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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수없음 Feb 19. 2017

[여행] 러시아 - 이르쿠츠크

2016. 09. 23



갑자기 바뀐 계획이었다.

몸도 추스를 겸, 바이칼 호수도 구경할 겸 내린 터라

정보가 전혀 없었다. (3일 만에 여행을 준비한 탓도 있었다)


부랴부랴 숙소를 검색하고, 시내로 향했다.

오전 7시 경, 이르쿠츠크
에어비앤비로 급하게 찾은 숙소
기대 이상 깔끔했던 방


숙소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저렴하게 구했다.

2인실이었는데, 새로 생긴 숙소인지 손님이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덕분애 개인실로 쓸 수 있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살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시내 구경에 나섰다.

러시아 내륙 한 가운데 있는 이 도시는 그리 번잡해보이지 않았다.

건물은 큼직큼직했고, 사람은 듬성듬성 보였다.

읽을 수 없는 간판들과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속에서 온전히 나 혼자 타인이었다.

여행의 묘미는 그런 데 있는 거지만.

나쁘지 않은 긴장 속에서, 외롭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한 것 같다.



가만히 살펴보면 집 모양이 전부 달랐다.

아파트로 도배된 도시, 파란색 슬레이트로 통일된 마을을 보다가

각자 제각기 다른 건물들을 보니 신기하고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찾아보니 이르쿠츠크 사람들은

'우리 집이 옆 집과 달라야 신이 헷갈리지 않고 우리 집을 잘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아름다웠다.

신의 축복을 바라는 순수한 마음도.

내 삶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집을 꾸몄을 모습도.


기차에서 만난 친구와

영화관을 테마로 한 카페에 잠깐 들렀다.

케잌도 커피도 몇 년만에 먹은 것 처럼 맛있었다.

카페 테라스, 빛이 들고 있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우리는 또 각자의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녀는 가고픈 곳이 있었고

나는 가고픈 곳이 없었다.

그저 보이는 곳으로 걸어갔다.


상가 안의 과일가게. 포도 알맹이 모양의 과일을 500원 어치 사서 먹었다.
부산을 달렸을 버스가, 러시아 한복판을 달리고 있다. 부지런하기도 하지.
버스정류장에서 보이는 버스를 아무 거나 집어 탔다. 어디론가 가겠지.
버스는 차고지로 들어갔다

나는 버스 타는 걸 좋아한다.

돈도 없고, 갈 곳도 없었던 고등학생, 중학생 때부터. 아니 초등학생 때부터.

아무 버스나 골라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내가 모르는 곳으로 떠나는 느낌도 좋았고,

버스 창가에 기대 눈을 감고 햇볕을 받으면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회차해서 돌아오면 짧은 여행이 끝났다.


그래서 여행을 가면 (웬만하면) 버스를 타보는 편이다.

버스를 타면 저렴한 가격에 시내투어도 할 수 있고, 시골 마을도 구경할 수 있다.

사람이 있는 곳에 정류장이 있기 마련이라 주택가도 구경할 수 있다.

돌아올 때는 맞은 편 정류장을 이용하면 된다.


이번에는 적당히 내리려고 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종점이었다.

아스팔트 한 가운데에 나를 내려놓고 버스는 무심히 떠났다.


정말 아무도, 아무 것도 없었다

해가 질 것 같았다.

인터넷도 잘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인터넷은 정말 아무데서나 빵빵 잘 터진다)

막막하지만 별 수 있나.

아스팔트를 걸었다.

그리고 얼마 뒤, 구원처럼 버스가 나타났다.


창문에 커튼처럼 파란색 천을 달아놓았다. 묘한 분위기가 예쁘다.
수 많은 포스터가 붙었다가 떼어졌겠지. 저 흔적들이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시내에 도착했다.

거리가 어두워졌다. 텅 비었다.

대한민국 서울과는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것 같은 도시,

이르쿠츠크와의 만남이었다.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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