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하다별걸 다하고 있네요
■ Profile
이 름 : 김석기 (81년생)
거 주 지 :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리
현재 직업 : 양양 청년 협동조합 이사장, 산림일자리 발전소 양양 그루 매니저
정착시기 : 2015년 5월 ~
■ History
2007년 9월 광고대행사 오리콤 전략기획 인턴
2008년 2월 독립 광고대행사 Cego AE
2008년 4월 자영업(호프집) 운영
2009년 9월 대학내일 마케팅팀
2013년 4월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 브랜드 마케팅팀
2015년 5월 퇴사 후 양양행
2015년 6월 공정여행 1인 기업
Stoneage Union 설립
- 법수치 계곡 트레킹 기획 실행
- 석기시대의 게스트하우스 운영
2017년 4월 문화체육관광부 ’ 관광두레 사업‘
양양 관광두레 PD 활동
2020년 10월 양양 청년 협동조합 설립
2021년 4월 산림일자리 발전소 양양지역 그루 매니저
■ Prolog
35살, 직장생활 10여 년이 되어가던 시점에,
문득 고민이 많아졌다.
물론 나 혼자만 하는 고민은 아니었다.
내 나이 또래에 나와 비슷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들의 공통의 물음표였을 것이다.
과연 내가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
내 능력이 허망하게 쓰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었을까? 하며
과거를 회상해보니, 지금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과거의 내 꿈이 보였다.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을 하다 보니,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지금의 삶은 아니라는 생각은
확고하게 들었던 것 같다.
무모했지만, 우선 사표부터 냈다.
딱히 회사에 만족을 못했다거나, 괴로워서야 아니었다.
단순히 내가 가진 물음에 답을 찾고 싶었을 뿐이었다.
즉흥적이었기에 어떠한 계획도 없었다.
그런데 그냥 막연히 즉흥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뭐랄까..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게 될 것만 같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날을 기다리고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양양을 꼭 가고 싶어서였다기보다는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곳이 양양이었기에,
우선 잠시 머무를 생각으로 택한 곳이 양양이었다.
그런데 벌써 이렇게 7년째 살고 있고,
아내가 생겼고, 아이는 4살이 되었다.
어느덧 양양은 이제 내 삶의 터전이 되었다.
■ 인터뷰
Q1. 양양에 살러 온 시기는?
A1. 2015년 5월, 35살이던 시절 잘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양양으로 살러왔습니다.
Q2. 양양에 오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A2. 서울에서 브랜드 마케팅 업종에서 10여 년간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광고대행사 AE활동을 하다가, 중간에 잠시 호프집을 약 1년간 운영해보기도 했고, 다시 서울로 복귀해서 대학내일이라는 회사에 입사하여 대학생 대상의 마케팅이나 프로모션 경험도 했습니다. 양양으로 내려오기 전의 마지막 직장은 아웃도어 브랜드인 네파에서 브랜드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Q3. 양양에 내려오게 된 계기는?
A3. 양양으로 내려가야겠다는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요. 그 시절 저와 비슷한 시기의 여느 직장인들과 같은 고민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직장생활 10년 정도 하다 보니, 과연 이게 내 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속해서 나는 직장생활을 할 정도의 깜냥이 되는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뭐랄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갑갑함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계속 출퇴근을 반복하는 그리고 매일 스트레스받아가며, 직급이 올라갈수록 올라가는 연봉보다 그만큼 더 커질 부담감에 대한 무게를 이겨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일단 도망친 거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네요
Q4. 그렇다면 다른 지역도 많을 텐데 왜 굳이 양양이었을까요?
A4. 저희 부모님이 양양에 살고 계시기에 내려왔어요. 회사를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만두고, 바로 월세집도 뺐어요. 일단 서울생활을 청산하기는 했는데, 당장 머물 곳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우선은 부모님 댁으로 얹혀살러 온 거죠. 지금 생각해도 너무 즉흥적이네요.
Q5. 처음 양양에 내려와서는 어떻게 생활하셨나요?
A5. 사실, 양양에 내려왔을 때는 이렇게 오래 머물게 될지도 몰랐고, 게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저 당장 머물 곳이 필요했고, 당장은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었어요.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고는 살 수 없잖아요. 제가 성향이 또 가만히 있는 걸 못하기도 하고 그래서 처음 양양에 내려와 어머님께 얹혀사는 동안에는, 잠시 쉬면서 어머니 밭일 도와드리거나, 틈틈이 컨테이너 하우스를 셀프로 지어보기도 하는 등, 취미활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당장 생활비는 벌어야 했기에, 공공근로와 같은 아르바이트도 하고, 요양원에서 운전원 파트타임도 했습니다.
Q6. 부모님이나 주변분들의 반응은 어떠셨을까요?
A6. 그냥 혀를 몇 번 끌끌 차시는 정도였어요. 사실 저희 어머니가 잔소리를 하신다거나, 뭔가를 억지로 강요하시는 것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스타일이세요. 오히려 그냥 너무 무덤덤하게 제가 양양에 내려온 걸 받아들이셨어요. 무슨 이유가 있겠지 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고, 또 굳이 그 이유를 물어보지도 않으셨어요.
그런 어머니가 참 감사했어요.
주변 지인들은 반응이 둘로 갈렸어요. 저와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은 사실 부러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사실 양양으로 내려간 것이 부럽다기보다는 일단 서울의 갑갑한 직장생활을 벗어난 자유를 부러워하는 것이었죠. 부러워하다가도 앞으로 생활은 어떻게 할 거냐는 걱정을 많이 해주었어요. 감사했죠
Q7. 공공근로를 했다고 하셨는데, 공공근로는 대부분 어르신들이 하시는 일 아닌가요? 다른 아르바이트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 굳이 공공근로까지 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Q7. 저 역시 아르바이트할 곳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기준은 일은 최소한의 생활비만 벌 자였기 때문에, 하루 종일 시간을 내어 일하는 아르바이트는 할 생각이 없었어요. 파트타임으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보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리가 잘 없는 거예요. 그러면서 일할 곳들을 알아보는데, 지역에 제 또래의 청년들 인력이 부족했는지, 너무 오래 일을 해줬으면 하시더라고요. 사실 주 5일 직장인처럼 다시 일하기 싫었어요. 적당히 일하고 쉬고 여행도 가고, 조금 자유롭고 유연한 파트타임이 필요했었죠, 결론은 파트타임이 없었다 였어요. 공공근로는 일하는 동안 시간적 여유가 좀 있더라고요. 저도 노인분들 일자리 뺐는 건 아닐까 했는데, 공공근로도 인력난이더라고요. 일할 사람이 부족한 거예요. 그래서 얼른 신청하고 일했죠.
Q8. 현재는 양양에서 어떤 활동들을 하고 계신가요?
A8. 지금은 양양 청년 협동조합이라는 단체의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산림일자리 발전소의 양양지역 그루 매니저를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벽화나 펜 드로잉을 하는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Q9. 하시는 일이 많으신데요.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우선 양양 청년 협동조합이란 단체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A9. 우선 양양 청년 협동조합부터 말씀드리자면, 저와 비슷한 시기에 양양에 내려와 정착하기로 결심하고 창업 또는 창직을 하면서 3년 이상 양양에 거주하고 있는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 (아직은 청년이라고 불리고 싶습니다)로 구성된 단체입니다.
양양에 정착하게 된 사연도 제각 기인 사람들이지만 공통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주거의 문제, 육아의 문제, 생활을 위한 기반시설에 대한 문제, 문화혜택의 부족 문제 등등, 진짜 양양에 살아야지만 느낄 수 있는 문제들이고, 또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들을 해결하고픈 마음이 모여 협동조합을 추진하자는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작게는 지역의 대중교통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버스노선표 개선 프로젝트에서부터 정부에서 추진하는 청년마을 만들기 지원사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도 하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양양은 명실상부 서핑의 성지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서핑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지역의 경제도 살아났지만, 그에 반해 수요가 높아진 만큼 서핑보드의 수도 늘고, 폐기되는 서핑보드도 그 수가 증가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서핑보드가 재활용이 안 되는 산업폐기물로 분류가 되더라고요. 부피도 큰 데다가 처리하기가 곤란하여 향후에는 문제가 될 것 같아서, 이런 문제를 조기에 해결해보고자 폐서프보드를 활용한 업사이클링 가구나 아트웍을 통한 기념품 개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향후에는 환경문제 해결에도 기여하고, 청년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감사하게도 최근에 한국사회적 기업진흥원의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과 강원창조경제센터의 강원 로컬 크리에이터 지원사업에도 선정되어 사업 추진에 큰 도움을 받고 있어요.
Q10. 산림일자리 발전소? 그루 매니저? 다소 생소한데요. 어떤 일을 하시는 건가요?
A10. 산림일자리 발전소의 그루 매니저 역할인데요. 우선 산림일자리 발전소에서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경영체를 만들고 지역에 특화된 산림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 육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요.
지역마다 1명의 그루 매니저를 선발하고, 그루 매니저가 선발된 지역에서만 그루 경영체를 모집할 수 있어요. 감사하게도 21년에 제가 선발이 되면서 강원 양양지역에 그루 경영체를 발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죠. 선발된 그루 경영체는 기본 3년 최대 5년간 사업계획서 작성에서부터 견학, 교육, 파일럿 사업 지원 등 실질적인 사업화를 위한 지원을 받게 되어요. 저는 지역에서 그루 경영체의 발굴과 육성을 위한 지원을 현장에서 밀착 지원하는 역할을 합니다.
Q11. 이런 일들은 어떻게 알게 되신 건가요?
A11. 사릴 2015년에 양양에 내려와서 2016년까지는 지원사업이나 지역의 활동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어요. 제가 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양양에 내려와 제가 1년간 게스트하우스며, 계곡 트레킹을 통한 공정여행 진행 등, 제가 했던 활동을 관심 있게 봐주시고 응원해주셨던 페이스북 친구께서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두레 사업에 대해서 소개해주셨고, 관광두레 PD 활동을 권유해주셨어요.
마땅한 고정수입이 없었기에, 우선은 생활비를 벌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지원했는데, 운이 좋게도 선발이 되었어요. 그렇게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간 지역의 관광두레 PD 활동을 했어요. 지역의 주민분들을 만나고 지역의 자원을 발굴하고 사업 아이템을 함께 고민하고 창업을 지원해드리다 보니, 저 역시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애착도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지역에 대해서 세세히 들여다보니, 수많은 기회가 보였고, 그런 기회들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움도 늘어났어요. 사업화 추진을 곁에서 도와드리다 보니, 제 사업체를 가지고 싶다는 꿈도 생기게 되었고요. 원래는 지역주민을 도와드리는 일이었는데, 정작 도움을 받은 건 저였더라고요. 덕분이 양양 청년 협동조합도 설립할 수 있었고, 지역의 네트워크도 많이 넓어진 계기가 되었어요.
Q12. 이전의 직장생활 경력만 놓고 보면, 가장 개연성이 부족한 게 작가 활동이신데요, 미술을 전공하셨었나요?
A12.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미술을 전공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미대를 가고 싶었는데, 미대 입시를 준비하지도 않았었고 학비가 부담스럽기도 했고요. 고등학교 진로 결정 당시 미대를 지원하려다가, 광고 쪽이 더 매력 있어 보여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건 취미로 하자고 했었는데, 직장생활에 치여 살다 보니 그림 그리는 것도 서서히 안 하게 되더라고요. 2015년에 일 그만두고 나서 남는 게 시간이었으니 다시 그림을 그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석기시대의 그림일기라는 한 컷툰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하루하루 생각들을 정리해뒀어요. 말 그대로 그림일기였죠. 그렇게 하나둘 그림을 그리다 보니 그림도 조금씩 늘고, 벽화도 해보고, 일러스트도 해보고 그림 그리는 영역이 점점 확대되더라고요. 많은 그림들 중에서 전 특히 펜 드로잉에 큰 매력을 느꼈어요. 그러던 중 모 회사 광고에서 라이브 드로잉을 하시는 김정기 작가님을 보고 큰 충격을 받고 동경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라이브 드로잉을 하는 것이 저의 목표가 되었어요. 감사하게도 2019년에 SK하이닉스에서 의뢰가 들어와 라이브 드로잉을 촬영하는 꿈같고 기적 같은 일도 경험했습니다. 지금은 지역의 다양한 자원들을 관찰하고 패턴화 하거나 관광기념품 굿즈 디자인을 하면서 상품 개발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Q13. 양양에 살면서 정말 다양한 일들을 하시고 계시네요? 오히려 서울생활보다 더 바빠 보이는 것 같은데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시나요?
A13. 감사하게도 아직까지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우선 제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고 있고, 그래서 재미있고 보람이 있거든요. 다만,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부양을 책임져야 할 가족이 생기다 보니, 아무래도 이전에 홀로 생활할 때 보다 경제적인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지금까지 해오던 일들로 생계를 유지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지만, 지금 하는 활동들이 프리랜서다 보니, 서울에서 직장 생활할 때처럼 고정적인 월급이나 대출 등 보장받을 수 있는 게 없다 보니 불안할 때도 있습니다.
Q14. 가족이 생기기 전과 후의 양양살이는 어떤가요?
A14. 같은 양양에 살고 있지만, 양양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가족이 생기기 전에는 바다에서 서핑하고, 계곡에서 캠핑하고, 지인들이 놀러 오면 동네 구경시켜주면서 술 한잔 하고 저에겐 더없이 좋은 놀이터였습니다. 그런데 가족이 생기고 무엇보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이전에는 별생각 없던 것들이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병원 문제, 장보는 문제, 교통문제, 학교 문제와 같은 것이었어요. 굳이 문제를 붙인 이유는 해결해야 할 과제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어성전리에서 양양읍내까지는 거리가 20km 정도 됩니다. 차로 15분에서 20분 정도 소요가 됩니다. 사실 교통체증이 있거나 하지는 않으니, 15에서 20분이지, 거리상으로는 멀죠. 아이가 출산을 하던 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산부인과가 45km 떨어져 있는 속초의 한 산부인과였어요. 그동안 한 번도 멀다고 느껴보지 못했던 그 거리가, 그 시간이 너무 길고 멀더라고요. 차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 아내에게 미안했고, 아내보다도 제가 더 불안에 떨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한 번은 딸아이에게 뜨거운 물이 쏟아져 급하게 읍내 병원으로 달려갔던 적이 있습니다. 읍내까지 가는 동안 거의 울다시피 하며 달리면서 반드시 병원 옆으로 이사 가야 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다행히 아이가 건강히 별 탈 없이 자라주어 아직까지는 응급실 한번 간 적 없지만, 그런 경험을 한 이후로는 여전히 매일 마음 한편에 불안함을 안고 삽니다.
비단 아이들 뿐일까요. 동네에 계신 분들은 대부분 고령이신데, 웬만한 병원은 다 읍내에 있고, 그나마 자가용이 있는 집이나 가족들과 같이 지내시는 분들은 거동이 자유롭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이 많습니다. 마땅한 대중교통도 없고, 택시를 부를래도 시간이며 비용이며 엄두가 안나죠.
병원 문제뿐만 아니라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읍내에 있는데요. 거리가 너무 멀다 보니 통학버스 운행이 제한되어 있어요. 우리 동네에 아이가 2명 이상만 되어도 통학버스가 올 텐데, 양양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저출산이 문제인데 양양에서도 산골인 어성전리에 우리 아이 또래의 영유아들이 있을 리 만무하죠.
아름다운 풍경과 계곡을 끼고 있는 자연경관 속에 있는 지금의 집이 너무 좋지만, 어쩔 수 없이 읍내 쪽으로의 이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결혼 전 후의 가장 큰 차이라면 바로 지금 살고 있는 어성전리가 불편해진 것이네요.
Q15. 애정이 가득한 터전을 옮겨야 한다는 것이 아쉬우시겠어요,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요?
A15. 인구가 늘어나는 수 밖에는 해결방법이 없겠지요. 우리나라의 행정제도 자체가 거리나 면적 대비가 아니라, 인구수에 대비해서 기반시설이나 편의시설이 생기잖아요. 아무래도 인구수가 부족한 지역은 그나마 있던 학교도 없어지고, 통합하고 그나마 지역사회에서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시내나 읍내로 몰릴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게 되니 점차 시골의 인구 감소가 가속화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2015년 내려왔을 당시에만 해도 동네에 산골유학센터가 있었어요. 폐교 위기의 학교에 유학으로 온 학생들이 수를 채워줌으로써 폐교 위기도 벗어나고, 자연에서 건강하게 유년기를 보내고 싶어 하는 학부모나 아이들에게도 좋은 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운영의 어려움 때문이었는지 사라지더라고요. 동네에 하나 있는 현성초등학교도 매년 폐교 위기 속에서 운영되고 있지요. 아이들이 더 늘어나기를 기대하는 것도 힘들고요. 저조차도 아이가 커서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이면, 또래의 아이들이 더 많은 학교로 보내고 싶은 마음이거든요. 아무리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뛰어놀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성이라든지 친구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마냥 시골의 작은 학교에 보내는 것이 망설여집니다.
아무래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산골유학센터를 통한 외부 학생 유입을 다시 한번 시도하거나, 교통이나 편의시설 등이 확충되거나, 교육의 질을 현격하게 높이거나, 대안학교와 같이 차별화되고 특화된 학교를 운영한다거나 다양한 혜택이 지원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작정 학생수가 적다고, 인구가 적다고 교통도 줄이고, 편의시설도 줄이고, 통폐합하는 등 인구 기준의 행정식 처리만으로는 오히려 문제를 가속화시킨다고 생각합니다.
Q16.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에 건의하고 싶으신 것이 있으실까요?
A16.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청장년층의 경제활동의 보장입니다. 지역에 청년들이 없다고 말합니다. 대학 가고 직장을 잡는 곳은 서울이어야 한다가 일반화되어있습니다. 그만큼 지역에서는 경제활동을 하기 어렵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서울에 있는 인력들이 지역으로 가는 것을 꺼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경제적인 것을 떠나 수도권에서 누리는 문화혜택이 현격히 부족하다는 것도 한몫을 할 것입니다. 경제의 허리이자 출산 육아의 주축인 청장년층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야 인구유입도 출산율도 어느 정도 올라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양양에 일할 수 있는 여건들을 많이 만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현재의 귀농귀촌에 치중된 지원을 넘어, 다양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지원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도 양양에 내려와서 살고 있지만 농사를 짓지 않을뿐더러, 제 또래의 귀촌인들도 관광업이나 제조업, 요식업 등 농어업과 같은 1차 산업이 아닌 자신들에게 익숙하고 전문성이 있는 업종으로 창업 및 취업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또한 양양으로 살러 온 최근의 유입인구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면,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꽉 채워 근무하는 기존의 직장형태가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중요시하고 선택적으로 근무를 할 수 있는 유연한 근무시간과 직장형태를 선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존에 양양군에 있는 사업체들도 청장년층 직원의 구인에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탄력적인 근무시간제도의 도임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자체에서는 이러한 기존의 사업체들의 요구사항과 최근 유입되고 있는 이주민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이해를 통해 기존 사업체들의 운영 지속성을 유지하고, 새로운 사업군의 창출을 위한 지원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17. 양양 청년 협동조합을 통해서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A17. 크게 세 가지로 프로젝트의 카테고리를 나누었어요. 우선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역할을 하는 것인데요. 조합원들의 전문성들을 보면 브랜딩, 마케팅, 영상제작, 디자인, 요리, 인테리어 등 다양해요. 이러한 다양한 전문성들을 조합해보니, 재미있고 의미 있는 프로젝트들이 생겨나더라고요. 우선 양양의 지역자원의 가치를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것을 주제로 삼았어요. 예를 들어 양양의 찰옥수수와 감자는 맛이 좋기로 유명한데, 이렇게 맛 좋고 질 좋은 농산품들이 그냥 일괄적인 박스에 담겨 다소 볼품없이 팔리는 게 아쉽더라고요. 기왕이면 더욱 이쁘게 포장하고, 농산품을 제조하는 농민들의 이야기를 담아 스토리텔링도 하고, 기왕이면 브랜딩을 통해 양양 옥수수로 대충 합친 통합브랜드가 아닌, 각 농가들마다의 차별화된 브랜드들을 만들어 다양한 옥수수 브랜드가 포진하고 있는 명실상부 옥수수의 메카로 포지셔닝하는 것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리사 조합원은 양양의 옥수수에 어울릴 양념이나 조리방법을 고민하여, 단순히 쪄서 파는 형태가 아니라 다양하게 옥수수를 즐길 수 있는 요리법과 형태를 고민하여 지역의 옥수수를 더욱 멋지게 브랜딩 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비단 옥수수뿐만 아니라 양양의 다양한 농특산품과 임산물 등 너무나 풍부한 양양의 자원을 개발하는 로컬 브랜딩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관광기념품 제작 판매하는 로컬 편집숍의 운영입니다. 그중에서도 폐서프보드를 활용한 업사이클링 기념품의 제작을 상징적으로 시도하고 있습니다. 서핑의 고장으로 자리 잡은 만큼 서핑 문화를 전파하는 지역의 많은 서퍼분들이 계시는데요. 서핑의 철학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환경보호, 보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폐서핑보드의 발생이 증가한다는 것, 게다가 그것이 재활용이 안 되는 산업폐기물인 데다, 부피가 커서 처리비용이 높다는 것이 어찌 보면 서핑의 철학에 가장 모순되는 문제이기에 우선 해결과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서핑보드를 활용한 다양한 해외 및 국내 사례를 찾아보고 벤치마킹하기도 하기도 하면서 현재는 폐서프보드를 활용한 가구제작과 서프보드에 그림을 그려 넣어 인테리어 소품이나 공간 디자인의 요소로 활용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는 청년 일자리 연구소 프로젝트인데요. 저를 포함한 양양 청년 협동조합의 조합원들과 같이 양양에 살러온 청년층이 겪는 가장 처음 문제이가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일자리의 부족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양양에 살러와서 오래오래 살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 선결과제가 경제적 자립을 위한 일자리였기에, 기존 사업체들과 연계하여 파트타임 구조의 일자리를 마련하는 방안과 창업이나 창직을 위한 클래스의 운영과 커뮤니티 생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Q18. 양양에 살러와서 가장 힘든 점, 반대로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일까요?
A18. 양양에 살러와서 가장 힘들었던 건, 초반 2년 동안의 불안함이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내려온 이유 때문이겠죠. 양양에서 이렇게 오래 살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었으니까요. 그런데 양양에 사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우선은 생활비도 벌어야 했고, 제가 가진 기존의 경력들로는 일할 곳도 없다 보니 서울에서처럼 대우도 받지 못했죠. 그냥 철없는 동네 백수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부모님 눈치가 보였죠. 더 명확히 얘기하면 부모님과 저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눈치 보였죠. 이렇게 작은 시골 동네는 사소한 관심도 다소 지나친 느낌이더라고요. 동네를 산책하고 싶어도 이것저것 물어보시고, 아무런 정보도 없으시면서 그냥 걱정부터 하시고 때로는 한참 붙들려서 조언을 듣기도 했고요. 가만히 조용하게 쉬고 싶었는데 그것이 잘 안되더라고요. 마음이 편해야 쉬는 거잖아요. 그런데 주변 동네분들은 아무래도 저와 저의 부모님을 너무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 주변의 관심이 가십거리가 되는 대상이 되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습니다.
반대로 좋았던 점이라면 제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고 잘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이에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과연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잘하고 있는 건지 내가 좋아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존감이 낮았던 것 같아요. 다닌던 직장과 내 직업의 전문성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어요. 내가 아니어도 회사는 잘 돌아가는 시스템이 잖아요. 굳이 내가 아니어도 대체인력이 항상 존재하고, 어느 회사를 가든 나보다 항상 잘하는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이 수두룩했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성장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감도 많이 결여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양양에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보자 하며 진행했던 일들이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응원받는 경험을 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자존감도 높아졌습니다. 회사 다닐 때는 마케팅이나 브랜딩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단언을 하고 사표를 냈는데, 결국 나와 가장 잘 맞는 일이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이었구나 그리고 그림 그리는 것도 계속하니 점점 성장하는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것으로 지금 돈도 벌고 가정도 꾸리게 되었고요. 자존감을 찾은 게 양양살이의 가장 좋은 일이네요.
Q19. 양양살이를 추천하시나요?
A19. 추천은 망설여집니다. 미디어에서 보이는 귀농귀촌 스토리나 청년들의 귀향 스토리들을 보면, 대부분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고, 귀촌에 대한 로망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건 진짜 지극히 단편적인 모습이거든요. 매년 해가 바뀔 때마나, 짧게는 한 달 한 달 지날 때마다 변화무쌍한 다양한 일들이 펼쳐집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게 더 많고 그것이 현실이니까요.
추천이 망설여지는 또 다른 이유는 제가 어떻게 남의 삶에 관여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 때문이에요. 제 양양살이가 좋다고 한들, 그것이 남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리란 법은 없죠. 오히려 반대일 확률이 더 높을지도 모르고요.
비단 양양 살이 뿐만 아니라, 어떠한 형태의 삶이든 추천이란 건 못하겠어요.
Q20. 양양살이를 결심하거나, 혹은 이제 막 양양살이를 시작한 분들에게 해주실 조언이 있다면요?
Q20. 제가 할 수 있는 조언이라면, 너무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았으면 하는 거예요. 오히려 서울에서의 삶은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서 편했어요. 모르는 사람들이고 다시 만날 확률이 지극히 낮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양양살이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아무리 엮이지 않으려고 해도 어떻게든 엮이게 되는 굉장히 네트워크가 좁은 곳이에요. 너무 신경 쓰지 않으면 싹수없다는 둥, 또 너무 활발하면 나댄다는 둥 말이 많이 나오는 곳이죠. 자칫 오해하실 수 있는데,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 동네분들을 무시하라는 의미는 아니고요, 내 중심을 지킬 수 있도록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너무 관계를 신경 쓰다 보면 너무 오버해서 친해지려 하거나 반대로 아예 무시하는 양극단의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아무래도 좁은 동네이고, 엮일 수밖에 없음을 어느 정도 인정하시고, 너무 기대하지도 말고 너무 실망하지도 말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는 것이 원만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아요.
<양양에 살러왔는데요 인터뷰 중에서...>
양양에 살러온 6명 청년들의 스토리와 고민들을 담아낸 인터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