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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mpathizer Oct 22. 2019

신뢰 이동. 진화적 요소를 뒤집기엔 아직 이른게 아닌지

영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런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아파트 렌트 글을 올리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있었다. 페이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대학생으로 포스팅에 댓글도 활발하게 달리는 등 겉보기에 신뢰도가 높아보이는 페이지였다. 기숙사를 나가기 위해 방을 알아보고 있던 내 마음을 확 사로잡는 아파트가 있었다. 위치도 학교와 매우 가까웠고 렌트비도 비싼동네 치곤 저렴했다. 집주인은 외국에 살고 있어서 그들이 없는 동안 집을 깨끗하게 사용할 세입자를 찾고 있다고 했다. 집주인과 나는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 받았고 집주인은 신분증과 전화번호를 보내주며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어필했다. 이상한 점이 느껴진 건 이후부터였다. 집주인은 자신이 지금 외국에 있어 집을 보여줄 수 없으니 디포짓을 입금하면 열쇠를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수상한 느낌이 든 난 등교길에 집주인이 주었던 주소를 직접 찾아가봤고 그 집은 존재하지 않았다. 신분증에 나와 있는 이름을 구글에 검색해보니 외국 모델 사진이 떴다. 그 포스팅은 사기였던 것이다.



이 경험은 내게 온라인을 함부로 신뢰해서는 안된다는 값진 교훈을 안겨주었다. 영국에서는 페이스북을 통해 물건을 사고 파는 일도 흔하다. 특히 한인들끼리 중고 물건을 사고파는 페이지는 내게 매우 유용했다. <신뢰이동>의 저자 레이첼 보츠먼은 말한다. 흔히 대중들은 시스템이나 모르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의외로 잘 믿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제도적 신뢰가 붕괴하고 분산적 신뢰 시스템이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조직의 해이함과 거대 권력의 부패는 중앙집권화된 시스템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우리는 더 이상 정부, 은행, 전문가 집단을 신뢰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 수평적 시스템, 또는 기계를 더 신뢰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도 분산적 신뢰(distributed trust) 라는 개념이 institutional trust보다 직관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좋게보면 지금이야말로 어느 때보다 사회가 수평적인 관계에 의해 돌아가고 민주적인 시스템이 꽃피고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분산적 신뢰에도 약점은 있다. 나처럼 온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충분히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믿어서 위험해지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면? 이러한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에 대한 더 많은 데이터 수집이 한 방법인데 이는 다시 데이터를 가진 권력의 중앙집권화로 이어지는 등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또한 분산적 신뢰는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진다. 신뢰를 깨뜨린 주체가 인공지능이라면 더 그렇다.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에서 맥스 테그마크는 이런 책임 소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래에는 자율주행차가 보험을 드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기업처럼 개인적인 책임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사람들의 동의를 얻는 것이 마냥 쉬운 일일까.



또 하나의 흥미로운 질문은 분산적인 신뢰 시스템에서 어떻게 기계에 대한 사람의 신뢰를 안정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냐에 대한 것이다. 사람과 비슷한 표정을 짓는 등 감정을 전달하는 기계는 실수를 많이 해도 일 잘하고 표정없는 기계보다 신뢰도가 높았다. 신뢰라는 개념은 모호하고 전문가들이 정의하는 그것과 일반 사람들이 느끼는 신뢰는 다를 수 있다. 추측컨데 일반 사람들 간에도 신뢰라는 개념은 다르게 체감될 것 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신뢰성의 세가지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능력, 신뢰도, 정직


능력과 정직은 이해하기 쉽고 개량화할 수 있다. 하지만 '신뢰도'는 무엇이라고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X 펙터다. 인간의 주관적인 느낌과 직관이 많이 개입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신뢰도'에 있어서는 감정과 공감이 큰 요소라고 생각한다. 우리와 비슷한 것들을 좋아하는 인간들은 '감정이 결여된' 기계를 선뜻 신뢰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자율주행자 운행 규칙에 의해 탑승자가 희생될 수도 있다는 조항에 서명하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공감 능력과 맥락에 따라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기계는 불안을 조성한다. 감정을 느끼는 일반인공지능이 나타나기 전까지 이 문제는 해소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기계를 상당히 '신뢰'한다면 그건 직관과 감성 때문이 아니라 논리적 사고의 결과로 인해서일 것이다. 


저자의 책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현재의 신용붕괴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제도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서 사람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일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우리는 시민 하나하나, 그리고 공동의 목표와 신뢰가 중요한 공동체 하나하나에서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기술은 우리가 더 좋고 더 새로운 선택을 하도록 도와줄 수 있지만, 결국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 우리의 신뢰를 받을 자격이 있는 상대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는 주체는 우리 자신이다. 따라서 신중해야 한다. 분산적 신뢰에서는 신뢰 휴지가 필요하다."


내가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방을 검색하고 글을 올린 사람에게 컨텍을 하는 사이, 난 얼마만큼의 '신뢰 휴지'를 가졌을까? 아마 거의 한 순간도 신뢰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조건적이고 무차별적인 신뢰 요구가 들이닥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나만의 신뢰 기준을 세우는 것이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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