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

by 강석우


개봉 2026년 2월 4일

감독 장항준

출연 유해진(엄흥도), 박지훈(이홍위), 유지태(한명회), 전미도(매화)


영화 속 이홍위와 마을 사람들의 어우러지는 장면은 조선이 꿈꿨던 건국이념을 되살리는 것 같아서 가장 인상 깊었다. 곧 죽음을 맞이할 암울한 상황에서도 마을 사람들이 보여준 정성은 견고한 신분의 벽을 허물었고, 왕이 백성의 삶을 세심히 살피듯 마을 사람들의 처지를 일일이 챙기는 모습에서는 조선의 건국이념이 떠올랐다.


정도전이 설계한 조선의 기틀은 강력한 왕권이 아닌 신권의 강화였다. 국왕은 국가의 상징적인 존재로 설정하고, 검증된 능력을 갖춘 재상이 정책을 기획하고 행정을 총괄하는 체제를 지향한 것이다. 세습되는 왕위는 왕의 자질을 담보할 수 없지만, 재상은 검증을 거친 인물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런 통치 철학의 뿌리는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에 있다. 자신을 닦아 남을 다스린다는 ‘수기치인(修己治人)’과 덕으로 다스리는 ‘왕도정치(王道政治)’가 그 핵심이다. 특히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한다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정신은 영화 속 이홍위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장면과 겹쳐졌다. 그래서 영화 제목도 ‘왕과 사는 남자’인 것 같다.


영화가 던지는 뼈아픈 질문은 ‘내가 만약 엄흥도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하는 것이다. 이홍위가 금성대군에게 향한다는 사실을 안 순간, 관아로 달려갈 것인가, 아니면 목숨을 걸고 그의 길잡이가 될 것인가. 엄흥도는 “의로운 일을 하고 화를 당하는 것은 내가 두려워하는 바가 아니다.”라고 결단하며 행동으로 증명했다.

"의를 보고도 행하지 않으면 용기가 없는 것"이라는 공자의 가르침과, "의를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버릴 수 있다는 맹자의 사생취의(捨生取義)"라는 정신을 삶으로 증명한 엄흥도 같은 인물이 우리 역사의 길을 바르게 열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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