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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격한 여행자 Feb 15. 2023

몇 살부터 노인일까

8년 만의 지하철 요금 인상에 끼어든 나이 논란

월급 빼고 다 오르는 2023년 추운 겨울입니다. 여기에 서울 버스, 지하철 요금까지 인상된다니 한숨이 절로 나오네요. 민심은 와글와글. 대통령이 '상반기에는 올리지 말라'고 했고 서울시는 그래서 4월에 하려던 요금 인상을 하반기로 미룬다고 발표했습니다사실 며칠 전에는 서울 시내버스도 지하철처럼 이동 거리에 비례해서 요금을 매기겠다고 했다가 보도가 나가고 반나절 만에 계획을 급철회하기도 했습니다. 여론이 악화되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재검토를 지시했다고 합니다. 이 결정에는 뒤에서 언급할 무임승차 손실 지원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부에 지원을 요구하는 서울시가 요금을 너무 올려 '서민 부담'이 부각되면 협상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죠.


그렇다고 요금이 그대로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여론수렴 등 절차는 계속 진행할 거라고 했거든요. 300원이냐 400원이냐. 어느 쪽이든 30% 가까운 인상이네요. 그런데 지하철 요금에 갑자기 끼어든 논쟁이 하나 있습니다. 


'몇 살부터 노인인가.' 


서울시가 대중교통 요금을 8년 만에 올리기로 한 후로 지하철 무임승차가 원인으로 지목됐고, 그러면 고령층 혜택을 없애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식의 흐름으로 이어진 건데요.


원래 서울의 지하철과 시내버스는 4월부터 기본요금이 300~400원씩 오를 참이었습니다. 교통카드로 내면 버스는 1200원에서 최소 1500원, 지하철은 1250원에서 최소 1550원으로 인상 폭이 약 30%나 되는 겁니다. 원자재 등 인상 요인은 더 많아서 이걸 다 고려하면 700원은 올려야 한하는데 최근에 다른 물가 상승에 따른 서민 경제 부담이 크니 70∼75%만 반영한 금액이라는 것이 서울시의 설명이고요. 그러면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정부가 생각을 바꿔서 교통약자 무임승차제도 손실을 보전해야 준다면 요금을 덜 올릴 수 있다”고 하면서 무임승차 공방이 본격화됐습니다.


사실 지난해 여야 합의로 전국 지자체가 운영하는 도시철도의 PSO, 즉 공익서비스에 따른 손실보전 지원 예산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는 통과됐습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반대로 본회의에서 무산됐던 점을 언급한 거예요.


서울 지하철은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적자 폭이 1조원 수준까지 불어났습니다. 가장 큰 문제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이 꼽히죠. 무료 수송 대상은 장애인, 국가유공가 등도 있지만 만 65세 고령층 비중이 80%가 넘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손실 일부라도 메워주지 않으면, 무임승차 연령을 올리거나 고령층도 요금을 내서 무료 수송 대상을 줄여야 지하철 운영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서울 지하철은 이제 각 열차별로 붐빔 상태도 알려주는군요.

가장 먼저 연령 조정 이야기를 꺼낸 곳은 대구입니다. 대구시는 올해부터 고령층 시내버스 무상이용제를 시작하는데 무료 탑승 대상을 70세 이상으로 잡았어요. 그러면서 현재 만 65세 이상인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도 버스랑 똑같이 70세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 정책을 발표하면서 "UN은 청년을 18세부터 65세까지로 보고 있고, 66세부터 79세까지는 장년, 노인은 80세부터라고 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100세 시대인 만큼 새로운 노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겠죠.


서울과 대구뿐 아니라 부산, 광주, 인천과 같이 지자체가 고시철도를 운영하는 도시들에 비슷한 상황입니다. 곧 대한노인회 등과 토론회를 열어서 무임승차 연령 상향이나 출퇴근과 같이 붐비는 시간대에는 만 65세 이상도 요금을 내는 등의 방안이 논의될 겁니다.


그럼 고령층의 무임승차는 언제부터 시작된 제도일까요?


서울 지하철의 경우 1980년 처음으로 70세 이상 승객에게 요금을 50% 할인해 줬습니다. 당시에는 근거법령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경로우대 차원에서 먼저 시행됐습니다. 노인복지법은 그 다음해인 1981년 만들어졌어요. 이때 기준이 만 65세 이상으로 정해졌고요. 시내버스나 국립공원 등 다른 13개 업종의 요금도 고령층에게 50% 할인해 주게 됩니다. 지하철 운임을 65세 이상에게 100% 할인, 즉 무료로 한 것은 1984년부터입니다. 당시 대통령 지시 사항으로 노인복지법 시행령이 개정돼 무료 승차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습니다.

     

무료 수송에 필요한 돈은 누가 내고 있는 걸까요?


이 돈을 정부에서 내야 하는지, 지자체에서 내야 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생긴 이유를 따져보려면 무임승차가 대통령 지시로 도입된 기원을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과거에는 대통령이 하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야 했기 때문에 전국 지자체가 각자 돈으로 무임승차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자체들은 무임승차가 거주지 상관없이 전국 모든 국민들에게 통일적으로 적용되는 국가 사무라고 주장합니다. 또 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공익서비스 제공으로 발생하는 비용은 원인제공자가 부담한다”는 항목도 정부가 재정을 부담해야 하는 근거로 제시하죠. 정부 복지 정책으로 도입된 무임승차이니 비용도 정부가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철도공사(코레일) 구간의 무임승차에 대해서는 정부가 연 3800억원 안팎의 재원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고령층'은 누구, 몇 세부터 해당될까요?


 한국에서 ‘노인’은 보통 만 65세 이상을 가리키죠. 전국에서 지하철 무임승차제도를 시행하는 근거인 ‘노인복지법’도 경로우대 대상을 65세 이상으로 규정합니다. ‘노인’ 기준은 사회보장제도, 고용, 주관적 기준으로 구분해 볼 수 있어요. 기초연금, 노인장기요양보험, 경로우대제도, 노인맞춤돌봄서비스 등 대부분 제도는 65세가 기준입니다. 정책 취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데 주택연금은 55세 이상, 농지연금은 60세 이상이다. 고령자고용법은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보지만 같은 법에서 고령자는 55세 이상으로 정의합니다. 이렇게 기준이 다르다 보니 생기는 문제도 있다. 고용 측면에서 퇴직은 '노인'이 된 60세에 하는데 국민연금은 63세(2033년 65세)부터 받으니까 소득 공백이 생기는 거죠. 또 기초연금은 65세까지 기다려야 받을 수 있습니다.


해외 사례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비롯해 65세를 노인의 기준으로 보는 것이 보편적이기는 합니다.


그럼 65세 이상에게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어떨까요?


한국은 특히 고령화 가속화로 사회적인 기준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최근 서울시가 조사한 내용을 보면 시민들이 생각하는 ‘노인 진입 연령’은 평균 72.6세로 법적 기준보다 7세 이상 높습니다. 한국인이 진짜 일에서 은퇴는 평균 연령도 60세가 아니라 72.3세라고 합니다. 70.8세인 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늦은 나이예요. 빠르게 수명이 늘어가다 보니 노후 준비가 안 돼 오래 일한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2022년 기준으로 기대수명은 83세까지 높아졌어요.


무임승차가 사회 문제처럼 된 것도 여기에 원인이 있습니다. 아무리 대통령이 지시했다고 해도 바로 무료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1980년, 제도를 처음 도입한 당시에 노인은 총인구의 7%밖에 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2025년이면 한국은 인구의 20% 이상이 노인인 초고령 사회가 됩니다. 서울은 2047년이면 65세 이상이 37%로 늘어날 것을 보이고요. 무료 승차 대상이 급증하겠죠. 그만큼 지하철 경영도 힘들어질 수 있으니 40년 전과 다른 노인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입니다. 


법과 현실의 괴리가 있기는 하지만 노인의 기준을 섣불리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사회적 파장이 적지 않기 때문이죠. 최근 이슈가 된 연금 수령 문제와도 맞물려 있어요. 만약에 무임승차를 70세부터 한다고 하면 갑자기 혜택을 받지 못하는 65~69세는 반발도 크겠죠. 해당 연령에 대한 일자리 정책 등 추가 지원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고령화뿐 아니라 저출생도 맞물려서 지금의 나이 기준은 어쨌든 유지가 힘들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무임승차가 지속가능하려면 대안이 필요하긴 합니다. 나이 기준을 바꿀 수도 있고, 출퇴근 시간대에만 요금을 받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도 있죠. 정부가 지원해 지자체의 재정 부담을 낮출 수도 있습니다. 서울 지하철만 보면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이 연간 3709억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회적 편익도 연간 3650억원인 것도 사실이에요. 대중교통 비용 부담이 없어지면 고령층이 외부 활동을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살이나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고, 의료비도 절감되는 덕이죠. 기초생활수급액도 감소해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가 큽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무임승차 제도의 비용편익분석(B/C)을 했는데 비용 대비 효과가 60~80% 더 큰 매우 경제적인 복지 정책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노인 복지 측면에서 앞으로도 유지돼야 하는 제도이지만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계속되면 도시철도 운영 주체는 수익 악화를 계속 감내해야 합니다. 특히 베이비붐세대 가운데 가장 인구 구성 비중이 높은 1958년생이 올해 만 65세에 도달해요. 그래서 무임승차에 대한 재정 부담이 가중되면서 제도를 수정해야 한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그럼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그나마 한국은 대중교통 요금이 저렴한 편에 속하잖아요?


미국은 65세 이상 연령층을 대상으로 주정부 방침에 따라 50~100%까지 차등적으로 교통비를 지원합니다. 영국 런던은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 60세 이상은 지하철이 무료입니다. 지방정부 재정으로 무임승차를 지원하는 일본 도쿄도의 경우 소득에 따라 차등을 뒀습니다. 도교도 교통국이 운영하는 지하철·버스를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패스가 있는데 주민세를 내지 않는 저소득층은 연간 1000엔(약 1만원)의 수수료만 내면 살 수 있습니다. 반면 주민세 납부 주민에게는 약 2만엔(약 20만원)에 팔아요.


근데... 지하철 적자 문제가 무임승차 탓만 있는 걸까요?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당기순손실이 2017년 5254억원에서 2019년 5865억원으로 늘었고,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승객 감소가 겹친 2020년에는 1조1137억원까지 확대됐습니다. 지난해 역시 적자가 1조원을 넘었죠. 공사 측은 이 가운데 무임수송 부담이 절반을 넘는다고 봅니다. 코로나 영향이 없었던 2019년을 기준으로 보면 무임승차 손실 비중이 63.2%(3709억원)였습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손실이 경영 과정의 복합적인 결과라고 반박합니다. 지자체에서 알아서 최적의 운영 방식을 찾아 개선해야 할 일이라는 거죠. 교통수단을 운영하는 주체에게 경영 손실 분을 정부가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경영 혁신이나 서비스 개선 의지를 꺾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영국 사례를 보면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으로 런던교통본부에 재정을 지원하면서 60세 이상에 지원되는 대중교통 무임승차 혜택을 줄이는 조건을 제시하게도 했죠. 그래서 2020년 6월부터 고령층 대상 ‘프리덤 패스’도 오전 4시30분~9시에는 요금이 부과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하철의 만성적 적자는 1) 무임승차와 2) 정책적으로 원가보다 낮은 요금 체제가 원인이라고 분석합니다. 이 두 가지 문제가 워낙 커서 먼저 해결이 돼야 운영 주체의 경영 효율화 등을 감시할 수 있다고 보는 거예요. 공공성이 큰 대중교통 운임은 이용자에게 이런 3) 비용을 전가해 실적을 개선할 수 없는 구조적인 딜레마도 있습니다.     


'무임승차'. 어딘가 용어에서부터 어감이 좋지는 않습니다. 


"정부가 경로우대 대상을 65세 이상에서 68세 또는 70세 이상으로 축소하거나, 저소득층 60세 이상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한다." 이런 이야기는 제도가 도입된 직후인 1980년에도 나왔습니다. 무임승차 논란은 오래된 주제인 거죠. 국가나 지자체의 세금을 통해 비용을 쓴다는 측면이 부각돼 경로우대라는 말도 점점 사라지고 무임승차라는 언어로 대표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40년 간의 역사가 꼬여있는 이 문제에 해결 방법은 있을까요?


서울연구원이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는데 오전 7~9시, 오후 6~8시 출퇴근 시간대 고령층에게도 요금을 부과하면 연 451억~ 559억원의 수익을 더 벌 수 있다고 해요. 무임승차 손실의 13~16% 정도를 줄일 수 있는 거죠. 만 70세로 무임승차 연령을 올리면 연간 911~1219억원의 수익이 더 발생합니다. 무임승차 손실 비용의 25~34%를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하면 우리 사회가 어떤 효과를 더 중요하게 고려할지가 결정해야 할 시간이 올 겁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어죠. 한국은 교통카드로 요금은 결제하는 비중도 높아서 단말기를 통해 교통수단, 시간, 연령, 지역 등에 따른 세부 통계도 뽑기 쉽죠. 현재 상황을 기술적으로 분석해 무임승차 대상을 정교하게 조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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