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이 무용지물이 된 시대
작년 이맘때만 해도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다. 17억. 내가 모은 현금과 대출을 영혼까지 끌어모으면 그 성벽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 성벽은 27억이라는 기괴한 높이로 솟구쳐 올랐다. 이제는 손을 뻗는 것조차 무의미해진, 닿을 수 없는 꿈이 되어버렸다.
대한민국에서 노력한다는 것은, 뒤로 가는 런닝머신 위를 전력 질주하는 것과 같다.
남들보다 더 좋은 학벌을 얻기 위해 젊음을 저당 잡혔고, 남들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기 위해 내 몸과 마음을 갈아 넣었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11억이라는 실탄을 만들었지만, 세상은 비웃듯 보란 듯이 기회의 문을 닫아버렸다. 내가 한 걸음 나아갈 때, 집값은 열 걸음 달아났다. 노력하면 할수록 목표는 더 멀어지는 이 지독한 역설 앞에서, 내가 믿어온 '성실'이라는 종교는 처참히 파산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숨이 막힌다. 나보다 덜 노력하고, 비슷한 연봉을 받으면서도 그저 10년 전 '운 좋게' 등기를 쳤던 이들은 30억 자산가가 되어 여유를 부린다. 그들이 웃으며 회사를 다닐 때, 나는 번아웃이 올 때까지 나를 채찍질했다. 그 결과가 고작 자산 순위 하위권과 깊어진 우울증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엔 내 지난 세월이 너무나 억울하다.
젊은 시절엔 희망이라는 게 있었다. 지금은 조금 힘들어도 언젠가는 내 가족 편히 쉴 '서울의 번듯한 내 집' 하나는 가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 하지만 마흔다섯, 이제 나에게 남은 건 줄어든 기력과 줄어든 은퇴 시계뿐이다.
"이러다 죽을 때까지 일만 하다, 은퇴조차 못 하는 건 아닐까?"
이 공포가 밤마다 목을 조른다. 11억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들고도 서울 한복판에서 미아가 된 기분. 번아웃으로 무너진 몸을 이끌고 내일 또 출근길에 올라야 하지만, 이제는 내가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조차 모르겠다.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찬 건, '바보처럼 살았다'는 자책과 끝을 알 수 없는 우울의 늪이다.
세상은 말한다. 11억이나 있으니 배부른 소리 말라고.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닿을 수 있었던 꿈이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이의 심정을. 노력의 끝에 보상이 아니라 '절대적 격차'라는 형벌이 기다리고 있는 이 잔인한 시대의 민낯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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