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는 열일곱이었다.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시골에서 반식모살이하던 고모를 서울로 불러들인건 아빠였다. 엄마 아빠 모두 요꼬쟁이라 나를 돌볼 수 없었던터라 열일곱 고모가 나와 갓난쟁이 동생의 보모가 되었다. 내가 학교가기전까지 잘만 봐주면 공장 기술을 가르쳐 주겠다는 꿀 같은 제안으로 고모의 서울 생활은 시작되었다.
열일곱의 고모. 식모와 다를 바없는 생활이었겠지만 고모는 밝고 잘 웃었다.
당시에 우리가족은 미선이네 언니 집에 새들어 살았다.
내가 인상쓰고 사진에 찍혔던 화장실이 있던 그집이다. 우리집은 문간방이었는데 한평 남짓한 부엌이 있고 부엌위에 다락방이 있어 그곳이 나와 고모의 방이었다. 부엌과 연결된 작은 창문은 거실겸 안방에서 고모가 맛있는걸 만드는 걸 구경할 수 있어 좋았다. 맛있는거라고 해봐야 삶은 계란 고구마 감자 같은거였지만.
고모는 네살 아래 이제 국민학교 졸업반인 미선이 언니랑 친하게 지냈다. 가끔 센베이 같은걸 들고 고모의 다락방으로 놀러오던 주인집 딸내미
미선언니가 나는 좋았다. 둘은 다락방에 누워 조용필 이야기를 제일 많이 했다. 조용필 콘서트에 갔던 어린 여자팬이 조용필 매니저한테 호텔방키를 받았다는 둥 아니다. 조용필은 남자를 좋아한다더라 등 주로 신빙성없는 가쉽거리였는데 다섯살 꼬마는 못 알아들을 줄 알았겠지만 자세한 이야기의 내용까지는 몰라도 갑자기 낮아지는 목소리와 연이어 터지는 꺄르르 웃음소리로 뭔가 비밀스런거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여하튼 그 둘이 함께 수다가 길어지면 나는 소외되기 시작했다. 처음에 언니가 가져온 센베이같은 간식거리도 다 떨어지면 나는 고모랑 놀아달라고 졸랐고 그러면 만화 잘 그리던 미선언니가 종이인형을 만들어 주곤했다.
그런 미선언니가 중학교에 가게 되어 교복을 맞춰 입고 왔던 날을 기억한다. 약간은 상기된 얼굴의 미선 언니는 곤색 세라복을 입고 싹둑 자른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나타났다. 고모는 그런 미선언니의 교복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런 교복은 엄청 비싸겄지?그쟈?"
"몰라. 돈은 엄마가 냈으니까..어때? 나이뻐?"
"그랴. 아주 다 큰 아가씨 겉다.이제 미선이 중학생이라고 내랑은 안 놀아주는거 아녀?"
농을 던지며 웃고있는 고모의 표정은 왠지 슬퍼보였다.
내가 학교를 가기도 전에 동생이 이제 막 세살이 되었을때에 고모는 가출을 감행하였다.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리하여 여섯살 되던 해 나는 세살 동생의 보모가 되었다. 주인집 아줌마의 보호 아래긴 했지만.)
그리고 몇달 후 어느 일요일 고모는 뾰족 구두에 화장까지하고 나타났다.손에는 젖소가 그려진 밀크 초코릿 한 상자와 마론인형이 들려 있었다. 고모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미싱공장에 취직했다고 했다. 그곳 기숙사에서 먹고 자고 한다고 친구들도 많이 생겼단다.
엄마는 "아이구~잘됐네! 그래요. 우리 걱정은 말아요. 석화가 지 동생 잘 보고 있는 걸. 이제 고모도 고모 살길 찾아야지. 그동안 고생했어."하며 상기된 고모의 등을 다독였다.
아빠는 말없이 줄담배를 피우다 "몸간수 잘해라"라는 짧은 말을 던지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어른들의 눈치만 보다가 아빠가 나가고 고모가 손에 쥐어준 마론인형의 머리를 빗질해주며 신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