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의 '내 마음 깊은 곳의 너'를 들으며
우리나라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음악인이 누가 있을까요?" 라고 묻는다면 신해철이라는 이름은 항상 오르내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가요제를 시작으로 보여준 그의 음악적, 사회적 행보는 우리나라 대중들에게 크게 작용했으니까요. 비록 시대가 달라졌지만 그의 데뷔곡 '그대에게'가 아직도 노래방과 운동회, 대학축제에서 들려오는 것 처럼 그의 이름도 여전히 이곳저곳에서 들려옵니다. 그리고 저는, 그가 만들어낸 수많은 곡들중 '내 마음 깊은 곳의 너'라는 곡을 참 좋아합니다.
흔히들 말하는, MZ세대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곡이지만 '민물장어의 꿈', '날아라 병아리'와 같이 신해철 추모곡으로 여겨지는 곡중 하나입니다. 특히 저는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긴 시간을 스쳐가는 순간인 것을'이라고 하는 후렴구 가사가 흘러나오는 부분을 좋아합니다. 본래 이 노래는 화자가 연인에게 불안한 미래를 함께하자고 말하기 미안해 이별을 선택한다는 내용인데, 어째서일까요, 앞서 말한 후렴구 가사는 단지 연인이 아닌 이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신해철이 전하고 싶었던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으로 이루어집니다. 누구를 만나고, 언제 헤어지느냐에 따라 우리는 다른 길을 걷게 되겠죠. 그러나 어떤 만남이든, 어떤 이별이든, 그것들이 모두 긴 시간 속의 하나의 순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됩니다.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긴 시간을 스쳐가는 순간인 것을.” 이 짧은 가사는, 어쩌면 우리가 평생을 두고 배워야 할 인생의 문법을 모두 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만남이든, 그것이 기쁘고, 기다리던 만남이라면, 첫 만남의 순간에는 그 기쁨이 영원할 것이라 느낍니다.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면, 그 순간의 열정이 모든 시간을 이길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그 뜨거운 만남조차 결국 시간 앞에서 조금씩 식어가고, 잊히고, 다른 만남으로 대체된다는 사실을요. 그것이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동시에 위로이기도 합니다. 헤어짐의 슬픔 역시 그러하니까요. 오늘의 이별이 결코 끝이 아니라, 긴 시간 속을 스쳐가는 하나의 흐름일 뿐이라는 것. 그렇게 생각하면, 삶의 많은 고통들이 조금은 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인간은 누구나 관계 속에서 자라게 됩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며 자신을 비추어 보고, 헤어짐 속에서 자신을 다시 다듬습니다. 어떤 만남은 오래 지속되고, 어떤 인연은 짧게 스쳐가지만, 그것들은 모두 우리 안에 흔적을 남깁니다. 사랑, 우정, 동행, 스승과 제자의 관계, 가족 간의 인연. 그 모든 관계들이 결국 우리를 하나의 인간으로 빚어낼 것입니다. 그렇기에 만남과 이별은 삶의 두 축이며, 그 어느 하나도 쓸모없다거나 귀찮다거나, 불필요한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꼭 필요한 경험이라고 할지라도, 헤어짐은 늘 슬픔을 동반합니다. 이별 앞에서 우리는 무력해집니다. 아무리 단단히 잡고 있던 손도 결국은 놓아야 할 때가 옵니다. 그렇지만 저는 믿습니다. 이별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진심으로 만났다는 증거라고. 정말 단순히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굳이 헤어짐의 고통을 느낄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가 아파하는 이유는, 그만큼 그 관계가 내 삶의 한 조각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뜻 아닐까요?
“삶의 모든 순간은 기념비가 아니라 바람결이다.” 어디서 접한 문장인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그 문장은 제게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면서, 그 순간을 돌로 새기듯 남기려 하지만, 사실 삶은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흘러갑니다. 그 흩날림 속에서만 우리는 비로소 ‘지나감’의 아름다움을 배웁니다. 지나간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꿔 남는 일입니다.
사람은 기억으로 살아간다고들 하죠, 우리가 겪은 모든 만남과 이별은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어떤 얼굴, 어떤 목소리는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기억은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아프지만, 결국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 마음속의 첫사랑을 떠올려 봅니다. 그때의 설렘과 순수함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괜찮습니다. 그 사랑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깊이에 스며든 것입니다. 꼭 첫사랑이 아니더라도, 헤어진 친구도, 떠나간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내 안에 머물러,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를 결정짓습니다. 이렇듯, 사람은 결국 스쳐가는 존재입니다. 길 위에서 만나, 함께 걷다가, 각자의 길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 ‘스침’ 속에 인생의 모든 진실이 있습니다. 길게 이어지지 않아도, 짧은 만남이 삶을 바꾸는 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한마디, 짧은 미소, 잠깐의 눈빛이 인생 전체를 흔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쳐감은 결코 하찮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침 속에 삶의 본질이 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저는 점점 덜 집착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주변에 무관심하다'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건 잘 모르는 말입니다. 저는 대신 그 순간을 더 깊이 들여다보려 합니다. 오래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을 더 소중히 바라볼려고 노력합니다. 만남의 순간에 감사하고, 이별의 순간에 인사합니다. 그렇게 매 순간 작별하며 사는 것이 인생 아닐까요.
인생의 순간은 모두 스쳐갑니다. 그러나 그 스침 속에서 우리는 배우고, 느끼고, 성장합니다. 그러니 만남이든 이별이든, 그것이 전부 우리를 완성하는 과정이라 믿습니다. 긴 시간 속을 스쳐가는 순간들이 결국 우리 삶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께 조용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지금 누군가와 헤어지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너무 슬퍼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 사람은 이미 당신 안에 남아 있습니다.
혹은 누군가를 새로 만나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그 기쁨을 조금만 천천히 음미하십시오. 그것은 영원이 아니라, 스쳐가는 봄날의 햇살이지만, 그 짧은 빛이 평생의 온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은 모두 같은 시간의 다른 표정입니다. 그 표정을 다 받아들이며 사는 일이 성숙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잠시 머무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잠시가 서로의 인생에 남기는 흔적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웃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인생 아닐까요.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긴 시간을 스쳐가는 순간인 것을"
분명, 그 순간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빛나고 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