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안녕? 헤이즐!
이 인사는 너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영화의 제목이기도 해. 나는 이 영화의 포스터만 보고 너의 이야기를 책으로 읽었는데 영화는 볼지말지 고민중이야.네 이야기가 재미없거나 싫어서가 아니야. 오히려 너의 이야기를 무척 재미나고 감명깊게 읽었단다. 너와 남자친구가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게 되는 이야기를 영화로 봤다가 되려 실망하게 될까봐 걱정하는거야. 내 머릿속에서 이야기는 완벽했거든. 그런데 시각이라는 게 워낙 크게 작용하잖아. 포스터만 봤을뿐인데도 내 상상속의 네모습은 이미 포스터 속의 영화배우로 설정되어 버렸어. 내 머릿속에서 완벽했던 이야기가 영화로 바뀌면서 변질되는 게 두려워서 (특히 네덜란드 여행부분)아마 나는 영화를 보지 못할 것 같아.
안녕? 헤이즐!
이 말만 계속 반복하게되는구나. 그건 아마 내가 아프거나 죽음을 앞둔 사람과의 대화를 어떻게 이끌어가야할지 모르기 때문일거야. 나는 두렵단다. 죽음이라는 게. 예전엔 덜 그랬던 거 같아. 죽는 것은 순간이고 혹여 불치병에 걸려 서서히 죽어간다 해도 '진통제 한 웅큼을 씹어 삼키며 참다보면 어느 순간 끝이겠지.'하고 단순하게 생각했었어. 하지만 지금은 아냐. 아마 나에게 소중한 것들이 너무 많이 생기면서 특히 그들과 이별이 죽음으로써 가능한 관계가 되면서 이렇게 죽음을 두려워하게 된 것 같아. 그게 너무 심해져서 죽음을 앞둔 사람을 만나는 것 조차 두렵단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 위로? 무슨 소용일까?아니면 일부러 쾌활한 척하며 '너의 병은 아무것도 아냐! 넌 이겨낼 수 있는 거야!'라는 억지 미소? 그건 위선이지.
마찬가지로 친하게 지내던 좋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때에도 나는 무슨 말을 해줘야할지 모르겠어. 슬프고 안타깝지만 거기에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공허할 것이란 생각이 들거든.
안녕? 헤이즐!
그래도 툭 터놓고 애기해보자면 죽음에 대한 너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거야.세상 사람 모두는 언젠가 죽어. 너처럼 어린나이에 병이 들어서든 아니면 천수를 다 누리고 호호백발이 되어서든 그건 시기와 방법의 차이일뿐. 결국 모두 다 죽어.
결국 모두 죽는데 이 모든게 무슨 소용이람?
왜 공부하고 왜 사랑하고 왜 기뻐하고 왜 슬퍼하고 왜 화를 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은 마치 내 이야기가 아니라는 듯이 어쩌면 저렇게 침착하게 일상이라는 걸 영위해나갈 수 있지? 애초에 죽어 없어질 건데 왜 태어났을까? 우리가 남긴 삶의 흔적이라는 것들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네가 남긴 무수한 질문을 나도 계속 생각해왔어. 곧 사십이 가까워 오는데 아직도 그 답을 못찾겠어.
다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또 사랑하는 아기들을 가지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살면서 흔적을 남긴다면 아들들을 통한 유전자들일거라는 생각과 또 한편으로 기억일 거라는 거야. 기억이라는 거 믿을 것도 못되고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이상에 영원한 것도 아니지.
난 "영원"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어. 그건 아마 14살부터였을거야. 사춘기의 최고봉이었지. 까칠한 고슴도치가 되어 이런 저런 생각들이 가득하던때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라는 진리를 하나 얻었어. 당시에 여중생들 사이에서는 예쁜 그림엽서에 우정의 말을 적어 친구들에게 보내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내가 받은 엽서에도 "우리 우정 영원하자"라는 말이 적혀 있었지. 나는 "네 자신이 영원하지 않은데 어떻게 영원한 우정이 존재해? 바보냐?"라는 답장을 썼다가 그 친구를 울리고 말았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고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소녀에게 독화살을 날린 셈인데...
다행히도 친구는 한바탕 울고 난 후에 날 그냥 그런 특성을 가진 애로 이해를 해주어서 계속 친구로 남을 수 있었어.감사한 일이야.
지금도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에 동의해. 하지만 기억이라는 게 영원까지는 아니라도 죽는 순간까지는 영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왜 그런말 알아? 사람이 진짜 죽는 순간은 그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남아있지 않을 때 라는 거. 사람은 아니지만 나는 내가 7년 정도 키웠던 강아지가 죽었을 때 이 말을 실감했어. 처음 한 3년 동안은 너무 슬펐어. 살을 부대끼던 존재의 부재가 느껴져서 시간이 갈수록 덜해지긴했지만 새벽에 일어나 종종 통곡을 할 정도로 마음이 아팠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슬픔은 덜해지지만
그 아이와의 추억은 하나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걸 느꼈어. 아직도 남편과 종종 강아지 이야기를 하면 마치 옆에 있는 것같은 그런 감정을 느끼곤해. 내 머릿속에 고개를 갸우뚱하던 모습이나 혀를 길게 빼고 뛰어오던 모습 , 이런 찰나의 모습이 영원히 반복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런 기억들이 이어지고 이어지고 하면 영원과 가까워지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근사한 소설 한편이라도 써서 사람들에게 좋은 읽을거리를 제공하게 되면 또다른 영원성이 생기지.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말처럼 말야.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 나는 내 삶의 순간이 너무 소중해서 거미 줄에 걸린 작은 벌레가 어떻게해서든 살고 싶어하는 마음처럼 내 삶이 조금이라도 더 연장되고 행복을 느끼며 살고 싶어.
그리고 이런 삶에 대한 마음은 비록 죽을만큼 아픈 너도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해. 그래서 만약 너를 실제로 만나게 된다면 나는 너에게 위로나 격려같은 건 해줄 수 없을 것 같아. 너와 나는 아주 먼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그냥 같은 처지일뿐이니까.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건 삶에 대한 불안한 눈빛을 공유하는 것뿐일거야.
이젠 정말 안녕, 헤이즐.
널 만나서 흥미롭고 재미있고 슬펐어.
부디 건강하길..
추신: 너의 남자친구일은 정말 유감이야. 그런 일을 겪다니 어린 나이지만 넌 나보다 강인하다는 생각이 들어. 강인함을 인증받기 위해 그런 운명을 가지고 싶진 않거든요, 아줌마!라고 너는 톡 쏘듯 말할지 모르겠지만 이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란다. 난 남편없는 삶을 상상하기가 끔직하게 싫어. 언제나 나보다 하루이상 더 오래살라고 명령(?)을 내리곤 하지. 넌 그런 상황을 겪고도 당당하고 의연하게 행동했잖아. 많이 힘든일이었지만 그건 어쨌거나 대단한 일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