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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mpathizer Nov 06. 2019

나도 모르고 있던 내 약점을 고치는 방법

가을이 다가올 때면 나를 성가시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모기다. 모기는 성가시다. 시끄럽다. 참기 어려운 가려움을 선사해 온 가족의 단잠을 깨운다. 짜증 나는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번식력도 역대급으로 뛰어나서 일주일 안에 유충- 번데기-모기 성충으로 이어지는 성장 과정을 모두 마무리한다. 이러한 생애 주기는 1억 9천만 년 전 모기가 지구 상에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방해되지 않고 반복되어왔다. 

최근 알게 된 모기의 위력은 내가 상상하던 것 훨씬 이상이었다.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모기>의 저자 티모시 와인가드에 따르면 지금까지 존재한 전 세계 인류의 50%가 모기 때문에 사망했다고 한다. 이들은 말라리아, 뎅기열, 황달 등 모기 매개 질병으로 죽었다. 전쟁, 자연재해, 대량 살상 무기 등으로 죽은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숫자이다.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출처: <모기>, 티모시 와인가드

'질병'이라는 키워드로 책을 쓰고 싶었던 역사학자인 티모시 와인가드는 장을 보다 우연히 모기 살충제를 보게 되었다. 그는 그 길로 모기에 대한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고 모기에 관한 방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리고 하찮아 보이는 모기가 인류의 역사를 송두리째 뒤바꿔놓았다는 걸 발견했다. <모기: 인류 역사를 결정지은 치명적인 살인자>는 모기가 어떻게 굵직굵직한 역사를 형성시키는데 일조했는지 그 비밀을 파헤친다. 대영제국의 탄생부터 시작해서 로마제국의 흥망성쇠까지 말이다. 

모기, 티모시 와인가드

한 예로 흔히 유럽 식민지 시절 아프리카인들이 노예가 된 배경으로 사회·경제적인 요인들과 인종차별적 요소들을 꼽는다. 하지만 이밖에도 아프리카인의 노예화를 가속화시킨 요인이 있었으니, 바로 모기였다. 아메리카를 식민지화한 잉글랜드는 가난한 스코틀랜드 인들을 연한 계약 노동자로 사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줄줄이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하고 만다. 식민지에 도달한 유럽인들의 대부분이 시름시름 죽어갔기 때문에 당시 대규모 노동 형태였던 유럽 연한 계약 노동자는 결국 사라지게 되었다. 한편 아프리카인들의 대부분은 모기 매개 질병에 면역이 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아메리카 전역에서 노예를 재산으로 간주하려는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고 아프리카인들의 노예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프리카인들은 말라리아에 강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더 빠르게 노예화되었다. 모기라는 작지만 강한 생명체는 이렇게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역사의 페달을 가속화시켰다.  



이 책의 장르는 '마이크로 히스토리 (Microhistory)'이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미시사' 정도 될 것이다. 마이크로 히스토리는 말 그대로 역사를 ‘작은 규모’를 통해 파악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정치, 종교, 경제 등 넓고 거시적인 틀을 통해 역사를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작지만 강력한 주체들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어렵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최근 전 세계적으로 '마이크로 히스토리' 책이 핫한 장르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소금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세상을 바꾼 물고기까지 '작은 것'을 다룬 책들은 한 가지를 끈질기게 추적해 그것이 어떻게 과거와 현재 우리 삶을 바꿔 놓았는지 밝힌다.

 <모기>는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 사이언스, 아코노미스트, 네이처 등의 극찬을 받으며 단숨에 전 세계 독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최근 나온 대표적인 마이크로 히스토리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내가 모기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Best books of the year so far: USA TODAY's best-reviewed titles of 2019.”—USA Today


'마이크로 히스토리'는 단순히 역사학 내에서만 중요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우리가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모기>를 읽으면서 인생에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모기 효과'를 풍부한 사례들로 실감했다.


1. 등잔 밑을 조심하라

모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파멸을 초래했다. 강력한 군대로 자국을 적으로부터 지켜냈던 로마는 모기로 인해 크게 쇠퇴하고 만다. 말라리아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유행하면서 인구가 크게 줄고 길거리는 시체로 들끓었다. 여기에 도시 미관을 위해 지어진 정원, 분수, 목욕탕, 연못 등은 예상치 못하게 모기의 번식을 가속화했다. 역병들이 남긴 돌이킬 수 없는 폐해로 결국 로마 제국은 몰락을 맞이한다. 

이 이야기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개인적인 차원으로 가져오자면 소리 소문 없이 우리를 갉아먹고 있는 독극물 같은 존재를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한 예로 <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의 톰 오브라이언은 잦은 밀가루 섭취가 뇌 염증을 자극해 치매 등 심각한 질병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 속에서 나를 서서히 망치는 습관들을 발견해야 '모기 효과'를 최소화할 수 있다.


2. 사소한 것까지 기록하라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모기 효과'를 미연에 찾아내고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록해야 한다. 이 책의 저자 티모시 와인 가드는 흩어져 있던 모기에 대한 자료를 '보물찾기'하듯 수집했다. 이러한 자료들이 없었다면 모기에 관한 충격적인 사실을 밝히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작은 것이 우리 삶에 미치는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들이라도 기록해야 한다. 데일리 리포트, 일기 등 자신의 일상을 어떤 방식으로든 남기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인생을 바꾸기 위해선 때로 역사학자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3. 쉬운 상대는 없다. 

내게 부정적 영향을 주는 요소를 발견했다면 그걸 쉽게 퇴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서는 안된다. 인류는 1939년에 저렴한 비용으로 모기를 살상할 수 있는 화학물질인 DDT를 발견했다. DDT는 강력한 효과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렸고 미국 서부에서는 모기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모기는 곧 되돌아왔다. 모기는 짧은 종은 2년, 평균 7년 만에 DDT에 대한 내성을 얻었고 더 강력해졌다. 니체 프리드리히의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날 더 강하게 만든다'는 말처럼 말이다. 


고질적인 문제가 한 번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경각심을 가지고 꾸준히 방어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적들은 어느새 다시 우리 곁에 와있을 것이다.   




사소한 것들의 의미
책을 읽기 전이라면 윙윙 날아다니며 우리의 피를 빠는 모기를 보면서 귀찮고 짜증 나는 사소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는 모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는 사소한 관점의 변화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변화가 불러올 영향은 사소하지 않을 것이다.



<모기>는 역사적인 관점의 전환을 가져다주었을 뿐 아니라 인생에 대한 통찰도 얻게 해 준 책이다. 역사는 최고의 반면교사라는 말을 이 책을 접하면서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 가을밤 예고 없이 찾아와 나를 괴롭히는 모기는 앞으로도 계속 내게 불청객으로 남겠지만 최소한 모기를 볼 때마다 이 책을 읽고 얻은 인생 교훈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모기>는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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