어졌으니 나도 아이가 자기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 윈윈이 되어야 할 텐데.

우리는 그렇게 윈윈 하기 위해 약속된 인연일 텐데 싶은 생각이 요즘 들어 많이 든다


그리고 한 달 후면 또 한 명이 나를 통해 세상에 나온다.


이 아이도 언젠가 하늘에서 너는 나에게 즐거움을 다오, 나는 너에게 너의 가치를 주마~하며 약속된 인연이 아닐까 소설 같은 상상을 해본다.

"오케이 콜! 두 번째 딸 오케이~!?" 이런 식으로.


두 번째 아이를 위해 그 아이에게 맞는 가치를 줘야 할 것이다. 왠지 그렇게 약속되어 있었을 것 같다.

궁금하다. 우리 둘째는 어떤 아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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