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나라는 껍데기

세상의 겉을 맴도는 사이, 나는 나를 놓쳤다

by 글로 쓰는 바람

태어나자마자 눈을 뜨고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미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나'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를 조금씩 설명할 수 있게 되기까지,
이름을 시작으로 나를 말해주는 껍데기들이 하나둘 덧붙여졌습니다.


처음엔 그 이름에 기대고
그다음엔 누구의 가족으로
조금 더 자라서는 어느 학교, 몇 학년으로
어른이 될 즈음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으로 불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나를 둘러싼 것들이 어느새 진짜 ‘나’인 듯 여겨졌습니다.


무엇인가로 나를 설명할 수 있다는 건 편리합니다.
그 편리함에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점점
자신에게 껍데기를 씌우는 일에 능숙해집니다.

쉽게 꺼낼 수 있는 것, 속을 감추기 좋은 것,
남들이 알아줄 만한 것들로 나를 포장합니다.


어디 그뿐일까요.
감정 하나조차 솔직히 꺼내기 어려워
그럴듯한 말들, 유행하는 표현에 기대는 일도 많아집니다.

누군가 만든 틀 안에서 나를 겨우 이해하고,
그 틀에 맞춰 스스로를 끼워 맞추는 데 익숙해집니다.


‘사실 난 좀 다르지만, 그래도 엇비슷하게.’
‘문제없어 보이게.’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타인의 기대와 시선에 맞춰 덧칠해 온 모습은 어느새 진짜 ‘나’처럼 굳어져 버립니다.

그 껍데기는 처음엔 나를 보호해주는 도구였을지도 모릅니다.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불편한 질문을 피하기 위해,
사회 속에서 무리 없이 살아가기 위해서였겠지요.

‘철이 든다’는 핑계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나는 나를 감싸는 보호막을 켜켜이 쌓아왔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보호막에
내 눈조차 가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가고,
그 껍데기는 어느덧 보호막이 아닌 감옥이 되어갑니다.


내가 만든 올가미를 꾸역꾸역 쓰고
이게 나야라며 살아가다

문득, 버거움이 극에 달한 어느 날,

이 질문이 스며듭니다.


“지금 이 삶은 정말 내가 원하는 걸까?”
“이 모습이 정말 내가 선택한 나인가?”


속 시원한 답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지만 불편한 감각만은 또렷합니다.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안과 밖이 어긋나고 금이 간

내가 만들어낸 나라는 구조물.


그래서 묻게 됩니다.
나는 지금 누구로 살아가고 있는가?
지금 이 모습은 나의 진심에 닿아 있는가?
아니면 오래된 포장의 결과일 뿐인가?
내가 기대어 살고 있는 ‘나’는,
정말 내가 믿고 있는 바로 나인가...?


한 겹, 한 겹.
나를 감싼 허울을 벗겨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그것 없이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숨어 있던 ‘나’는 어색하고,
“진짜 나로 살겠다”는 다짐은 낯설고 두렵습니다.

그리고 머릿속엔 이런 말들이 울립니다.
“약하다는 걸 들키지 마.”
“무난하게, 튀지 않게.”
“엇비슷하다면, 조금 더 잘나 보이게”...


껍질 안에서 살아남는 데는 익숙하지만,
그걸 벗은 나를 감당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습니다.

껍데기를 벗기면 상처가 드러나기에, 더욱 두렵습니다.

게다가 껍데기를 벗는다고 곧장 자유로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더 흔들리고, 더 불안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견뎌내야만,
내가 나로 살아가는 첫걸음을 디딜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눌러왔던 감정들,
외면했던 진심.

그 모든 것들과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껍데기 너머의 내가 비로소 보입니다.


그래서 껍데기를 벗는 일은
단순히 없애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시 지어 올리는 과정입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지켜온 그 모습은
정말 당신이 원했던 모습인가요?

세상의 겉을 맴도는 모든 순간에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나는 언제부터 ‘나’였을까요?

그 질문의 답은 이제, 당신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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