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대의 의인이고 완전한 자로 평가받았으며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창 6:9)이었습니다. 어느 날 이 세상을 멸할 것인데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습니다.
노아는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아라라트산 위에 큰 배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노아에게 이 큰 배는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온 세상이 큰 물에 잠겨 멸망할 때 자기와 가족을 구원해 줄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가 배를 만드는 동안 사람들은 비웃습니다. 비난합니다. 그들을 향해 노아는 외칩니다. 다가올 심판에 대비하라. 그러나 심판은 오지 않습니다. 10년 20년 30년이 지나도. 노아에게 축복의 상징이었던 방주는 이제 고난의 표시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고 의인이고 당대에 완전한 자인 노아라 할지라도 믿음이 흔들렸을 것입니다. “하나님, 이게 어떻게 된 것입니까? 왜 저를 사람의 놀림감으로 만드셨습니까?” 아마 이렇게 외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노아는 방주를 짓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지켜나갑니다. 40년이 지나고 50년이 지납니다. 이제 산 위에 배를 짓는 미친 사람에 대한 소문은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이 살고 있는 현실에 종말과 저주와 멸망이 닥쳐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노아를 비웃습니다. 조롱합니다. 그런 굴욕을 당하면서 100년이 지납니다. 당대의 의인이고 완전한 자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던 노아의 삶은 어땠을까요? 축복받은 삶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지금 우리 가족은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동안의 삶을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나름대로 기도도 했으며, 나름대로 헌금도 했으며, 나름대로 인간관계에 최선을 다했으며, 나름대로 하는 일에 성실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실패와 곤고함의 연속입니다. 왜 이렇게 문제가 끊이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120년이라는 긴 시간을 인내한 노아의 방주는 온 세상을 집어삼킨 물 위를 둥실 떠다녔습니다. 그 긴 비난의 과정, 조롱의 과정이 바로 구원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축복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절박함에 대한 하느님의 침묵은 우리에게 긴 시간의 인내를 요구합니다. 지금이 더 이상 감내하기 어려운 절망의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지라도, 노아가 온갖 비난과 조롱 속에서도 방주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것처럼,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꾸준히 계속해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 가족 모두가 긴 질곡의 터널을 지나 환한 햇살 사이로 노아에게 보여주셨던 그 무지개를 보며 환하게 웃을 날 있을 겁니다. 그때까지 손잡고 마음 붙잡고 서로 기도하며 서로 위로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