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을 잘한다.
좋아해서가 아니다.
잘해야 해서 잘한다.
처음 이 일을 택한 건
돈 때문이었다.
꿈도 아니었고
적성도 아니었고
야망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냥 계산이었다.
통장 잔고,
고정지출,
앞으로의 몇 년.
그 숫자들 사이에서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했을 뿐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하기 싫은 일을
이상하게도 나는 잘했다.
대충하면 덜 힘들 텐데
끝까지 붙잡고 늘어졌다.
맡으면 완성했다.
문제는 내가 해결했다.
일은 항상 제시간에 나갔다.
그리고 사람들은 알게 됐다.
“저 사람은 된다.”
그때부터 일이 늘었다.
정치는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관심이 없다.
누가 누구랑 친한지,
누가 어느 줄에 서 있는지.
그 시간에
나는 파일을 열어둔다.
결과로 말하면 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했다.
결과는 항상 좋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승진은 아니었다.
어느 날 알았다.
회사는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일을 보이게 하는 사람을 기억한다는 걸.
나는 보이지 않는 쪽이었다.
일은 내 책상에서 시작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끝났다.
나는 그걸 따지지 않았다.
인정욕이 없었다.
그저
주어진 일을
흐트러지지 않게 끝내는 게
내 기준이었다.
문제는
그 기준이
나를 가두기 시작했다는 거다.
“이건 당신이 해야 안정적이에요.”
“이번에도 맡아주세요.”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욕심이 없어서.
야망이 없어서.
그냥 일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연봉은 조금 올랐다.
직함도 조금 달라졌다.
하지만 일은
계속 늘었다.
어느 순간 깨닫는다.
나는 이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싫어한다.
그저 잘할 뿐이다.
그리고 그 ‘잘함’이
나를 여기 묶어두고 있다.
인정받아도 기쁘지 않고
밀려나도 억울하지 않다.
대신
조용히 지친다.
이게 제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나는 오늘도 일을 잘했다.
누군가는 그 결과로
회의에서 칭찬을 받았을 것이다.
나는 파일을 닫고
불을 끈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열정이 아니라
책임감이었다.
그리고 책임감은
사람을 오래 버티게 하지만
행복하게 하진 않는다.
그래도 내일 출근한다.
돈은 여전히 필요하고
나는 여전히 잘할 테니까.
아마 이게
제일 현실적인 직장인의 얼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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