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에서 쓸모없는 사람
모임에서 한 사람의 가치는 매우 단순하게 계산된다.
즐거움, 유용한 정보 이 두 가지로만 사람들은 나의 가치를 판단한다.
나는 재미가 없다. 진지한 얘기만 하고 진지한 대화만을 추구한다. 진지한 글만 쓰고 진지한 책만 읽는다. 고작 있는 취미라고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연구하는 것뿐이다. 유용한 정보는커녕 쓸 때 없이 구체적인 정보나 아무도 흥미 없는 얘기만 나열할 뿐이다.
모임에서 사람들을 위해 내가 유일하게 줄 수 있는 가치는 매우 까다롭게 선택된 식당에서 호스트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음식을 주문하고 그 음식에 맞는 와인이나 위스키를 선택하는 것이다. 사실상 잘 훌련된 웨이터와 본질적으로 다른 게 없다. 나는 모임에서 웨이터 역할을 한다.
그렇게 모두가 1차에서 즐겁게 저녁을 먹으면 2차를 가서 술을 마시고, 3차를 가서 술을 마신다. 그 순간부터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다. 멀뚱히 앉아서 남의 얘기를 듣고 적당한 반응을 해줄 뿐이다. 그렇게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성에게 큰 즐거움을 주는 사람도 아니다. 유머감각이 매우 특출 나지도 않아서 분위기를 더 즐겁게 만드는 것 역시 나에게는 매우 큰 도전과제다. 그래서 1차 저녁 이후에 나는 집에 간다. 그저 내가 집에 가는 것만이 모임에게 더 큰 가치를 줄 수 방법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라지면 재미없는 사람 한 명이 없어지는 것뿐이고 오히려 그 모임의 더욱 매력적이 된다.
나는 3명이 모이는 자리 정도에서는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기실 3명도 과대평가하는 것이고 1:1로 만난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 내 몫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말고는 크게 줄 수 있는 가치가 없다.
지식을 탐하는 것, 음식에 대한 필요 이상의 깊은 취향은 한 사람의 사회화에 지독하게도 안 좋은 영향을 준다. 시시콜콜한 대화가 싫어지고, 그저 그런 음식 앞에서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지성이란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는 능력이며 계속해서 발전만 할 수 있는 덕목이다. 하지만 그것을 좇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희열은 나 혼자만의 것이지 남들과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히려 늙어갈수록 나는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하나둘씩 주변 사람들이 떠나가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그것을 30살 초반부터 겪는 것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뿐이다.
그럼에도 나도 내가 하루 종일 얘기하고 떠들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언젠가는 인간이 외로워질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도 생생한 외로움은 나를 절망적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