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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몰라 Jun 13. 2024

에필로그

불확실한 것에 도전하는 데는 무모함이 때로는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모함이 반드시 주먹구구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모할수록 더 주도면밀하게 접근해야 시행착오의 확률을 줄일 수 있습니다. 불확실한 것을 확실한 것으로 밝혀나가는 작업이 프로젝트입니다. 확실한 것으로 밝혀나가는 과정이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손에 잡힐 수만 있다면 도전의 짐은 다소 가벼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R&D는 불확실성 덩어리입니다. 불확실한 부분을 걷어내 확실한 부분으로 밝혀나가는 도전이 프로젝트이며, 이러한 도전을 손에 잡히게끔 만드는 작업이 매니지먼트입니다.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을 손에 잡히게 하기 위해서는 R&D PM을 시스템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 어떤 일도 혼자서 이루어낼 순 없습니다. 본인의 노력과 주위의 도움이 하나로 통합되어야 비로소 무언가를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R&D PM 시스템은 본인이 항상 주시해야 할 일 범위(scope), 시간(time), 비용(cost), 퀄리티(quality), 리스크(risk) 경영 부분과, 주위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할 인적자원(human resource), 이해관계자(stakeholder), 조달(procurement), 의사소통(communication) 경영 부분, 그리고 이 모두를 총체적으로 다루어야 할 통합(integration) 경영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이와 같은 R&D PM 시스템이 아무리 잘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이를 떠받치고 있는 공유와 협업 생태계가 제대로 조성되지 않는다면 그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습니다. 

불확실성에 도전하여 성공적인 작품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운(運)이 작동하는 시스템이 되어야 합니다. 운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氣)가 살아나야 하고, 기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심(心)이 동해야 합니다. 성공을 통한 자아실현의 열망으로 확고한 미션과 비전을 세우고, 감사와 사랑으로 충만한 공유와 협업의 연대 의식으로 마음 밭이 충만해진다면, 함께 하는 사람들의 사기(士氣)가 하늘을 찔러 실패를 주저하지 않는 용기가 솟아나 신바람 나는 기가 돌아, 결국 성공의 운이 일어나게 됩니다. 

매일 출근하는 일터가 신바람 나는 놀이터(playground)가 될 수 있다면 성공은 저절로 찾아올 것입니다. 성공적인 작품은 혼자서는 결코 일구어낼 수 없습니다. 일을 재미 삼아 모두 함께 놀 수 있을 때 창의적 발상이 떠올라 세기의 작품이 창출될 수 있습니다. 억지로 해서는 그러한 작품이 나올 수 없습니다. 혼자 가면 금방 지쳐버립니다.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고, 함께 가면 오래 갈 수 있으며, 함께 가면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고, 함께 가면 바르게 갈 수 있습니다. 

누구나 스키너 박스에 갇혀 먹이만을 쫓는 생쥐가 아닌,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는 성장 과정을 놀이 삼아 자아실현을 성취하고자 하는 남다른 품격의 영혼이 되고자 합니다. 눈부신 햇살이 감싸 안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부족하지만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음에 감사하는 그런 존재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퀸 오브 다이아몬드’보다 ‘퀸 오브 하트’를 가슴에 품고서 사랑을 전하며 일조하는 삶을 살아가길 희망합니다. 그래서 10억 년 전 선물로 받은 생명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고자 합니다.

위대한 성과는 비전에 대한 지속적 몰입과 갑작스러운 통찰력의 곱으로 이루어집니다. 비전에 대한 지속적 몰입은 먼저 ‘할 수 있는 것’부터 가볍게 시작하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여, ‘되고 싶은 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때 가능해집니다. 갑작스러운 통찰력은 하나에 집착하지 않고 열린 눈으로 전체를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튀어나오는 게 됩니다. 통찰을 방해하는 집착은 욕심에 사로잡힐 때 일어나며, 욕심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시야가 자유로워져 통찰이 가능해집니다.

누구나 올가미에 걸린 채로 꼼짝달싹하지 못하며 살아가기보다는 저 푸른 하늘을 훨훨 날아올라 비상하기를 희망합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일 뿐입니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만, 사람은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합니다. 태산을 오르려면 짐이 가벼워야 합니다. 지고 갈 짐과 버려야 할 짐을 가려 쓸데없는 짐을 버리고 져야 할 짐만 지고 간다면 한결 가벼워질 수 있습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지고 가야 할 짐만 지고 간다면 시간문제지 언젠가는 그곳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프로젝트란 사람 인(人) 자를 닮았습니다. 사람 인자의 좌측 작대기는 나를 상징하며, 우측 작대기는 나를 지탱하는 버팀목을 상징합니다. 우측 작대기가 빠지면 좌측 작대기는 넘어지게 됩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주위의 버팀목이 없이는 나를 지탱할 수 없습니다. 나와 주위가 한 몸임을 알게 되면 그제야 프로젝트가 굴러갈 수 있게 됩니다.

신께서 이 세상이라는 과일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상은 맛보라고 주신 것이지 이게 뭔지 고민하라고 그걸로 힘들게 괴로워하라고 주신 게 아닙니다. 신께서 남편 당신을 위해 아내를 주셨을 때도, 아내 당신을 위해 남편을 주셨을 때도, 부모 당신을 위해 자녀를 주셨을 때도 괴로워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서로 맛나게 살아보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LIFE입니다. ‘Love Is ForEver.’ 

인생은 한낱 코미디에 불과합니다. 그땐 그리도 힘들고 괴로웠던 일들이 긴 시간이 지난 후 되돌아보면 바보스런 짓들로 여겨져 절로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우리가 찾는 파랑새는 없다고 하지요. 단지 각자의 사연(story)만이 있을 뿐. 파랑새를 찾아온 천지를 헤매고 다니다 집에 돌아와 한숨을 내쉬며 마루에 털썩 주저앉아 위를 쳐다보니 처마 끝에 파랑새가 있더라고 하지요. 파랑새란 저 높은 어느 거창한 곳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게 주어진 소임으로 여기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present)라는 선물(present)이 그것이란 뜻이겠지요. 

부자 집에서 천재로 태어나 좋은 선생님들 밑에서 우수한 인재가 되어 좋은 직장에 취직한 사람과 가난한 집에서 자폐아로 태어나 정신적 장애의 한계로 배울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 자란 사람 중 누가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인가요? 누가 더 복을 받은 사람인가요? 신이 계시다면 전자의 사람이 후자의 사람을 돌보지 않고 자기가 더 가지는 게 당연하고 더 가지겠다고 욕심을 부린다면 그분은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언젠가 죽어 심판받는 날이 오면 ‘얼마나 많은 걸 얻었는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오히려 ‘얼마나 남에게 주었는가?’라는 물음을 받게 될 거라고 어린 왕자는 이야기했습니다. ‘죽을 때에 아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좀 더 인생을 허비하지 않았을 것을…….’ 깨달음이란 죽을 때 아는 것을 미리 좀 앞당겨 살아있을 때 아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항상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순 없는 법입니다.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다 보면 잘하는 일을 찾게 되고, 잘하는 일을 계속하다 보면 이전에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말이 있지요.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내 앞에 주어진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자가 되면 마다하지 않고 배우게 되어, 결국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로 세상에 일조하게 됨으로써 보람을 느끼게 되니 기쁠 수밖에 없겠지요. 생(生)은 부족한 한 획을 찾아 채워 전(全)을 만들어 제대로 사는 법을 배워 나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연습문제를 풀 때는 마음이 편안하고 유연성을 유지하지만, 실전시험에서는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하여 경직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제 실력 발휘가 어렵게 됩니다. 연습하듯이 세상사 모든 문제를 풀어보는 건 어떨까요. 그래야 마음이 가볍고 머리가 유연해져 창의적 능력이 발휘될 수 있으므로. 인생은 단지 연습의 연속에 불과합니다. 가볍게 연습하듯이 살아 보세요. 찰리 채플린의 말대로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인지도 모르니. 공자님도 비슷한 말을 하셨죠. ‘인무원려 필유근우(人無遠慮 必有近憂), 사람이 멀리 내다보고 헤아리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데서 근심거리가 생긴다.’라고.

인생이란 깨달음으로 가는 여정이 아닐까요. 여행을 왜 가시나요? 행복을 맛보려고! 인생도 행복을 맛보려고 온 여정이 아닐까요. 우리가 사는 이유는 행복에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십니까? 행복하지 않다면 인생 여정의 목적을 행복에 두지 않고 다른 데에 두어서일 것입니다. 성공이란 부교감신경에 몸을 맡기고서 교감신경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일을 당당히 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빛 가루들의 조화에 불과합니다. 그 빛 가루들이 어떤 조화를 부리는지 느끼고, 그 빛 가루들을 이용해 새로운 조화를 만들어가며 신나게 한판 놀다가는 것이 삶입니다. 살다 보면 잔잔한 파도를 만나기도 하고 높은 파도를 만나기도 합니다. 높은 파도가 왔을 때 기꺼이 그 파도를 받아들이는 자는 피하기보다는 오히려 즐기는 방법을 터득하여 높은 파도를 타며 놉니다. 

‘Succeed’는 ‘성공하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계승하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Succeed’는 라틴어 ‘sub(next to, after)’와 ‘cedere(go, move)’의 어근에서 파생된 말로, 뒤를 따라가거나 이어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성공은 결과의 관점에서 목표 달성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과정의 관점에서 다음 단계나 다음 세대로의 계승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공은 현 단계의 종료이기도 하지만 다음 단계의 새로운 출발이기도 합니다. 거창하거나 위대한 일이란 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단지 작은 일들의 연속만이 있을 뿐. 그 작은 일들이 때론 성공적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 실패의 점철일 때가 많습니다. 만약 성공과 실패를 떠나 그런 작은 일들 속에서 작은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지속될 수만 있다면 그런 작은 것들이 모여 결국 위대한 일로 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열매에 탐착 하지 않고 소명에 따라 씨앗을 뿌리며 하루하루를 오붓하게 살아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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