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에게 실망하는 순간
그 사이 친구는 바라던 기업은 아니었지만 제법 괜찮은 직장에 취업했고, 나는 진심으로 친구의 취업을 축하해 주었다. 동시에 취업으로 여유가 생긴 친구와 예전처럼 다시 편하게 지낼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했다. 다른 지인들도 나에게 친구가 취업 이후 전보다 한결 괜찮아 보인다고 이야기했다.
친구가 재취업한 지도 벌써 1년이 지나가고 있었고, 그 사이 단톡방에서 항상 활발히 소통하던 친구의 메시지는 이전보다 훨씬 뜸해졌다. 간혹 단톡방에서 앞서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들을 되묻는 경우도 있었고, 일정이나 시간을 착각하여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친구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었지만, 간만의 회사 생활에 다시 적응하려니 정신이 없는 것이겠지, 하고 이해했다.
시간이 지나고 화창한 5월, 대학교 동기의 생일 겸 모임을 하루 앞둔 어느 날. 친구가 단톡방을 통해서 모임 날짜를 하루만 뒤로 변경할 수 있는지 물어왔다. 꼭 가고 싶은 스포츠 경기가 있는데 날짜를 착각한 모양이었다. 나를 포함한 다른 친구는 이미 다른 일정들도 잡아놓은 터라 날짜 변경이 힘들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친구는 어쩔 수 없다며 수긍했다.
모임 당일, 그날은 다른 생일자 친구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로 하고 쇼핑몰에서 만났다. 도착해서 다들 어디로 갈 건지 물어보니 친구가 불편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생일자가) 여기서 먹기 싫다고 해서 위층으로 올라가야 할 것 같아." 지하 1층의 푸드코트는 너무 북적였고, 생일자 친구가 조금 더 한산한 위층의 한식당으로 가자고 한 상황이었다. 한식당에 도착해 음식점 웨이팅을 보니 30분 정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혹시 모르니 우리는 웨이팅을 걸어놓고 다른 갈만한 식당들을 찾아보느라 이리저리 걷고 있었다. 뒤에서 나지막이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둘 다 한식 좋아해서.." 예전 같았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나일 텐데, 친구에게 되물었다. "ㅇㅇ아, 한식 별로야?" "응, 아무래도 그렇지. 밖에 나오면 매일 먹는 한식보다는 다른 음식들 먹는 게 더 좋잖아." 친구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친구에게 알 수 없는 배신감이 들었다.
사실 나는 자타공인 한식 애호가로서 한끼를 먹어도 든든한 음식을 선호한다. 제일 가성비가 낮다고 생각하는 음식은 브런치나 양식류이다. 뒤돌아서면 배고프고 다시 무언가로 허기를 채워야 하는 음식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는 구성원 대부분이 선호하기에 주로 브런치나 양식류를 많이 먹으러 다녔다. 나의 취향은 아니지만, 친구들과 가끔씩 가는 분위기좋은 브런치가게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렇다 보니 모임에서 몇 년 만에 먹는 한식임에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친구의 반응에 당황스러우면서 서운했다.
그렇게 차례가 되어 식당에 들어갔고, 소불고기 전골 1인분 24,000원이 적힌 메뉴판을 펼쳐보던 친구의 뒤이은 발언에 나와 생일자 친구는 다시 한번 당황했다. "여긴 무슨 음식이 이렇게 비싼 거야? 아니, 본인들이 이렇게 비싼 곳에 음식점을 차려놓고 비싸게 받으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아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같이 있던 생일자 친구는 맞받아치며 말했다. "여기 서울이잖아, 요즘 서울 시내 물가는 다 이 정도 해~" 결국 친구는 갈비탕 단품을 주문했고, 갈비탕을 먹어보더니 맛있었는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기 위해 우리는 카페에 가기 전 생일자인 친구에게 생일 선물을 전달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친구가 본인은 차만 마시고 금방 일어나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오늘 스포츠 경기에 좋아하는 선수의 은퇴식이 있는데 마지막 배웅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친구가 자리를 뜨고 나와 생일자 친구는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가 헤어졌다.
집에 도착해보니 먼저 간 친구에게서 카톡이 와있었다. "다들 이해해 줘서 고마워~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선수 배웅 잘해주고 왔어!" 솔직히 말하자면, 난 이제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좋아하는 경기이고 꼭 가고 싶다면 당사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갈 수는 있다. 설령 그게 즉흥적인 결정일지라도.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급하게 먼저 자리를 떠서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는 친구를 이해해 준 적이 없다. 친구가 먼저 답을 정하고 자리를 뜬 것이지.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결국 주말에 시간을 내서 서울까지 간 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이어 친구가 오늘 했던 말들이 뒤죽박죽되어 나를 괴롭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