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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태문 Oct 16. 2019

세쌍둥이 채식당 '땀안'

아내와 나는 평일 끼니를 해결해줄 깔끔한 베트남 식당을 찾고 있었다. 한국 사람이 베트남에서 한국 음식을 매일 만들어 먹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퇴근길에 우연히 ‘꽌짜이’(Quan Chay)라는 입간판을 보았다. ‘꽌짜이’는 육류를 취급하지 않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당이란 뜻이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길거리 식당이 아닌 실내 식당을 찾고 싶었던 나는 급 호기심이 생겨 작은 ‘꽌짜이, 땀안(Tam An)’을 방문하게 되었다. 

◆ 채식당, 땀안에 빠지다


꽌짜이 땀안 입간판.

식당 안내판을 따라 큰 길에서 좌측으로 30m 정도 들어갔다. 막다른 길이 나왔고 거기에 베트남의 여느 식당처럼, 가정집 1층에 마련된 작은 식당 ‘땀안’이 있었다. 실내에는 한국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한 나무 식탁이 몇 개 놓여 있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깔끔한 인테리어도 눈에 띄었다. 주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에게 눈인사를 하고, 바깥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집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아내에게 좋은 식당을 찾은 것 같다며 함께 방문해 보기를 권했다. 

식당은 짐작컨대 며칠 전에 문을 연 듯 보였다. 실내에는 주인이 직접 쓰고 그린 듯 보이는 메뉴판과 그림이 곳곳에 붙어 있다. 벽에는 분위기를 살려주는 소박한 생활 소품도 몇 점 걸려있다. 안쪽 조리실도 위생적으로 보였고, 젊은 부부의 깔끔한 전통 옷도 인상적이었다. 잔잔한 불교음악이 흐르는가 하면 한 쪽 벽면에 위치한 선반에는 유기농 식품들도 진열되어 있다. 메뉴로는 쌀국수, 바잉류(banh), 밥과 해산물을 볶은 음식, 주스류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음식이 25천동(1250원)을 넘지 않아 가격도 착했다. 채식당 ‘땀안’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후 땀안은 우리가 한 주에 대여섯 번씩 들르는 단골집이 되었다. 젊은 주인 부부는 우리를 볼 때면 항상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땀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메뉴는 미꽝(Mi Quang) 쌀국수이다. 아내는 건면(乾麵)인 분코(bun kho) 쌀국수를 더 좋아한다. 미꽝에는 소시지처럼 보이는 재료가 들어가는데 주인에게 그것이 육류가 아닌지 물어 보았다. 주인은 두부로 만든 것이라고 답했다. 혹여 주인 내외는 우리가 채식주의자인 줄 오해하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사실 우리가 땀안을 자주 찾는 것은 깔끔한 내부시설과 맛있는 음식, 주인 내외의 친절함 때문인데 말이다. 

◆ 한 달에 네 번만 문 여는 식당


생일선물 받고 신난 세쌍둥이.

식당에 들를 때마다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주인 부부의 세쌍둥이 남아가 항상 한 쪽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아이들을 볼 때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한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못 본 척 외면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은근히 다가와 슬쩍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내가 웃으며 손을 내밀면 녀석이 손을 잡는다. 한 녀석이 그러면 다른 녀석들도 차례로 와서 손을 잡아 본다. 식당에 오는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인인 우리가, 작은 식당에 와서 베트남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가 많다.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들이니 외국인인 우리가 오죽 신기하랴. 식당에서 녀석들을 보는 것은 우리 부부에게 또 다른 기쁨을 준다.


자전거와 옷도 똑같은 세쌍둥이.

주인 부부는 아이들이 우리에게 불편을 줄세라 항시 눈치를 준다. 녀석들은 엄마 몰래, 아빠 몰래 살짝 살짝 다가와 웃음을 보여 주고 사라지곤 한다. 가끔 녀석들에게 이름을 묻고 구별을 해 보려고 시도도 해보았다. 하지만 어찌나 똑같은지 우리로선 도무지 세 녀석을 구별할 방법이 없다.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정을 쌓아가던 어느 날, 퇴근길에 들렀더니 식당 문이 잠겨 있었다. 무슨 일인지 걱정되어 다음 날 점심때 식당으로 찾아갔다.
젊은 안주인은 어린 세쌍둥이들 때문에 식당을 매일 열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음력으로 말일과 초하루, 보름 전과 보름날 이렇게 매월 4~5일씩 문을 연다고 설명해 주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던지 잠시 후에 6월부터 12월까지 식당 문을 여는 날을 종이에 빼곡히 적어 주었다. 단골손님인 내가 헛걸음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지금도 우리 집 냉장고에는 채식당 ‘땀안’의 2019년도 오픈 날짜가 적힌 종이가 달력처럼 붙어 있다. 


다낭에 온지 한 달이 채 안된, 3월 말이었다. 사무실 사람들과 처음으로 회식하러 간 곳이 채식당이었다. 팀장은 첫 회식을 채식당으로 가게 되어 미안하단다. 하지만 특별히 가리는 음식이 없는 나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그렇게 연구원 식구들과 가 본 채식당은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2층 건물의 넓은 식당은 사람들로 빈틈없이 꽉 차 있었다. 팀장의 말에 의하면 베트남 사람들은 한 달에 두 번, 음력 보름과 초하루에 채식을 한다. 한 달에 한 번, 반드시 채식하는 사람도 70~80%는 된다고 했다. 채식국가가 아닌 나라에서 채식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당시는 몰랐는데 회식했던 그 날이 채식하는 날이었다.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시장의 채소들.

베트남에서 채식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식당에서는 쌀국수 한 그릇에도 밭에서 금방 따온 듯한 생풀들을 수북이 내어 준다. 물수건 한 장에도 추가 비용을 받는 베트남에서 채소 인심만큼은 어딜 가나 후하다. 뜨거운 국물에 생풀(?)을 넣으면 살짝 데친 채소처럼 되어 먹기 수월하다. 사실 북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사계절이 여름인 베트남은 채소가 자랄 수 있는 최상의 자연조건이다. 길거리 어디를 보더라도, 나무는 상록수이고, 풀은 계속해서 자란다. 베트남 사람들은 자연이 만들어낸 채소를 일상으로 보면서, 먹으면서 자랐다.   

베트남 사람들이 월 2회 채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베트남에서는 매월 두 번,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제사를 지낸다. 가정은 가정대로, 가게는 가게대로, 간단하게 제수를 차리고 향을 피우며 기도한다. 베트남 사람들이 즐기는 채식의 배경에는 민간신앙과 불교·유교문화가 깊이 결부되어 있다. 대표적인 불교 의식인 새와 물고기를 방생하는 것도 이 날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제의(祭儀)를 통해 조상을 섬기고 후손에게 복을 염원한다. 제의는 떠도는 원귀(영혼)를 달래는 상차림이며,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경외 의식이기도 하다. 이런 문화적 기반위에 매월 2회의 채식문화가 만들어졌다. 더불어 도처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채소는 베트남 사람들의 식탁에서 자연스런 채식의 기반이 되었다. 



가게 앞에 차린 간이 제사상.

◆ 육식문화의 반작용, 채식주의
서양의 채식은 자연과 문화적 토대가 강한 동양의 채식과는 결이 다르다. 과도한 육식문화가 낳은 반작용이 서양 사회에 채식문화가 접목된 이유이다. 그런 점에서 서양의 채식은 자연스럽지 못한 인위적이란 느낌이 든다.
우리는 ‘채식주의자’란 용어 하나로 다 통할 수 있지만, 서양에서는 지칭하는 용어가 참으로 다채롭다. 채소만 먹는 비건(완전 채식주의자)에서 오보 베지테리언(채소+동물의 알), 락토 베지테리언(채소+유제품),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채소+동물의 알+유제품), 페스코 베지테리언(채소+동물의 알+유제품+해산물), 플렉시테리언(채소+가끔 육식), 그리고 과일과 견과류만 먹는 극단적 채식주의자(프루테리언) 등으로 구분한다. 관련 용어가 많은 것은 채식주의자가 많다는 반증이다. 동시에 이들에게 채식은 자연스러운 식습관이 아니라 머리로 생각하고 분석하는 인위성이 강한 구호라는 생각도 든다. 채식을 하는 서양 사람들이 한국에 오면 채식당을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에는 전문 채식당이 그렇게 많지 않다. 아직은 가정과 일반식당에서도 채식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와 비교하면 육식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성인병, 현대병 등 육식으로 인한 부작용도 늘어나고 있다. 육식으로 치닫는 우리 식문화의 문제가 무엇인지, 생활 속에서 어떻게 채식을 늘릴 수 있을지 고심할 때다. 자연스런 생활 속 식문화로 채식의 의미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베트남의 채식당(베리테어언 레스토랑).

◆ 채식과 육식, 균형이 필요하다
지나친 육류 소비는 비만을 초래한다. 비만은 전염성이 강한 질병이다. 비만은 단순히 몸의 질병으로 끝나지 않는다. 몸의 비만은 대형차 선호, 과소비 집착, 에너지 과소비 등 생활습관의 비만으로 이끈다. ‘아침에 교실에 들어설 때, 학생들이 더위에 고생하지 않도록 밤새도록 에어컨을 켜놓는’ 미국은 에너지 비만 국이다. 서구식 육류소비를 즐기면서 배달음식을 선호하는 우리나라는 1인 플라스틱 사용량이 가장 많은 플라스틱 비만 국이다. 육류의 과소비가 몸의 비만을 불러오고, 몸의 비만이 환경 파괴를 가속하는 것이다. 베트남은 지구촌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률을 자랑하는 나라이다. 경제 성장을 이룬 대부분의 나라들은 서구 식문화가 유입되면서 전통 식문화가 파괴되었다. 과잉 육류 소비로 건강도 위협받고 있다. 사람들은 부를 얻었지만, 사회적 질병인 비만을 반대급부로 받고 있다. 

필자는 채식을 주장하지 않는다. 채식과 육식이 균형을 이룬 건강한 사회를 꿈꾸는 사람이다. 세상에 좌우의 균형이 필요하듯, 식문화도 채식과 육식의 조화가 필요하다. 베트남은 자연스런 생활 속 채식문화를 가지고 있다. 경제는 꾸준히 성장하면서도 생활 속 식문화도 건강하게 지켜가기를 바래본다.

출처 : 뉴스퀘스트(http://www.newsquest.co.kr), 2019년 8월 23일,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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