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격한 여행자 Mar 26. 2021

도쿄에 머물게 된 이유

우리는 왜 갑자기 미나토구에 살게 됐을까

 

도쿄에서 지내고 온 이야기를 하게 될 때 자매1, 자매2가 꼭 받는 질문이 있다. “근데, 왜 일본으로 갔느냐”는 물음이다. 이 질문에는 간단한 버전과 길고 기나긴 버전, 두 가지 답이 있다. 자매1은 짧게 답할 땐 “가까워서”라고 한 마디로 끝내는데 “그래도 하필 일본이어야 했냐”라고 되묻는 사람들에게 긴 답을 꺼낸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두 사람이 도쿄 미나토구에 잠시 머물게 된 긴 버전을 대답을 해 보려고 한다.




자매1은 2003년 여름, 일본에 갔다. 첫 내돈내산 여행이었다. 목적지를 도쿄로 정했던 이유의 절반은 일본에 대한 호기심, 나머지 절반은 당시 모은 알바비로 구입 가능한 에어텔의 가격이 결정해줬다. 여행박사를 비롯해서 자유여행 상품을 파는 여행사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던 때다. 왕복 비행기와 4박 숙박비까지 50만원 정도에 구입했던 것 같다. 대학생이었던 나와 친구는 돈 아끼려고 비자도 여행사에 맡기지 않고 직접 대사관에서 긴긴 줄을 서서 셀프로  받았다. 네... 일본 여행 비자받아서 가던 옛날 사람입니다...일본의 한국인에 대한 입국 비자 발급 의무는 2005년 만국박람회 때 임시로 없어졌다가 2006년부터는 완전 사증 면제로 무비자 90일까지 여행이 가능해졌다.


미나토구 시바우라(芝浦) 지역은 운하를 따라 길이 나뉘어있다. 도쿄가 아기자기하게 보이는 요인 중에 운하의 지분도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도 인터넷에 올라온 여행 후기들이 있었지만 사진, 동영상보다 글로 풀어서 설명하는 게시판이 대부분이었다. 지도 앱도 당연히 없었다. '윙버스'라는 것을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는지... 맛집, 관광 스팟, 가게 등등을 표시한 여행 지도인데 pdf 파일로 공유되었다. 첫 여행뿐만 아니라 그 후 몇 년을 더 이 지도가 업데이트된 것을 모아서 칼라 프린터로 뽑아 들고 다녔다. 이런 라떼 이야기를 굳이 꺼낸 것은 자매1이 도쿄에서 받은 첫인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니콘의 쿨피스 등 디지털카메라가 적어도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일반화된 시절이라서 여행 사진을 싸이월드에 올리고는 했지만 지금처럼 숙소 주변을 구글 어스로 보고 가는 것에 비하면 정말 낮은 단계의 리뷰 정도를 보고 떠난 여행이었다.


나리타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신오쿠보에 어느 민박집(다다미방 만션이었는데 방 2개에 3팀이 숙박했고 바선생이 나오셨다...)까지 가는 길. 처음 본 도쿄는 건물, 도로, 보도블록, 신호등, 길가 쓰레기통까지 모든 것이 충격이었다. 도심에 줄지은 크고 높고 넓은 빌딩들. 차선과 교통 표시가 반듯반듯하게 도색된 도로. 블록 사이 벌어진 틈은 물론, 약간의 턱도 용납하지 않는 말끔하게 깔린 보도블록. 세련되고 다채로운 패션의 사람들.(K팝과 K뷰티의 시대에는 믿기 힘들지만 그때만 해도 정말 그랬다. 모두가 똑같은 무채색 정장만 입고 다니는 지금의 도쿄는 나에게 더 생경할 지경이다...) 


2018년 긴자(왼쪽)와 2017년 마루노우치(오른쪽). 도쿄 최애 스팟들. 웅장하고 압도당했던 일본의 첫인상에 가장 가깝다. 두 사진 모두 차를 막아 보행자전용일 때 차로 모습.


서울과 똑같은 겉모습을 하고 있지만 너무나 발전된, 나만 모르고 있었던 듯한 서울의 선진국 버전이었다. 나의 세계는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서울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 도시가 어떤 다른 것을 모델로 했다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트루먼쇼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었달까. 약간 화가 나기도 했고 어이가 없기도 했던 것 같다. 나중에 일본에서 지낸 경험이 있는 선배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나보다 한참 윗세대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50대 이상의 연령에서는 일본에 대한 자격지심, 어떻게 해도 일본은 이길 수 없는 나라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경제, 문화, 외교 등에서 경험적으로 축적된 약간의 패배감 같은 것 아닐는지. 2021년에야 10대, 20대는 물론 30대 동년배까지도 일본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내가 처음 도쿄에서 느낀 압도감 같은 충격이 어르신들의 일본에 대한 감정과 비슷한 결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나도 경험 없는 어린이였고 도쿄에 대해, 일본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 여름 첫인상은 너무 강력했다.


하라주쿠 크레페도 비싸다고 스킵하며 4박 5일 알뜰살뜰 지내고 온 도쿄 여행은 이후 일본에 대해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 도쿄가 그리고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책과 글을 통해 많이도 찾아봤다. 그리고 호기심은 더 확장됐다. 첫 도쿄행 이후 3년이 지나 취직을 했고 1년에 2번씩 돌아오는 휴가에는 어딘가 다른 도시에서 보내게 됐다. 휴양지는 놉. 정말 도심 한복판에서만. 지금까지 약 40곳 정도의 도시를 다녀왔고 개인적인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언젠가 이 호기심의 시작점이 된 도쿄에 살면서 서울과 무엇이 같고 다른지 충분히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 그리고 거짓말처럼 정말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도쿄를 선택했다. 1년을 지내고 보니 생각보다 더 서울과 똑 닮은 도쿄에는 서울의 사람들과 180도 다른 이들이 산다. 그래서 더 도쿄가 흥미로워지긴 했지만, 여기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더 해보자.




미나토구 자매들의 백반이었던 오오토야(大戸屋)의 정식 세트. 소비세 8% 시절엔 880엔이었는데 지금 얼마일까. 혼자 밥 먹기 정말 좋은 체인이다.


직장 생활에 지친 자매2는 몸도, 마음도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어디로든 가고 싶다, 아니 가야 한다고 결심을 내렸던 때가 있다. 그리고 택한 목적지가 도쿄였다. 양가에 모두 일본인 배우자와 결혼한 친척 커플이 있어 어릴 때부터 친근했고, 또 그래서 어떤 나라인지 궁금했다. 가장 알고 싶었던 건 ‘개인’이 삶의 중심이 되는 문화였다. 자매2에게 일본 사람들은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선 그렇게 ‘자신만의 공간을 찾으려는 사람’에게 이기적이라고 한다. 그런 평가를 받기 싫어 자매2는 오히려 더욱 “우리 가족!”을 외쳤지만, 그 시간이 결국 자신을 더 힘들게 했다는 것을  더는 버틸 힘도 남지 않았을 때가 돼서야 깨달았다. ‘척’이 삶을 이어가기 힘들다고 생각했을 때, 그래서 나를 ‘이기적’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것 같았던 일본으로 떠나기로 했다.


생김도 비슷한 데다 코로나 전에도 마스크를 애용하던 일본에서는 굳이 입을 열지 않으면 내가 이방인이라는 것까지 감출 수 있었다. 오롯이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공간. 자매2에게 도쿄는 그런 곳이었다.


도쿄는 1인 가구가 살기에 최적의 도시라고 생각한다. 물론 서울도 1인 가구가 많아졌지만 도쿄에는 혼자의 문화가 조금 더 먼저 시작된 만큼 생활 곳곳에 흔적들이 쌓여있다. 짱짱한 수납공간에 사활을 건 듯한 원룸. 혼밥, 혼술, 혼카페 심지어 혼고기를 할 수 있는 음식점. 식재료도 1인용 포장이 다양해서 버려질 식재료 걱정 없이 1인 장을 봐도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다. 200엔어치 수박, 회 10조각, 배추도 8분의 1조각을 나눠서 판다. 식빵도 2장, 3장짜리 묶음이 있다. 닭꼬치, 닭날개 튀김 같은 술안주도 마트에 가면 100엔짜리를 한 줄, 두 줄씩 셀프 포장해서 결제할 수 있어 혼자 집술도 정말 저렴하게 할 수 있다.


초우쥬쿠(超熟) 식빵 山形 3장짜리. 버터에 구워 먹으면 정말 맛있다. 3장짜리는 보통 마트에서 100엔, 6장짜리는 160엔 정도. 
도토루 매장 1인석 자리. 옆사람이 자리를 침범?하지 않도록 선을 그어준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긴 한데 적응하다 보면 이렇게 해줘서 고마운 순간들이 있다 ㅎㅎ


타인에게 민폐(迷惑, めいわく)를 끼치지 않으려는 의지도 자매2가 도쿄에서 편안함을 느꼈던 포인트였다. ‘나도 너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 테니 너도 나에게 그러지 않길 바란다’는 것이 서로의 윈윈이라고 생각했다. 지하철에서 서로 부딪히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전철을 타기 전부터 백팩은 앞쪽으로 매고 어깨에 매는 가방도 보통 옆구리에 껴서 걸리지 않게 한다. 비 오는 날 우산은 무조건 모두 접어서 가지고 탄다. 서울의 지하철보다 배 이상의 밀집도를 보이는 도쿄의 전철이지만 어깨빵을 당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어떤 쾌적함 같은 것이 있었다.


사실 두 사람 모두 1년이라는 정말 짧은 시간을 살다 왔기 때문에 일본의 시민 의식이나 정서를 100% 알 수도 없고, 사실 20년 넘게 산 자매2의 친척 오빠도 모르겠는 부분이 있어서 힘들다고 한다. 도시도 사람도 생김새는 무척이나 닮았고 언어도 서로 배우기 쉬워서 진입장벽이 낮은 것처럼 보이지만 문화와 기질, 근본적인 가치관은 정말 다른 곳이 도쿄와 서울인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그 지점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이어가겠다.




그래서 왜 도쿄에서도 그 비싼 미나토구에 자리를 잡았는지? 이건 한 줄 설명이 가능하다. 학교가 미나토구에 있었고, 매일 아침, 걸어가고 싶었을 뿐이다...

자매1, 자매2가 매일 지나다니던 학교는 참 작았다..




※이 연재는 엄격한 여행자와 두번째 행인이 함께 만들어 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본의 벚꽃 루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