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의 일입니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던 어느 날,
옆자리 선배가 점심시간이 되자 무심히 물었습니다.
“점심이네요. 같이 가시죠.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아, 거의 가리지 않고 다 먹어요.”
그렇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매운 건 잘 못 먹고, 짠 것도 별로인데… 어쩌지?)
무심한 질문 하나에 제 머릿속 회로는 한참을 돌았지요.
‘굳이 호불호를 말할 필요 있을까?’
‘신입이니까 맞춰주는 게 예의 아닐까?’
‘이것저것 안 먹는다고 하면 별나다고 생각하겠지…’
그렇게 결론을 내린 저는, 그날의 대답을 이후에도 수없이 반복하며 살았습니다.
진짜 제 입맛이 아니어도 “괜찮다”, “좋아한다”는 말을 하며 수십 년을 버텼습니다.
이제 주위를 돌아보니, 저와 닮은 또 다른 당신이 여기저기에서 보입니다.
‘착하다’는 칭찬에 설렐 나이도 아니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말에 갇혀 힘든 줄 알면서도 먼저 나서는 당신.
“제가 할게요. 힘들지 않아요.”
“금방 끝나요. 괜찮습니다.”
사실 게으른 편이라 아침에 제때 일어나지 못해 지각을 반복하면서도 뻔한 설명을 붙이고 있는 당신.
“나는 틀에 박힌 생활이 힘든 타입이야. 자유로운 영혼이 9 to 6로 산다는 건, 나에겐 좀 무리야.”
상대방이 지칠 만큼 할 말 이상을 쏟아내고도 이런 변명으로 포장하는 당신.
“요즘엔 솔직한 게 대세잖아? 난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했을 뿐이야. 물론 뒤끝도 없지.”
중요한 순간에 애쓰지 않았던 기억은 덮어두고, 출생의 비밀까지 내세워 핑계를 만들어내는 당신
“난 밥숟가락도 없는 집에서 자랐어.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지. 진짜… 조금만 밀어줬으면, 대학정도는 일도 아니었을 텐데.”
당신 역시, 저처럼
그리 어려운 말도 아닌데
늘 감추며 돌아가고 있지는 않나요?
저는 그 괄호 안의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거의 25년이 걸렸습니다.
요즘에서야 겨우, 마음 깊이 눌러 담아두었던 진짜 말을 꺼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 오랫동안,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포장으로,
때로는 자기연민으로 하루하루를 채우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엔 정작 내가 없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아파하고,
무엇이 나를 밀어붙이고, 무너뜨리는지.
그 모든 걸
한 겹 한 겹
샅샅이 털어내야
비로소 다시 볼 수 있습니다.
혈액형, 성별, 나이...
이런 질문 앞에서는 우리는 거의 고민하지 않습니다.
망설임 없이, 정답이라도 되는 듯 자연스럽게 대답하니까요.
그런데 정작,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질문 앞에서는
말문이 막히곤 합니다.
그런 질문에 독이 묻어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불편해지고,
가끔은 원망을 덧붙여 돌려주기도 합니다.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아도 불쾌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두기를
‘세련됨’이라 배워왔고,
어른이 되어서는 살기 위해, 편하기 위해
자신을 꾸미고 감추는 데 더 능숙해졌습니다.
그것이 능력처럼 여겨지고,
‘포커페이스’란 말조차 하나의 미덕처럼 받아들여지곤 하니까요.
그러는 사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니 막막해집니다.
이제, 한 번 제대로 말해 보지 않으시겠어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아무도 듣지도, 보지도 않을 테니까요.
캐캐묵은 먼지를 털 듯,
나에게 나를 샅샅이 털어내는 것.
어쩌면 심지어, 좀 후련할지도 모릅니다.
“발표를 못하는 건 내성적이라서가 아니라, 준비가 덜 되었으니까 못했지.”
“직관적이라고? 아냐, 사실 내 마음대로 넘겨짚는 버릇이 있어.”
“흙수저라고 말하는 거? 이 나이가 되어도 엄마 아빠 뒤로 숨는 게 제일 속 편해. 그래서 그렇게 말해.”
조금씩, 하나씩.
내가 어떤 사람인지, 왜 그렇게 해왔는지
차근차근 생각할 틈을 열어보세요.
뒤로 숨김 없이,
샅샅이 드러내 나에게 보이는 일.
그것부터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