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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격한 여행자 Mar 19. 2021

일본의 벚꽃 루틴

어느 스팟에 핀 벚꽃이 내 취향인지 찍어보자

봄은 '모두가 알고 있는 기적'이라고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겨울은 끝나고 볕이 따뜻해지는 봄이 온다. 회색이었던 도시가 조금씩 초록으로 물들면 신나는 일이 생길 것 같은 철없는 감정은 이 나이가 되어서도 그렇다.


일본에서 '' 하면 거의 모든 국민이 똑같은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을까? 벚꽃, 사쿠라() 말이다. 하나미(花見) 시작되면 전국 모든 동네에서  동네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걷고, 먹고,  걷는다. 지난해에는 코로나가 시작되고 통제가 심해지면서 하나미는 없어졌다고 하는데 올해는 확진자가 많이 나오고 있어도 꽃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은  되는  같다. 긴급사태 선언도 해제됐으니 하나미 루틴은 회복된듯. 도쿄나 수도권  확진자가 그닥 많이 없는 소도시들은 이때쯤이면 밀려들었던 외국인 관광객 없이 조촐하고 조용한 하나미를 즐기고 있다고.


일본은 철마다 동네 축제도 많고, 골든위크에도 이런저런 볼거리가 생기고, 연말연시엔 루미나리에도 있다. 여름은 불꽃놀이, 하나비(花火)도 성대하지만 계절 축제로는 벚꽃을 이길 수 있는 건 없다. 1년간 도쿄 살면서 한국에서 가장 많은 손님들이 왔던 시기가 2019년 봄이다. 3~5월은 하루 2만보 이상 걷는 가이드 강행군이 심심치 않게 이어졌다... 그래도 일본이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많은 친구들이 즐겁게 놀다 갔으니 가이도상으로서 만족한다.


벚꽃 시즌이 되면 어디서나 길을 걷다 고개를 들어 이런 장면을 만날 수 있다!


벚꽃을 보러 오는 친구들에게 항상 신신당부했던 것이 하나 있다. 하지만 아무도 말을 듣지 않았고... 나중에 큰 코 다치고 나서야 잘못했다고 후회하며 반성하게 됐던 그것! 옷 좀 두껍게 입고 오라고! 패딩 잠바, 모직 코트, 심지어 롱패딩 가져와도 괜찮다고 그렇게 말을 했것만... 모든 손님들이 트렌치코트와 라이더 재킷, 봄맞이 원피스를 일본 꽃놀이 관광에 맞춰 개시하고 만다. 그러다 결국 감기에 걸리시거나, 목이 아프시거나, 몸살기로 고생하시고... 한국 돌아가면 바로 장롱으로 들어갈 후드티, 얇패딩을 구입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보통 벚꽃철 도쿄 바람의 세기다. 아직 볕도 따뜻하지 않은데 트렌치코트 입고 이런 바람을 맞으며 돌아다니면 감기가 걸리지 않을 수가....

고집불통 손님들이 현지 생활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날씨 어플로 예상 기온을 보면 벚꽃이 한창일 때 보통 15도 이상이고 18도, 20도까지 오르는 날도 있으니까. 나도 처음엔 마찬가지였지만 일본에서, 특히 도쿄는 기온만 보고 옷을 입었다간 감기 걸리기 십상이다. 바람이 너무너무 세기 때문이다. 아직 따뜻하지도 않은 공기에 골목에서는 싸다구를 날리는 바람을 맞으며 밖에서 몇 시간을 걷다 보면 당해낼 방도가 없음. 차라리 롱패딩 안에 얇은 옷을 입고 실내에선 겉옷을 벗는 게 낫다. 밖에 사진 찍을 때만 잠깐 벗고서 봄옷으로 기록 남기면 되는 것인데! 그리고 벚꽃은 낮과 밤을 다 봐야 하기 때문에 추위는 꼭 이겨내야 한다! 다 피가 되고 살이되라고 가이도상이 말해주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백이면 백, 얇은 옷만 가져온다는 슬픈 이야기 ㅎㅎ


낮에도 너무 이쁘지만 밤에도 다른 느낌으로 이쁘다. 벚나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라이트업이 되기 때문에 중무장하고 밤바람을 맞으면서라도 꼭! 밤에도 하나미를 해야한다.


벚꽃은 매년 개화 시기가 조금씩 달라서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도쿄를 기준으로 3월 말에서 4월 초까지 길면 2주에서 짧으면 열흘 정도 절정으로 만개한 벚꽃을 즐길 수 있다. 이 시기를 정확히 맞춰 몇 달 전부터 휴가 쓰고 비행기표를 사둘 수는 없으니 도착한 시기에 꽃이 얼마나 남아있느냐는 그저 운이다.


2021년 개화 시기. 평년보다 엄청나게 빠르다. 도쿄의 경우 내가 있었던 2019년은 3월21일이었다. 이때도 조금 빨리 핀다고 했었던 거 같은데....


일본에서 벚꽃 관광지로 유명한 스팟들이 엄청 많지만 굳이 이런 곳을 일부러 찾지 않아도 여기저기 골목이나 신사, 절에서 꽃놀이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일본인에게 벚꽃이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벚꽃이어서가 아니라 생애주기별로 벚꽃과 관련해서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일상의 거의 모든 공간에 벚나무가 있고 봄철은 1년에 한 번씩은 오니까 말이다. ㅎㅎ 서울의 여의도처럼 작정하고 양쪽으로 꽃길이 이어지는 스팟이 아니라도 봄이면 어디서나 꽃잎이 흩날리는 장면을 볼 수 있다.


2017년 벚꽃구경 픽. 지유가오카 놀러갔다가 우연히 들어간 작은 절에서 만난 벚꽃. 만개 시즌이라면 굳이 사람 많은 관광지로 가지 않아도 된다!


아마 한국 관광객들이 도쿄에서 벚꽃을 보러 가장 많이 가는 곳은 나카메구로일 듯. 운하의 물 위로 양쪽에서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모습은 절경이고 장관이긴 하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한 번쯤은 가볼 만 하긴 한데 주말엔 사람이 너무너무너무너무 많다...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드니 평일에도 한적한 때가 많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닐 것으로 상상해본다. 스미다강도 도쿄에서는 많이들 가는 스팟. 여긴 워낙 꽃길이 강 양쪽으로 길고 넓고 해서 스카이트리와 함께 묶어서 가볼만하다. 평일 낮에 가면 그렇게 사람은 많지 않으나 좀 광활한 느낌이라 아기자기 벚꽃 구경과는 다른 이미지일 수도 있다. 유료 입장이기는 하지만 신주쿠교엔 벚꽃도 매우 추천.


스미다강의 벚나무(왼쪽)과 나카메구로의 벚나무(오른쪽). 광활함과 아기자기. 특징은 다르지만 두 곳 모두 벚꽃 스팟으로서 손색이 없다.

코로나 전에는 벚꽃이 개화할 즈음부터 인도에 줄지은 벚나무 밑에 파란색 장판?같은 것이 깔렸다. 처음 봤을 때는 공사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그 길을 다시 가보니 사람들이 그 돗자리 위에서 앉아서 모임을 한다; 점심에 도시락 먹는 직장인도 많고 밤에는 술판이 벌어진다. 남한테 민폐를 끼치는 걸 극혐하는 일본에서, 인도 한복판에 자릴 깔고 앉아있는 풍경이 용납되다니? 싶기도 했다. 하나미만큼은 특별한가 보다.


사쿠라 시즌엔 각종 한정판 에디션이 정말 엄청나게 많다. 사쿠라모찌(桜餅)이 시기에만 나오는 떡. 토라야 같은 전통? 식품점에도 있고 동네 가게, 마트에도 많이 팔고 있다. 찹쌀떡 속에 팥을 넣고 벚꽃나무잎(꽃잎 아님;)으로 감싼 것인데 맛은 뭐 그냥 찹쌀 팥떡이지만 잎에서 나는 향이 풀맛;을 나게 한다. 사실 팥떡 자체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서 불호...


사쿠라모찌. 왼쪽 사진 중 동그란 모양이 간사이식, 넓적한 것이 에도식(도쿄식)이라고 한다. 사쿠라 철이 되면 편의점에서도 이 떡을 판다.


사쿠라모찌는 정말 계절 음식이고 편의점에 가면 스위츠나 술, 과자 등 패키지를 벚꽃에 맞춘 기간 한정 제품은 대량 쏟아진다. 맛이야 기존 제품과 똑같지만 패키지가 이쁜 것들이 많아서 소품용으로 더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스타벅스 사쿠라 에디션처럼...


고작 1년 살았지만 그래도 손님들 뫼시고 다니느라 그래도 제법 벚꽃 구경을 하다 보니 벚꽃 취향도 생겼다. 일본에 자생하는 벚꽃은 원종은 9개인데 교배하고 인공으로도 만들어서 지금은 200종 이상 있다고. 계속 새로운 품종이 발견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내가 실제로 본 것이 몇 종류나 되겠나 싶겠지만 그래도 개취를 뽑자면 시타레(シダレ)사쿠라. 수양벚나무라는 이름인데 정말 수양버들처럼 아래로 축 늘어진 가지에 꽃잎이 핀다. 꽃잎은 분홍에서 진분홍 사이. 도쿄보다 교토에 더 잘 어울리는 느낌이랄까. 문제는 축 처진 가지 때문에 꽃이 질 때는 너무 쓸쓸한 모습...


교토에서 우연히 절에 들어갔다가 만난 시타레자쿠라. 최애라더니 변변한 사진 한 장 안 찍어 놔서 이렇게 잎이 다 떨어진 컷밖에 없.. 만개일 때는 정말 이쁘다;


도쿄와 같은 도시에는 한국에서 왕벚나무라고 불리는 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 같이 하얗고 깔끔한 꽃잎이 어울리는 것 같다. 바람에 흩날려 떨어질 때도 도시는 분홍보다 흰색이 어울린다는 느낌.(취존 부탁..) 2019년 벚꽃철에 너무 열심히 다녀서 평생 볼 거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벚꽃철이 되니 동네 인도에 떡하니 한 그루 서있었던 벚나무가 궁금해진다. 왕벚나무가 아니었을까 추정해 본다.

미나토구 미타2초메 횡단보도 앞 벚나무야 잘 있지? 언젠가 다시 만나..




※이 연재는 엄격한 여행자와 두번째 행인이 함께 만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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