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앙드레 Sep 05. 2022

시저 샐러드 -가장 우아해질 수 있는 기회-

랜덤 푸드 제너레이션 

헤이 앙드레~! (얼굴을 잔뜩 우그러 뜨리며)  하이~

마이클(몸좋은 ABC(Australian  born Chinese)






11시 출근과 동시에 내 눈앞에는 어마어마한 양파가 물이 가득 찬 싱크대 안에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물론 주방 바닥도 양파에서 묻어 나온 흙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이 씹창 난 바닥부터 치우고 양파 좀 까놔, 손님 몰리면 못하니까 빨리빨리 진행해!’ 


스피로의 고급진 표현과 부탁을 머릿속에 입력한 나는 서둘러 앞치마를 매고  

더러운 바닥을 빠르게 정리하였다. 


싱크대에서는 물을 잔뜩 먹은 양파들이 매콤한 향을 내뿜으며 둥둥 떠 있었다. 

나는 초록색 도마와 칼을 가지고 싱크대 옆에 자리를 잡았다. 


백색 양파와 적색양파가 뒤섞여 징그러운 괴물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듯한 

싱크대를 바라보니 일 시작 전인데도 심란하였다. 


양파 꼭지 부분을 칼로 잘라 준다음 옆면에 얇은 칼집을 내어준다. 

물을 먹은 양파는 쉽게 분리가 되어 손질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이 양파가 대륙성 양파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양파라는 것이 문제다. 

양파 한 겹 한 겹의 껍질을 분리할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양파즙은 사정없이 내 눈과 코를 후 드려 팼다. 


'으앜에헥 콜록콜록'


하나 까고 기침하고 하나 까고 울고 있으니 마침 옆에서 원두를 찾으러 들어온 마이클이 내 표정을 보고는 낄낄 거리면서 들어왔다. 


‘오이 앙드레 뭔 하나 까고 울고 하나 까고 콜록콜록 크랑 할 학’ 


이미 뒷 주방의 공기를 탁하게 오염시킨 양파의 상큼한 과즙은 날 놀리러 들어온 마이클마저 쓰러뜨리고 말았고 우리는 서로에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과 콧물을 감상하였다. 


‘앙드레 나 이거 찾고 나갈 때까지만 양파 까는 거 멈춰 줘 죽을 거 같아!’ 

‘안돼 나도 빨리 안 까면 스피로가 날 씹던 육포처럼 만들 거야!’ 

‘이 미친 엘로 몽키야 그만해 그만 까라고!” 

‘닥쳐 이 칭챙총아!’ 


서로에게 훌륭한 덕담을 나눈 우리는 마이클이 원두를 찾고 나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결국 그는 나갈 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나갔다.) 


물에 떠있는 아삭한 악마들이 점점 사라져 갈 때쯤 내 모습은 흙구덩이에서

한바탕 구른 듯 한 비주얼이 되어 갔다. 


나는 백 양파와 적양파를 구분하여 각각 큰 바트에 담아 두었고 그 에 랩을 씌어 워크인 냉장고 안에 두었다. 아마 백양 파는 소스나 익힌 요리에 들어갈 것이고 적양파는 샐러드 쪽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양파에 절여진 손을 깨끗하게 씻고 난 후 스피로에게 가서 작업이 마무리되었음을 말하였다. 


‘수고했어 빵 쪼가리, 조금 늦었지만 손에 익으면 빨라지겠지’ 


아마 저 소리는 내가 더 빨라져도 계속하겠군 이란 생각을 속으로 하면서 그에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이번에는 스피로의 가르침이 없어 늦었지만 혹시 스피로가 가진 비법을 알려준다면 더더 빠르게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말을 끝내면서 손바닥에 주먹을 대는 손동작을 하면서 허리를 조금 숙였다. 스피로는 동양에 관한 약간 신비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스테레오 타입의 동양인의 예를 보여주면 왠지 대접받는 듯한 얼굴로 신기해하면서 사부 흉내 내는 것을 좋아하였다. 나는 가끔씩 이런 제스처로 스피로를 상대하는 것을 즐겼다. 


‘다.. 다음에 양파 깔 때 내 비법을 전수해 주지!.. 빠르니까 확실하게 보는 것이 좋아!’ 


넌 그런 점이 참 매력적이야.

라는 생각을 하면서 스피로에게 존경과 경외가 담긴 눈빛을 보내며 감사하다고 말하였다.  


‘오늘부터 샐러드 파트를 네가 해봐, 우리 가게에 샐러드가 몇 가지나 있지?” 

갑작스러운 파격적 승진(?)에 놀랐지만 뒷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메뉴판을 외우고 있던 나는 간단하게 스피로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다. 


‘가든 샐러드. 그릭 샐러드, 살몬 샐러드 그리고 시저 샐러드입니다 셰프~!’


‘아주 잘 아는군! 눈썰미가 있어 빵 쪼가리!” 


흡족한 얼굴의 그는 조금 넉넉한 그의 아랫배에 감으며 이야기하였다 

‘다른 샐러드는 쉬워~ 조립하는 느낌으로 진행하면 좋아! 하지만 시저 샐러드는 이야기가 다른단다!’ 

뒷 주방에서 설거지를 할 때 내 바로 앞 선배인 ‘네요’가 만드는 것을 얼핏 보긴 하였다. 


볼 안에 갖가지 재료를 넣고 나무 숟가락으로 가볍게 이리저리 휘휘 저어가면서 만드는 것이 생각이 났다. 

이케이케 하는 거 아니에요? 하면서 작은 볼을 숟가락으로 이리저리 휘휘 섞는 시늉을 스피로 앞에서 하였다. 약간의 애교로 생각해 줄줄 알고 웃으면서 한 재롱잔치에 그는 싸데기를 때리듯 정색하면서 내게 소리쳤다.

‘멍청한 빵조가리야!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뒤섞으면 채소 즙이 나잖아!


이탈리아 사람의 급정색과 급발진에는 아직 적응이 되지 않은 나는 또 곧장 주눅이 들어 우물쭈물하면서 스피로를 쳐다보았다. 


‘비켜봐! 잘 보고 배워!’ 

왓치 엔 런 키드~라는 말과 동시에 그는 볼 안에 엔초비 다진 것 반 스푼 소금 한 꼬집을 넣고 

나무 주걱으로 부드럽게 으깨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계란 노른자, 홀그레인 머스터드 레몬즙을 넣고는 조금씩 휘저으면서 끈적한 액체로 만들어갔고 조금씩 올리브 오일을 추가하면서 걸쭉하고  광택이 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는 파마산 치즈를 넣고 가볍게 다시 저어준 다음 로메인과 쿠르통을 넣고 가볍게 토스하듯이, 하나 급하지 않게 드레싱과 내용물을 버무려 갔다 , 단언컨대 그는 그 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남자 처럼보였다. 


그는 내게 접시를 가져오라고 시켰고 어떻게 이탈리안이 샐러드를 담는지에 대한 철학을 조곤조곤 말해주면서 접시에 시저 샐러드를 담았다. 

다담은 샐러드 위에 그는 채 썬 베이컨을 올리고 마무리하였다. 


‘이 샐러드가 뾰족함을 잊지 말라고 빵 쪼가리!’  


그는 높게 쌓여 올라가 있는 샐러드의 가장 꼭대기 부근을 가리키며 자부심 있게 말하였다. 

나는 알랑 방귀가 아닌 진심을 담아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급하다고 숟가락으로 휘휘 뒤섞으면 소금도 녹지 않고 엔초비는 비리고 

간도 안 맞을 거야, 우리 가게에 절반이 마피아 니까 드럼통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으면 

아무리 바빠도 꼭 신경 쓰라고 빵 쪼가리.’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 나는 약 다가가 그에 귀에 대고 속삭였다. 


스피로 나의 사부. 왜 이렇게 나에게 불경하게 말하는 거예요 , 손님으로 왔다면 그들을 만족시킬 겁니다, 우리 사부에게 손님이라면 나에게도 손님일 테니. 


눈이 휘둥그레진 그는 나를 보면서 “새끼 좀 치네?”라는 눈빛을 보냈고 호탕하게 웃으며 등을 두드렸다. 


‘일끝 나고 쉬라고 보내 놨더니 영화나 보고 앉았고 어처구니가 없네 , 이봐 빵 쪼가리 대부를 보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 아니니?’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였다


‘졸업’도 봤는데 그러면 대부가 더 어린 축에 속하는 거죠 뭐~’ 


이 대화를 통해 우리는 서로가 영화 마니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차이가 있다면 스피로는 그때에 맞게 영화를 본 것이고 나는 그때에 개봉한 영화를 찾아본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쉬는 날 좋은 영화 한 편 보자며 집에 초대 의사를 밝혔고 

대부의 OST를 흥얼거리면서 다시 카운터로 항하였다.





여기까지 보면 낭만적으로 끝난 일 같지만 그날 나는 점심 장사 때 완벽하게 시저 샐러드를 말아먹고 한동안은 샐러드 파트에는 얼씬도 못한 채 드레싱 만드는 연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드럼통에 들어갈 일은 없었지만 지독한 지미는 수습기간을 일주일이나 늘려버렸고 나는 다시 눈물을 흘리며 처절한 접시 닦기 전쟁터에 한동안 배치되었다.   




빌어먹을 악마나 물어가라지!    






매거진의 이전글 로스트비프 -금요일 밤에 열리는 가정 미식회(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