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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태문 Nov 08. 2019

베트남 사람들은 왜 꽃을 좋아할까?

한국에서 봄이 시작되는 3월초에 다낭에 왔다. 기온이 35도가 넘었다. 거리를 나서면 40도를 넘는 불볕 더위였다. 기온으로 봤을 때, 다낭의 3월은 봄이 아니었다.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낭의 거리 어디에나 꽃들이 만발했다. 꽃이 많으니 봄이라 생각했다. 살면서 보니, 꽃은 사계절 내내 흔하게 피었다. 베트남의 3월은 기온과 꽃으로 정의가 안 되는 계절이었다. 

북부 고원지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베트남은 우기와 건기로 나뉜다. 사계절 내내 피는 꽃이지만 꽃은 베트남의 사계절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지도 모른다. 다낭의 우기인 10~12월(혹은 9~11월)은 늦가을에서 겨울에 가깝다. 건기인 9개월(1~9월; 혹은 12~8월)에는 봄에서 가을이 들어 있다. 건기가 시작되면 겨울에서 이른 봄의 꽃(1~3월)들이 핀다. 여름 꽃은 4~6월에 피고, 가을꽃은 7~9월에 피면서 꽃의 사계절로 나뉘는 것이다. 

아직 사계절을 다 살아보지 않아 이런 생각엔 오류가 있을 것이다. 베트남의 꽃은 한번 피어나면 보름은 기본이고, 3~4개월은 피고 지고를 연속한다. 불볕더위에도 굴하지 않고 꽃을 피워내는 모습엔 경외감을 느낀다. 맹렬한 더위도 이겨내는 꽃은 인내하는 선비 같다. 

꽃은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에 있다. 거리에도, 집 마당에도, 주택 2층 베란다와 옥상에도 꽃은 피었다. 꽃은 아름다움이 되고, 뜨거운 햇볕을 가리는 그늘이었다. 꽃은 한 달에 두 번 음력 초하루와 보름날의 제의(祭儀)에도, 각종 기념일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거리와 전통시장에 들어서는 꽃시장은 장관이다. 베트남에서 꽃이 없는 기념일은 상상할 수 없다. 베트남 사람들은 왜, 이렇게 꽃을 좋아하는 것일까?  

나무에서 꽃을 보다

고목나무 같은 가로수, 어른 키보다 높은 곳에 1kg는 되어 보이는 열매가 달려 있다. 처음엔 그것이 먹을 수 있는 과일인지조차 알 지 못했다. 열매가 열린 나무(밋, Mit)의 친구쯤 되는 옆의 키 큰 나무는 크고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었다. 꽃과 나무는 엄연히 다르다.

그러나 베트남의 거리를 다니면 키 큰 가로수에 열매가 달려 있거나, 화려한 꽃이 피어 있기 일쑤였다. 한국과 다른 이러한 모습이 기후 차이인지, 다른 자연현상인지 아리송했다. 중요한 것은 나무에 핀 꽃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벚꽃나무를 제외하면 한국에서 키 큰 가로수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나무는 드물다. 베트남의 봄·여름 거리를 걷노라면 가로수가 엉성하게 피워낸 꽃조차 화분에서 핀 꽃에 못잖다. 고목 같은 가로수가 피워 낸 꽃이 전문 꽃의 아름다움에 뒤지지 않는다. 전문 꽃에 뒤지지 않는 대표적 가로수 꽃 3종을 알아보았다.  


화자이(hoa giay)는 영어로 종이꽃(paper flower)으로 불린다. 베트남 전역에서 자생하는 화자이는 3~9월, 혹은 4~11월이 개화기이다. 건기에 꽃과 포엽을 피웠다가 우기에 진다. 종이꽃이란 이름처럼 포엽을 만지면 종이처럼 두껍고 건조하다. 습기에 약해 우기에 꽃이 지기에 종이꽃이란 이름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화자이는 멀리서 모습을 보면 붉은색, 핑크색, 황색, 흰색 등 색깔이 참 다양하다. 그런데 이 색깔은 꽃이 아니라 작은 잎인 포엽이다.


필자가 본 화자이의 실제 꽃은 붉은 색 포엽 속에 숨어서 핀 하얀색의 작은 꽃이었다. 화자이는 인도, 동남아 전역에서 자생하는데 부겐빌리아(bougainvillea)로도 불린다. 불타오르듯 붉은 꽃이란 의미이다.



화자이(paper flower), 영어로는 종이꽃(paper flower)이라 불린다. [사진=석태문 연구위원]

 20m가 넘는 화프엉 나무도 보았다. 화자이보다 훨씬 더 크다. 고목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꼭대기 나뭇잎 사이로 불타는 꽃을 피워낸다. 공작꽃(peacock flower), 로얄 포인시아나(royal poinciana)로도 불린다. 꽃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풍성한 그늘도 제공하는 화프엉은 정원수, 가로수, 공원수로 많이 사용된다. 


영문명 불꽃나무(flamboyant tree)라 불리는 화프엉(hoa phuong). [사진=석태문 연구위원]


화록벙(hoa loc vung)은 1년에 두 번 꽃피는 나무로 유명하다. 관목보다 약간 큰 키의 가로수·정원수이다. 영문명 불꽃나무(flamboyant tree)라 불린다. 개화기가 되면 꽃대가 수양버들처럼 아래로 주렁주렁 늘어지고, 그곳에 붉은 꽃이 핀다. 새벽에 꽃이 피웠다가 해가 뜨면 떨어진다. 아침 일찍 집 주변 도로변을 나서면 낙화한 꽃들이 만든 붉은 꽃길이 장관이다. 한번 개화하면 보름 정도 꽃을 피운다. 지난 여름(음력 5~6월)에 1차 개화하였다. 음력 10월에 다시 꽃을 피운다고 했는데, 11월이 다가온 오늘 아침, 화록벙의 낙화한 꽃길을 밟고 출근길에 나섰다. 


 

화록벙의 낙화. [사진=석태문 연구위원]



베트남의 나라꽃, 연꽃


베트남의 전통의상인 아오자이 입은 여인이 연꽃향을 맡고 있다. [사진=석태문 연구위원]

 “연못에서 새벽의 꽃인 연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베트남의 유명한 민요에서 연꽃을 묘사한 대목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연꽃을 우아하고 순수한 꽃이며, 평온과 헌신, 낙관적 미래를 상징하는 꽃으로 여긴다. 연꽃은 밤에는 꽃을 닫고 물속으로 가라앉고, 새벽이 되면 다시 꽃을 피운다. 사람의 생활과 닮은 사이클을 가진 꽃이다. 연꽃은 베트남 전역에서 자생하는 꽃이다. 연꽃은 온혈동물처럼 온도를 조절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연꽃은 지닌 품성도 대단하고, 다재다능한 재능도 가진 꽃이다. 왜, 베트남 사람들이 연꽃을 나라꽃으로 선택하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연꽃은 베트남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꽃이자,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식물이다.

연꽃은 불교와 힌두교, 두 종교에서 모두 신성시 여긴다. 연꽃은 이름처럼 연못과 호수에서 자라는 꽃이다. 우리의 일상과 가까운 자연에서 사는 식물이고, 실용적인 쓰임새도 참 많다. 상업적으로 연을 재배하면 버릴 것이 하나 없는 고수익 농작물이다. 씨앗은 향기가 좋아서 설탕에 절여 디저트로 먹는다. 줄기로는 수프를 만든다. 뿌리(연근)는 간식용 슬라이스 식품이다. 잎은 연밥이나, 음식 포장용으로도 사용한다. 꽃은 차로도 마시고, 바라볼 때는 우리의 마음에 위안을 주는 식물이다. 이렇듯 베트남의 나라꽃인 연꽃은 버릴 것 하나 없는, 쓰임새 많은 꽃이다. 연꽃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에게 심성의 평안을 주는 품격을 지닌 꽃이다. 연꽃으로 인해 베트남 사람들의 꽃 사랑이 더 깊어졌는지도 모른다.


주택 베란다의 꽃화분. [사진=석태문 연구위원]

꽃이 있는 거리, 생활이 된 꽃

다낭은 꽃이 흔한 도시다. 게다가 사람들은 꽃을 좋아한다. 거리나 재래시장에는 꽃 파는 가게가 흔하다. 월 2회, 제사 지내는 날 아침에는 꽃 시장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가정집이나 가게의 제단에는 꽃과 함께 약간의 재물을 제의가 문화가 되었다. 2층 이상 주택이 있는 인도를 걸을 때는 주의할 점이 있다. 주택 2층 베란다에는 대부분 화분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집주인들은 오전과 오후에 두 차례, 화분에 물을 준다. 1층으로 떨어지는 물막음 장치가 없어서 화분에 준 물은 1층으로 떨어진다.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다 물세례를 받은 낭패가 있었다. 베란다에 늘어놓은 화분들은 관상용과 더운 날씨를 이기는 지혜라 짐작된다.

꽃은 허기를 달래는 식물이 아니다. 꽃은 아름답고 향기는 좋으나 먹을 수는 없다. 베트남 사람들이 식품이 아닌 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꽃농장 떰안. [사진=석태문 연구위원]


다낭 시내에서 오토바이로 30분 거리에 꽃농장, 떰안(Tam An)이 있다. 4ha로 규모도 큰 농장이다. 해바라기를 가장 많이 재배한다. 메리골드(Merigold), ‘10시에 피는 꽃’이란 의미의 화머이저(hoa muoi gio), ‘깜빡이는 불꽃’이란 화사오냐이(hoa sao nhay)라는 꽃 등 여러 종류의 꽃을 재배하는 농장이다.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15명이 넘는다. 떰안농장은 꽃만 팔지 않는다. 찾아노는 소비자들에게 꽃과 농작물 체험을 제공한다. 준비된 체험 프로그램을 갖추고, 초등생과 시민들을 유치한다. 다낭을 찾은 외국인들도 가끔 이 농장을 들를 정도이다. 떰안농장이 거두는 소득은 월 2억 동(1000만원)으로 베트남의 물가에 비하면 엄청난 고소득을 올리는 농장이다. 꽃이 소비자 체험과 연결되어 1차, 3차 산업을 함께 실현하고 있다.

10월 20일은 베트남이 제정한 여성의 날이었다. 3월초의 국제 여성의 날 행사도 거나하게 치른 베트남이다. 여성의 날을 1년에 두 번이나 기념하는 베트남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것이다. 베트남은 확실히 여성을 존중하는 사회란 생각이 든다. 오랜 전쟁을 치르면서 겪은 여성의 희생을 인정하고 고마움을 표시하는 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날, 아내와 나는 베트남 친구와 함께 친구의 여친 생일을 기념하는 저녁식사 모임을 가졌다. 베트남 친구는 30만동(우리 돈 1만5000원)하는 비싼 꽃다발을 사들고 왔다. 내가 웃으며 물어 보았다. “만약, 오늘 남친이 꽃 선물을 안했으면 어떻게 되나요?” 여친은 웃으면서 “킬(kill)”이라고 말했다. 농담이었지만, 여성의 날에 여자 친구에게 꽃 선물을 하지 않는 남친이 있을까 싶었다. 마찬가지로 남편은 아내에게, 회사에서도 여성 동료에게 꽃을 선물한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서도 여성 동료에게 꽃을 선물하고, 오찬도 함께하며 여성의 날을 기념했다.


초등학생들의 꽃농장 체험. [사진=석태문 연구위원]


꽃이 주는 여유로 창의의 사회를

꽃은 정서 상품이다. 배고픔을 해결하는 생필품이 아니다. 지난해 베트남의 1인당 GDP는 2500달러이었다. 소득 1만 달러는 되어야 대중적인 꽃 소비가 일어난다는 점에서 볼 때 베트남의 꽃 소비는 이례적이다. 이방인은 베트남의 문화 속에 꽃을 사랑하는 DNA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베트남에 며칠 동안 관광왔다면 주택과 거리의 틈새 공간을 살펴보길 권한다. 그 공간에서 꽃을 찾을 확률은 매우 높다.

베트남은 꽃 수출도 하지만, 꽃 소비가 가장 많은 뗏(tet; 음력설) 연휴에는 국내 생산만으로는 부족하여 수입까지 한다. 베트남이 꽃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는 문화코드는 무엇일까? 프랑스의 베트남 지배가 낳은 유제는 아닐까? 유·불교문화가 결합해서 낳은 제의가 발달한 때문은 아닐까? 이런 일들이 오랜 시간을 거치며 꽃 사랑 문화로 농축된 것일까? 베트남 사람들이 치르는 각종 행사, 기념일, 축제에서 꽃은 늘 함께 해왔다. 지구촌에서 가장 빠르게 경제성장을 올리고 있는 베트남이다. 아름답고 평안을 주는 꽃으로 인해 성장에 소외되지 않고, 일상의 여유와 창의를 유지하는 베트남 사람들이 되기를 기대한다.

<출처 : 뉴스퀘스트 http://www.newsquest.co.kr>  2019.11.1, 2019.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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