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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차 Sep 25. 2022

캡슐옷장에서 나만의 컬러를 찾아 패션무력증에서 벗어나자

-<내 취미는 캡슐 옷장에서 놀기> 중에서- 

  지금 당장 당신의 옷장 문을 열어보라. 5분 이내에 당신이 가장 편안하고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옷을 고를 수 있겠는가?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당신은 지금 캡슐 옷장 만들기가 필요한 사람이다. 캡슐 옷장이란 표현을 들어보았는가? 이는 1970년대에 수지 폭스라는 영국의 부티크 오너가 30 ~ 40개의 의류를 통해 완벽한 옷장을 구성할 수 있다고 말한 개념에서 나온 옷장이다. 그로부터 몇 년 후인 80년대에 도나 카란이라는 디자이너가 이러한 개념을 반영한 컬렉션을 발표하며 캡슐 옷장이 대중화되었다고 한다. 요즘은 미니멀리즘을 반영하여 ‘333 프로젝트’라는 이름하에 좀 더 창의적으로 나만의 컬렉션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 또한 3년 전부터 미니멀 라이프를 조금씩 실천하면서 옷장에도 구조조정을 세 차례 했었다. 사실 옷은 많이 줄어들어 옷장이 정리된 느낌은 있었지만 단순하고 체계적이지는 못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333 프로젝트의 캡슐 옷장이다. ‘33벌의 옷으로 3개월을 버티기’라는 재미있는 프로젝트에 동참해보기로 한 것이다. 33벌의 옷을 고르는 과정에서 또 한 번 옷장에 구조조정이 이루어졌다. 


  이번에는 버리거나 기부하는 형태가 아닌 재배치의 성격을 띠었다. 결혼식과 같은 행사 때 입거나 여행지에서나 입는 옷은 다른 칸으로 옮기고 집에서 입는 옷은 개어서 서랍장으로 옮겼다. 여름이 아닌 계절의 옷들도 모두 다른 칸으로 옮겼다. 마지막으로 33벌의 여름옷들을 침대 위에 올려놓고 분류작업을 하여 같은 종류끼리 옷장에 걸었다. 가장 편하게 자주 입는 옷인 원피스를 앞에 배치하고 그다음에 윗옷, 외투, 스커트, 바지 순으로 정렬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일은 나만을 위한 전담 스타일리스트, 바로 나 자신을 부르는 것이다. 

    

  캡슐 옷장을 만들면 가장 좋은 점이 옷을 코디할 맛이 난다는 거다. 옷이 종류별로 여유 있게 분류되어 있으니 옷을 고르기가 참 편하다. 간혹 그동안 같이 입지 않은 티셔츠와 바지를 매치했다가 만족스러운 룩이 나올 경우 진짜 뿌듯하다.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이 봐도 엄지 척을 해줄 거야’라며 스스로를 칭찬하기도 한다. 이렇게 매일매일 나만의 룩을 탄생시켜 가다 보면 창의력도 덩달아 높아지는 걸 느낀다. 


  독일 출신의 경제학자 허쉬만은 소비자가 ‘소비 창의성’을 발휘하면 소비와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소비가 아닌 사용으로 소비 문제를 해결하고, 옷이 시장에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옷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소비자의 권리를 회복시켜 준다는 점에서 소비 창의성은 중요한 능력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소비 창의성을 장착하면서 옷장 앞에서 고민하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왜 이렇게 입을 옷이 없을까?’라는 어이없는 질문도 사라졌다. 단지 캡슐 옷장 앞에서 고객과 스타일리스트 1인 2역만 하면 OK!   

   

  캡슐 옷장을 이용하면서 옷을 살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되자 자연스럽게 충동구매나 과소비 문제도 해결되었다. 33벌의 옷의 구성이 한눈에 보이니 내가 이미 많은 종류의 옷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정서적 쇼핑’이라는 것을 해왔다. 그 옷이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고파서 쇼핑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특히 마음이 우울하거나 외로울 때 사랑받는다는 느낌, 옷이 아닌 그 느낌을 갖고 싶어서 옷을 사게 되었다. 영혼까지 팔 듯 한 점원의 친절한 태도와 새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선 만족스러운 내 모습에 자아도취 되어 망설임 없이 카드를 내밀고 마는 것이다. 쇼핑으로 잠시 잠깐 마음속 허기를 채우기는 하지만 이는 생 초콜릿처럼 금세 녹아 사라져 버린다. 새로 산 옷 덕분에 한두 번 예쁘다는 말을 들을 때는 ‘역시 사길 잘했어’라는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자신감과 자존감에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나는 처음에 여름옷 캡슐 옷장을 만들고서 내가 여름 원피스를 무려 7벌(무릎길이 5벌, 롱 원피스 2벌)이나 가지고 있고, 상의가 14벌(민소매 옷 3벌, 반팔 블라우스 5벌, 검은색 면티 2벌, 흰색 면티 2벌, 긴팔 블라우스 2벌)이나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물론 10년이 넘는 옷들도 있지만 ‘참 꾸준히 옷을 사 모아 왔구나’하며 한숨이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의 옷들이라서 앞으로도 5년은 더 입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거다. 또 하나 다행인 점은 바지가 종류별로 다양해서 기분대로 다른 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연청바지, 검정 일자 통바지, 흰색 린넨 통바지, 겨자색 리넨 슬랙스 바지, 깅엄 체크 스키니 바지 이렇게 전혀 다른 종류의 바지가 5벌 갖추어져 있어서 새로운 옷을 구입할 필요가 없는 거다. 


  이처럼 내가 어떤 종류의 옷을 몇 벌 가지고 있느냐를 정확히 안다는 것은 단순히 그 사실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캡슐 옷장 바운더리 안에서 나의 스타일을 만들겠다는 책임감, 더 이상 예전의 방만했던 나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자율성이 살아나게 된다. 즉 내 삶에 대한 주인의식이 깨어나게 되는 것이다. 단지 옷장 하나 정리했을 뿐인데 일석 몇 조의 이득이지 않는가.   

  


  나만의 컬러를 찾아 패션 무력증에서 벗어나자 

  정리된 옷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신이 어떤 스타일의 옷을 입어왔는지 어떤 색깔의 옷을 좋아하는지 옷에 관한 나의 역사가 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감춰진 우울이나 불안,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알아차릴 수 있다. 패션 우울증이나 패션 무력증에 대해서 들어보았는가? 매번 비슷한 스타일의 무채색의 옷을 입고 자신을 꾸미는 데 거의 시간을 쓰지 않으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싫어한다면 자신의 마음을 세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나는 원래 패션에 관심이 없어요.”

 이렇게 말하고 싶다면 좀 더 솔직해지자. 패션 센스가 좋다는 말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패션에 관심은 있지만 나에게 어떤 옷이 어울리는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사실 우리는 모두 내면에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싶은 욕구가 있고 더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센스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본능을 묻어두는 이유는 현재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은 나 자신을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고 기분이 좋으니 표정까지 밝아지는 거다. 따라서 저절로 자신감이 밖으로 베어 나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누가 멋지지 않다고 느끼겠는가.  

    

  나에게 어울리는 컬러를 알고 있으면 디자인과 무관하게 나를 돋보이게 하기 쉽다. 퍼스널 컬러에 대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퍼스널 컬러란 사전적인 의미로 피부, 머리카락, 눈동자 색 등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신체 색상을 말한다. 크게는 웜톤과 쿨톤으로 나누는데 좀 더 세분화해서 봄 웜톤과 가을 웜톤, 여름 쿨톤과 겨울 쿨톤으로 나뉜다. 오랫동안 패션 실험을 해온 데이터에 비추어 나를 분석해 보자면 피부가 약간 노란 바탕에 분홍빛을 띠고, 진하거나 탁한 색상보다 파스텔 톤이 잘 어울리고, 금 액세서리보다 은이나 백금이 잘 어울리고, 코랄보다 핑크색 립스틱이 잘 어울리는 것으로 보아 여름 쿨톤에 해당한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퍼스널 컬러라고 한다. 


  과거에 색깔 감각이 덜 발달한 시기에 진한 파란색 스웨터와 핫 핑크 코트를 샀던 적이 있다. 이상하게도 그 옷을 입으면 얼굴이 더 탁해 보이고 입고 있는 내내 종일 답답함을 느꼈었다. 사실 그 옷들은 겨울 쿨톤에게 어울리는 컬러였던 것이다. 비싸게 주고 산 게 아까워서 계절마다 한 번씩 꺼내 입기는 했지만 옷장 정리를 하면서 모두 구조 조정했다.   

   

  자신의 톤에 어울리는 컬러의 옷을 입으면 분명 더 편안하고 예뻐 보인다. 요즘은 퍼스널 컬러를 진단해 주는 곳도 많이 있다. 도저히 컬러 감각이 없고 나에게 어울리는 색깔을 꼭 찾고 싶다면 방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하지만 그 보다 중요한 것은 무채색이 아닌 다양한 색상의 옷을 입어보겠다는 용기이다. 도전할 마음이 생긴다면 주변의 친구 중에 옷을 좀 입는 친구에게 옷 사러 가는데 봐달라고 부탁해보는 거다. 친구와 옷가게 점원 최소 2명이 ‘OK'를 한다면 그 색깔은 나에게 보통 이상은 어울린다는 뜻이다. 


  그렇게 종종 다른 색상의 옷에 도전을 하다 보면 어느새 기분도 밝아지고 자신감도 생기게 된다. 나는 시간과 에너지를 아낄 겸 주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옷을 구입했었는데 긴가민가한 색상의 옷을 선택할 때는 나만의 비법이 있다. 바로 휴대폰으로 모델 얼굴을 제외하고 두 가지 색상의 옷을 사진 찍은 후 크게 확대해서 거울 앞에서 내 얼굴 아래에 대고 비교해 보는 거다. 어떤 색상에서 자신이 짓는 미소가 더 편안하고 아름답게 보인다면 그 옷이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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