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큰 산삼은 정해지니 가격이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런 산삼을 날마다 캔다면 심마니는 금방 부자가 되겠죠. 심마니는 ‘심 봤다’를 외치기 위해 날마다 산을 뒤집니다. 띄엄띄엄 산에 오르는 것도 아니고, 또 그 넓은 산을 어떻게 다 샅샅이 살펴보느냐며 대충 훑어보지도 않을 겁니다. 그렇게 열심히 산을 더투면서 빈손으로도 내려오고 때론 횡재를 하기도 하겠죠.
여러분은 수업 시간이라는 산을 헤매며 지식이나 깨우침이라는 산삼을 캐는 교실의 심마니입니다. 수업 시간 동안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하산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수업 시간을 대충 보내선 안 됩니다. 언제 어느 순간 눈앞에 산삼이 나타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내가 교직에 심각한 회의를 느끼고 사직을 심각하게 고려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수업 태도가 좋지 않다고 혼냈던 학생이 대들어서 충격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참석했던 성경 공부 시간에 섬기는 자의 자세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날 내 마음으로 산삼 한 뿌리가 들어왔습니다. 섬기는 자는 낮아져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난 교사로서 학생들 위에 있다고 생각했지 내가 섬겨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거든요. 그리고 마음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내가 캔 산삼 실감 나시죠? 심마니가 어쩌다가 거대한 산삼을 캐 평생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가끔이라도 발견하는 작은 산삼들을 꾸준히 모으는 것이 평생 먹고사는 재산이 되는 것 아니겠어요?
여러분은 지금 산삼이 숨어 있는 산에 있습니다. 이 산삼은 전문가의 눈에도 보이지 않을 수 있고 어쩌다 한번 산에 오른 사람의 눈에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산삼으로 먹고사는 사람은 날마다 산에 오르고 날마다 산을 뒤지는 덕에 평생을 먹고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자세로 산삼을 찾나요? 산삼은 선생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될 수도 있고, 책 한 구절의 글이 산삼이 될 수 있을 거고, 잠깐의 명상으로도 ‘심 봤다’를 외칠 수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산삼을 캐려면 산에 올라야 하고, 주변을 살펴봐야 합니다. 샅샅이 살피며 많은 산을 뒤지는 사람이 작은 산삼이라도 더 많이 캔다는 것입니다. 우연히, 조상이나 산신령이 나타나서 횡재하는 것도 한두 번으로 끝난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자, 지금부터 우리는 산삼밭을 헤맵니다. 이 시간에, 아니 모든 시간에 꼭 심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