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 ‘쉼’에 대해

by 강석우

“하루를 쉬면 내가 알고, 이틀을 쉬면 옆 사람이 알고, 사흘을 쉬면 관객이 안다.” 예술계에 회자되는 말이다. 하루라도 쉴 수 없이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지.


인생은 놀면서 사는 거라고? 네가 아버지 앞에서 그런 인생관을 논하냐? 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진지하게 하는 사람을 인정하지, 대충대충 하는 사람은 인정하지 않는다. 설사 진지하게 살면서 결과가 좋지 않고, 대충 하면서도 결과가 좋다 할지라도.


물론 인간은 쉬어야 한다. 예수님도 뱃전에 머리를 기대고 쉬셨으니. 하물며 우리 같은 인간은 어때야 할까. 당연히 쉬어야지. 그러나 결코 본말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 자칫 말이 주가 되고 본이 종이 될까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다. 또 하나 걱정되는 것은 본이 무엇인가를 착각하는 것이다. 자칫 ‘시험 잘 보면 됐지 뭐.’ ‘승진하면 됐지 뭐’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것은 절대 본이 아니라고 본다.


본은 우리 인생의 목적과 관련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 긴 안목으로 앞날을 내다보고, 해야 할 일에 매진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본이다. 시험이나 승진은 그 목적에 이르는 하나하나의 과정이고 단기적으로 치러내야 하는 과제라고 봐야겠지. 즉 지엽적인 것이고, ‘말’이라고 봐야겠지.


과제가 목적에 이르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하나의 과제를 끝냈다고 해서 목적이 이루어진 것처럼 행동한다면 그것은 본말전도임이 분명하다. 공연을 막 끝낸 예술가가 그간의 피나는 연습을 하루 쉬는 것으로 보상할 수 있겠지. 이틀을 쉬면 벌써 옆사람이 안다는 것은 이틀 쉬는 것으로 벌써 그 사람의 실력이 둔화된다는 것 아니겠니?


언젠가 이야기했던 말 기억나지? “학문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서 나아가지 않은 즉 물러나느니라” 쉴 때 제자리에 머물기만 해도 다행이겠지만, 나아가지 않은 만큼 뒤로 물러난다는 것을 맘에 깊이 새기기를 바란다.


‘인생 놀면서 산다.’는 것은 대충 사는 사람들 이야기다. 하루하루가 재미있게 지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겠지. 물론 네가 ‘놀면서 산다.’라는 말을 ‘여유롭게 살자.’라는 뜻으로 사용했음을 안다. 그러나 짧지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여유를 누린다.’는 것은 강자만의 전유물이고, 강자가 되기 위해선 지금의 노는 시간을 희생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네게 얘기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는 허송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재미있으라고 주어진 시간이 아니다. 오늘 주어진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갈 때 ‘나’가 이뤄지는 것이다. 하루를 대충 살아도 ‘나’가 이뤄지는 것 같지만 그것은 ‘나’의 탈을 쓴 빈 껍데기일 따름이다. 빈 껍데기로서의 ‘나’를 멋지게 보지 말길 바란다.


‘쉼’은 반드시 필요하다. 여유? 참 갖고 싶은 것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의미 있는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쉰다는 것’은 보다 의미 있는 삶에 이르기 위한 재충전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네가 내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들의 말을 대충 듣고 살지 않았다. 네가 하는 말, 네가 하는 행동이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고 몰아붙이며 살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 아들이기 때문에 한 번 더 새기고 한 번 더 생각하며 널 대해왔다고 평가한다. 마찬가지로 너도 내 말 허투루 듣지 않길 바란다. 피상적으로 읽어내지 않기를 바란다. 흔히 아버지가 하는 말, 어머니가 하는 말을 한 귀로 흘려듣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아버지의 말, 어머니의 말이기 때문에 더 진지하게 들어야 하지 않겠니?


내가 보는 삶이 전부가 아니고 내가 너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이 아닌 것처럼, 네가 보는 삶이 전부가 아니고 네가 나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네 견해와 네 해동을 내가 주의 깊게 듣고 보는 것처럼, 내 견해와 네게 하는 말들을 집중해서 듣고 새기기를 바란다. 내가 너에게 대하는 것보다 더 넌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 100% 따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읽는 척 듣는 척하지 말라는 얘기다. 내 말의 깊은 의미까지 받아들여야 진지한 대화가 이뤄질 수 있고 우리의 견해차를 좁혀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잘해왔고 또 앞으로도 잘하겠지만 그래서 여전히 또 앞으로도 자랑스러울 아들이지만 ‘몇 가지만 좀 고쳤으면’아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들이니 잔소리라고 생각하지 말길 바란다. 나의 노력이 너의 본에 충실한 자세로 나타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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