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를 하다가...15

일본 영화가 보고 싶은 날

by 임쓸모

오늘은 일본 영화가 보고 싶은 날이다.

내가 일본 영화를 보고 싶다는 것의 의미는

지금 심적으로 지쳤음을 의미한다.


내 좁은 영화적 식견으로 분류해보자면 각 나라별 영화적 특징이 있는데 응원을 받고 싶은 날엔 일본 영화가 제격이다. 새로운 이야기가 고플 때 사색의 화두를 수집하고 싶은 날은 유럽 영화. 미국영화는 즐겨 보지 않지만 깔깔 거리고 싶을 때는 미국 코미디 영화 정도가 좋다. 한국영화는 그때그때 다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오늘은 일본 영화가 땡기는 날이다.


9월은 시작부터가 힘들었다. 친하게 지냈던 예전 직장동료가 척추암으로 죽었고 그래서 장례식을 다녀오고 5일 뒤 이모가 폐암으로 돌아가셨고 다시 장례식을 다녀 오고 장례식 가는 길 친한 동생의 아기가(우리 둘째옷도 보내주곤 했던) 급 심정지로 세상을 떠나 보내 준 물건들을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하게 되었는데 괜찮겠냐며 소식을 전해왔다.(내가 괜찮은게 문제가 아니라..네가 괜찮냐고 되묻고 싶었지만..괜찮을리가 없지..)


이런 일련의 일들은 내 일상의 고마움을 느끼게 해주었지만 그렇다고 정신적인 타격이 줄어든건 아니다. 자는 아이의 따뜻한 발을 만지며 감사의 말을 중얼거리면서도 멍하니 베란다에서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저 사람들은 어떤 모습의 최후를 맞이할 것인가 따위를 생각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며 새삼 놀라웠다.

마트에 가도 버스에 타도 나와 스치듯 지난 이 사람들을 일년뒤에 추적 조사하면 그중에 몇명은 죽거나 아프거나 하지 않을까 하는 망상...


일본 영화를 봐야겠다.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란 것은 아니지만 심적으로 지친 날에 일본 영화는 일시적이라도 감정의 정리에 도움이 된다. 신체적으로 지친 날에 일본 영화는 졸음을 몰고 오기도 하지만 지금 나에겐 일본 영화가 필요하다.

무슨 일이라도 그건 그것대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이야기, 사람이 나고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알려주는 이야기, 그냥 푸른 대나무 숲을 한시간 정도 아무생각 없이 바라보는 기분이 드는 이야기...

일본이 긴 불황을 겪어서인지 일본 영화에는 그런 요소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무기력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이야기, 조금은 무덤덤한 표정의 주인공들이 슬슬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간바레"를 외치는 그런 이야기말이다.


그런 영화가 필요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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