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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무엇을 할까?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면?

by 강석우

며칠 후에 내가 죽게 된다면 무엇을 할까?

쿠바 위기 때 지구의 종말을 예견한 사람들이 저축한 돈을 다 찾아 노세 노세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사과나무를 심는다고 했다. 그냥 건성으로 들어왔기에 그 의미를 깊게 새겨보지 않았는데 곰곰 생각해 보니 이것은 그냥 흘릴 이야기가 아니다.


흔히 사람이 왜 사느냐에 대한 답으로 ‘내일’을 이야기한다. 내일의 희망 때문에 오늘을 산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내일이 없다면, 내일이 지구의 종말이라면, 오늘을 사는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곧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했던 일이, 그 짧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가족에게 글을 남기는 것이었다. 휴대전화로, 메모지로. 전쟁영화에서도 심각한 부상을 입고 죽어가는 사람이 자기의 마지막을 절감하는 순간에 가족에게 전할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왜 어머니의 얼굴이, 자식의 얼굴이, 배우자의 얼굴이 그 순간에 떠올랐을까. 평상시에 잘하고 싶었지만 잘하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린 것이었을까.


나라면 무엇을 할까. 아마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못했던 것들이 하고 싶어질 것 같다. 대다수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차마 눈을 감지 못하는 이유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미처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 최상의 삶은 결국 미련 없는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최상의 삶을 산 사람은 잠시 후 죽음이 온다면 무엇을 할까. 아마 지금 하던 일을 계속할 것 같다. 죽는 그 순간까지. 미련이 없으므로, 여한이 없으므로.


그래도 하나 숙제가 남는다. 스피노자가 나무를 심겠다는 것은 그의 일이었을까. 아니면 내일을 넘어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꺾지 않겠다는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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