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로에 다시 차량이 지나다니는 것의 의미
[김보미의 도시&이슈]
서울의 유일한 대중교통전용지구인 연세로가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지구 지정 후 출입이 금지됐던 일반 차량 통행을 재개한 뒤 효과를 따져 지구의 존폐를 결정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했던 주목적인 ‘교통’이나 '보행'의 관점보다 ‘상권’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 운용을 2023년 9월까지 일시 정지하기로 하고 1월20일부터 일반 차량 통행을 허용한다고 합니다. 그간 노선이 지나가는 시내버스와 구급차, 사전 허가 조업차량 등만 진입할 수 있던 연세로에 과거처럼 일반 승용차 등 모든 교통수단이 지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심야, 새벽 시간대로 제한됐던 택시 운행도 언제나 가능해집니다. 단, 이륜차는 계속 제한된다고 하네요.
신촌로터리~연세대교차로 양방향 신호 체계와 차량 흐름은 지금과 같이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예전 연세로는 신촌로터리 방면으로 서강대쪽 직진도 가능했습니다. 서강대쪽에서 직진해 연세로로 올 수도 있었고요. 지구 지정 후에 연세로는 상하행 모두 우회전 진입만 가능합니다. 이런 큰 틀은 바뀌지 않지만 아무래도 다시 일반 차량들이 아무때나 들어오면 통행량은 늘어나겠지요. 서울시는 지체가 심해지면 경찰과 조율해 버스 정류장 인근에 별도 승하차 공간을 만드는 등 조치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현재 폭 3.5m인 편도 1차로 양방향 도로와 보도 폭(평균 6m) 등 보행 환경도 그대로 유지합니다.
대중교통전용지구의 운용을 일시 정지한 것은 일반 차량 통행 금지 후 매출이 감소했다며 주변 상인들이 지구 해제를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교통수단 진입이 가능해진 연세로 인근의 변화에 대한 분석이 6월까지 진행될 예정입니다. 지구 운용 전후로 주변에서 발생하는 신용카드 매출, 유동인구 등을 비교해 상권 변화를 추적합니다. 차량 속도나 지체율 등 교통 영향도 살펴본다고 해요.
핵심은 신촌 상권의 침체, 상권 활성화 실패의 이유가 지구 지정에 의한 것인지 따져보겠다는 것입니다.
지구를 지정한 이후 서울시나 서대문구가 효과를 정밀하게 추적해온 것은 아닙니다. 서울연구원이 몇 년 전 작성한 자료를 보면 2018년 인근 상권 매출이 전년 대비 10% 증가했다고 돼 있죠. 반면 서대문구는 신촌동 상점들의 5년 생존율이 32.3%로 지역 내 최저라고 파악하고 있어요. 2019년 신촌역 인근 2298개 수준이었던 가게 수는 2021년 2153개로 2년 만에 6.3%가 줄었다는 거예요. 서울시 전체 평균(0.1% 감소)뿐 아니라 교대역(2.8% 감소), 건대입구(0.3% 증가), 서울대역입구역(2.6% 증가) 등 다른 대학가와 비교해서도 침체된 수준이고, 매출 역시 신촌역 상권은 2019년 1713억원에서 2021년 1217억원으로 29%가 줄었다는 게 서대문구청의 자료입니다.
상권에 대한 분석이 엇갈리는 건 기준과 시점이 다른 탓인데, 그래서 정확한 효과 측정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신촌로터리에서 연세대 앞까지 이어지는 550m 연세로는 2014년 1월 서울에서 최초로 지정된 보행자·대중교통 전용공간입니다. 사람들이 걷기 위해 들러 공간을 즐기는 문화거리를 만들자는 취지로 조성됐지요. 2010년 전후로 당시 정부 차원에서 대중교통 이용 강화 방안이 추진되면서 국토교통부(당시에는 국토해양부였습니다) 중심으로 전용지구 지정이 논의됐어요. '걷기 좋은 도시'에 대한 정책이 각광받을 때였거든요. 국토부에서 그 예로 대중교통전용지구를 들었고, 이후 도시교통정비촉진법(제33조, 시행령 제14조)에 근거해 각 지자체장이 조례를 통해 지구 지정·유지·해제 권한을 갖게 됐습니다.
2009년 12월 전국에서 첫번째로 대구시 중앙대로 반월당네거리~대구역네거리 1㎞ 구간이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됐습니다. 두번쨰는 부산시 동천로 서면NC백화점~더샵센트럴스타 사이 740m 구간입니다.
연세로는 전국에서 세 번째 지정된 대중교통전용지구입니다. 보행자 중심의 정책이 시행되면서 3~4m였던 보도 폭이 7~8m로 넓어졌고 차로와 보도의 높낮이 차가 없어져 보행 환경이 대폭 향상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원래 연세로는 양방향 차량의 평균 시속이 10㎞ 미만으로 상습 정체 구역이었죠. 하지만 주변이 대중교통 중심으로 바뀌면서 유동인구의 접근성이 높아졌다는 게 중론입니다.
대중교통전용지구 지정은 3개 거리 이외에 다른 곳으로 확대되지 못했습니다. 구간이 짧은 데다 각자 특성이 분명한 지점이어서 보편성이 떨어졌다는 인식이 강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연세로의 경우 서울시와 서대문구가 지구 지정을 위해 당시 지역 이해관계자를 설득할 때 주효하게 언급한 상권 활성화 효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됩니다.
하지만 2012년 서울연구원의 선행 연구(서울형 대중교통전용지구 도입 연구)는 해외 사례 등을 바탕으로 “지정의 주요 목적이 주변 상권 수익성 제고일 때 대부분 실패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예컨대 1960~1970년대 최고 200개를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했던 미국은 이 중 85%를 일반지구로 회귀했다고 해요. 단순하게 차량을 배제하는 ‘길’이 목표가 아니라 이를 통해 다양한 토지 이용, 인구 유입을 촉진하는 상권 등의 설계가 있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지역에서는 상권 회복에 실패해 지구를 해제해야 한다는 주장과 보행 환경 등의 개선 효과가 커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붙은 상황입니다. 서울시는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분석과 검증을 통해 양쪽 입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상권 비교는 신촌뿐 아니라 유사한 지역까지 파악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치가 사실상 해제 수순 아니냐는 시각도 많습니다. 서대문구는 이미 2022년 10월부터 연세로에 대한 주말 ‘차 없는 거리’ 운영을 중단했지요. 특히 자동차 중심의 도시 환경을 사람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 도입한 지구가 ‘상권 평가’로 좌우되는 데 대한 우려가 큽니다. 앞으로 서울에서 비슷한 보행 환경 개선 정책을 도입하거나 새로운 전용 지구를 추진할 때 당위성을 가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전문가들은 대중교통전용지구는 차량을 억제하고 대중교통 선호도를 높여 지속 가능한 교통체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고, 상권 활성화는 결과적인 효과라고 강조합니다. 누적 데이터 등 명확한 판단 근거가 부재한 상황에서 지구의 방향이 결정된다면 서울시와 국토부가 유사한 교통 전환 정책을 추진할 때 기준도 모호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차량이 자유롭게 다니기 시작하면 연세로의 차량 흐름은 변화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서울시가 시뮬레이션(EMME4) 분석을 했는데 신촌로터리에서 연세대교차로 방향(상행) 교통량은 140%, 역방향(하행) 213.8%가 늘고, 주변 도로에도 추가 교통 수요가 발생한다고 해요. 이렇게 되면 특히 버스정류소가 2곳이 위치한 상행 방향은 평일 통행 속도가 현재 시속 13.4㎞에서 시속 1.4㎞로 최대 90%까지 감소할 우려가 있습니다. 승하차를 위해 정류소에 정차하는 시내버스와 일반 차량이 엉키는 시간이 생기는 탓이지요. 휴일에도 현재 시속 14.4㎞ 수준인 속도가 시속 6㎞로 60%까지 감소할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하행은 현재 평일·휴일 시속 39㎞ 수준인 통행 속도의 변화가 1% 내외로 큰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앞으로의 변화와 그 변화에서 무엇을 더 중요한 요소로 판단하게 될지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