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가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아까는 내가 예민했던 것 같아, 미안." 나는 그럴 수 있다며 친구를 다독였다. 그러고보니 문득 오늘 만난 친구의 모습이 다시금 떠올랐다. 오랜만에 본 친구는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전보다 더 헬쓱해진 모습이었다. 나 역시 갑작스런 친구의 행동에 당황스러웠지만, 오죽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싶기도하여 이해가 되었다.
친구는 그 이후로도 종종 나에게 당혹감을 주었다. 한번은 친구의 생일 겸 대학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다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친구는 전날 들뜬 상태로 단톡방에 맛집 목록을 이것저것 올려두었다. 하지만 당일, 우리가 가고자 한 식당에 웨이팅이 길게 늘어선 바람에 모두 아쉬움을 뒤로하고 근처 다른 음식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음식점에 도착해서 주문한 메뉴가 나와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친구가 음식을 먹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왜, 무슨 문제있어 ㅇㅇ아?" 모두가 물어봤지만, 친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절래절래 젓기만 했다. 잠시 후 친구가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나와 친구들은 모두 당황하며 물어보았지만 친구는 묵묵부답으로 빠르게 밥을 먹고는 먼저 나가있겠다며 음식점을 나갔다.
우리는 밖에 나와서 뒤늦게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꼭 가고싶은 음식점이었는데, 다들 다른데 가자고 하니까.."
'그럼 아까 그렇게 얘기를 하지..' 답답함과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날은 친구의 생일이기도 하고, 한바탕 울음을 쏟아낸 뒤 후련해졌는지 이내 미안하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더 이상 별다른 이야기는 하고싶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도 갑작스런 친구의 행동에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분위기를 전환하여 그날 모임은 그렇게 잘 마무리가 되었다.
그일이 있고 나서, 나는 친구와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전처럼 미주알고주알 모든 일상과 고민을 공유하지 않았고, 모임이 아닌 단둘이 만나는 횟수도 조금씩 줄여나갔다. 친구가 취업할 때까지만이라도 거리를 두고 싶었다. 길어지는 취업준비에 누구보다 힘든 건 친구일테니, 친구가 취업도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우린 다시 이전처럼 가깝게 지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는 사이에 나는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고, 남자친구와 일상을 공유하게되면서 친구와는 아주 가끔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이따금씩 공부하고있을 친구가 생각날때면 기프티콘을 보내주며 조용히 마음으로 친구를 응원했다.
몇달 뒤, 친구에게서 서운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왜 이전처럼 자주 연락하지 않는지, 힘든 일이나 고민이 있을때 항상 털어놓더니 요새는 연락도 잘 안하고 서운하다, 단톡방에서 다른 친구들과 같이 나눈 대화에 왜 집중하지 않는지(일하다가 카톡 100개가 넘어가는 단톡방을 열어보면, 모든 내용을 다 읽지 못한 채 답장하게 되는데 앞에서 친구들이 했던 내용을 또 물어보는 일이 간혹 있었다) 등등의 서운함을 토로했다.
나는 요새 회사일이 바쁘고 지쳐서 연락을 잘 못하게 되었다고 둘러댔다. 그리고 더이상 부정적 감정을 친구에게 쏟고 싶지 않아서, 앞으로는 힘든일이 있어도 나 혼자 극복해보려 한다고 이야기했다.(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친구의 전화에 조금은 뜨끔 했지만, 그 이후로 나는 단톡방에서 만큼은 친구가 서운하지 않게 활발히 소통하고, 친구의 의견에도 귀 기울여주었다.
그렇게 친구와의 관계가 무탈히 흘러가고, 내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친구와는 가끔 통화하며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가끔의 통화에도 한시간 넘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떠는, 여전히 우리는 친한 친구였다. 최근의 그 만남이 있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