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아니라 발직한 집사가 되자> 중에서-
몇 해 전 동네 하천이 범람해서 한 중학생 아이가 물살에 떠내려간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며칠 동안 그 아이가 누구인지 모르다가 어느 날 딸아이를 통해 그 사건의 희생자인 학생의 이름을 들었다. 그때 순간 울음이 쏟아지고 말문이 막혔다. 그 아이는 4학년 때 내가 가르쳤던 아이였는데 자기 소신이 뚜렷하고 최선을 다하는 멋진 남학생이었다. 일순간 그 아이와 그 아이 엄마의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아이 엄마의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한동안 그 하천을 쳐다보지 못했다. 언제 하이드처럼 한 아이를 삼킨 잔인한 행동을 했냐는 듯 지킬 박사로 돌아와 선한 얼굴로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이 가증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아이의 엄마가 느꼈을 고통과 상실감 그리고 참을 수 없는 후회들이 상상이 갔다. 더 사랑한다고 말해줄걸, 더 안아줄걸, 너 자체로 충분하다고 말해줄걸, 항상 내 아이로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말해줄걸, 더 기다려줄걸, 최대한 야단치지 않고 친절하게 알려줄걸, 아이의 말에 더 귀를 기울여줄걸, 절대 아이에게 외로운 마음이 들지 않게 할걸.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와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그 귀한 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지금 내 앞에서 어슬렁거리고 있고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저 아이에게 매일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아이의 존재 자체에 대한 감사함이 마음에 깃들고 나 자신을 온전하게 사랑하자 책임과 의무의 대상으로 보이던 아이가 그 자체로 사랑스러운 존재로 비쳤다. 여드름이 여기저기 난 성난 얼굴이며 등드름이 꽃처럼 피어있는 넓적한 등, 아기 냄새는 온데간데없고 땀 냄새와 호르몬 냄새만 남은 사춘기 아이가 됐지만 그 아이를 안고 뽀뽀하며 쓰다듬는 진짜 사랑이 담긴 스킨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무심하게 성은을 베풀 듯 볼을 대주고 대충 영혼 없이 내 품에 안겨주지만 금세 장난을 치며 내가 하는 행동을 따라 한다. 내 궁둥이도 팡팡 두드리면서.
요즘 주로 쓰는 말은 ‘힘!’, ‘뭐 어때?’, ‘괜찮아’, “그만하면 자알~했어”, “잊어버려”, “오늘도 하루를 살아내느라 수고했다” 같은 부류의 쿨한 표현들이다. 실수에 대해 너무 엄격하게 혼을 낸 상흔으로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아이에게 매일 상비약처럼 발라주는 말 연고이다. 실수나 실패를 두려워하면 자신에게 충분한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험심이 약해진다.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물건 구입, 문제집 선택, 인터넷 강의 신청 등 많은 부분에서 아이에게 선택권을 준다. 어떤 대회에 나가는 것도 이제는 강요하지 않는다. 그랬더니 오히려 자기 삶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공부도 더 계획적으로 열심히 한다. 아이가 원치 않는 개입을 멈추고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바꾸니 더 이상 신경전을 할 필요도 없어졌다. 아이에게 진정 필요했던 것은 믿음 그 자체였던 거다.
나는 요즘 나보다 서른두 살은 더 어린 딸아이에게서 위로받고 지혜를 얻는다. 한 번은 “엄마가 속한 글쓰기 모임에서 대부분 회원들이 석박사인데 엄마만 학사라서 조금 쫄린다, 어쩌지?”라고 말했더니 아이가 우문현답을 내놓았다. “엄마, 쫄지 마요. 저도 학원에서 그쪽 강남 애들한테 절대 안 쫄아요. 제가 더 잘하면 되죠. 뭐. 그리고 엄마는 학사인데도 그런 모임에서 같이 공부한다는 게 더 대단한 거 아니에요?” 무릎을 쳤다. 또 한 번은 내가 웃기는 춤을 추면서 “엄마는 몸은 사십 대인데 마음은 여전히 이십 대 같으니 이상하지?”라고 했더니 “엄마, 몸은 이십 대인데 마음이 사십 대인 사람도 있을 텐데 그것보단 백배 낫지. 더 춰! 괜찮아.”라고 말했다.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고 멋지게 자라서 엄마를 위로하기까지 해 주다니. 너무 대견하고 고마웠다.
또 내가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고 있으면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다가 이런 말을 해서 감동을 주었다. “엄마, 나도 꼭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엄마처럼 폭풍 몰입할 거예요. 저는 엄마가 자랑스러워요.” 간혹 우리는 각자 자기 할 일을 열심히 끝내고 만난 밤이면 서로 너무 반갑기도 하고 스트레스도 풀 겸 음악에 맞추어 막춤을 추기도 한다. 항상 아이가 먼저 신청한다. 지코의 ‘아무나’에 맞춰서는 섹시한 춤을, 홍진영의 ‘엄지 척’에 맞춰서는 격렬한 춤을, 동요 ‘둥근 해가 떴습니다’에 맞춰서는 과격한 춤을 추어댄다. 그러고는 숨을 헉헉거리며 주저앉아 한바탕 웃는다. 어느새 딸은 나와 가장 꿍짝이 잘 맞는 친구이자 스승이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