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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mpathizer Nov 12. 2019

이동혁명의 폭풍전야

길을 걸어다닐 때면 이따금 세상이 거대한 주차장 같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골목마다 빠짐없이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차들. 주차된 차들은 도시의 미관을 해치는 공해의 주범처럼 느껴졌다. 야외 사진을 찍을 때면 늘 프래임 한 귀퉁이를 거슬리게 차지하는 것도 자동차였다. 사방에 늘어져있는 차들만 사라진다면 동네가 참 깔끔해질텐데...하는 생각을 했다. 이상은 운전을 하지 않는 보행러의 불평



지금의 자동차 운영 시스템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헨리 포드는 미국의 모든 중산층 가정이 살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이 낮은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이 꿈이었다. 이 원대한 목표는 이루어졌지만 그는 한 사람당 한 대의 차를 보유하는 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상상하지 못한 것 같다. 각각의 차 소유자가 자동차를 사용하는 시간은 평균 5%다. 이 말은 95% 시간 동안 자동차들이 방치되어 있다는 뜻이다. 애널리스트 애덤 조너스는 자동차를 "세상에서 가장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자산"이라고 했고 저널리스트 에드워드 흄즈는 "자동차가 배치되고 사용되는 방식을 보면 자동차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식으로 몰상식하다."라고 말한다. 


<오토노미: 제2의 이동혁명>은 GM의 R&D부서에 30년 동안 몸 담은 로렌스 번스가 지금까지 이루어진 자율주행차 개발 산업의 역사를 써내려간 책이다. 자율주행차 개발 초창기 시절, 자율주행차 대회인 다르파 그랜드 챌린지에 참가한 팀들이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한걸음씩 성취를 이루어가는 모습을 보는 게 신기하고 흥미진진하다. 미국 로봇계에서 전설적인 인물이었던 레드 휘태커가 이끄는 팀은 대회에 어마어마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첫 대회에서 자동차가 고작 7.3마일 밖에 달리지 못했다. 하지만 대회가 반복될 수록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다. 팀들은 대회 후 자신들이 사용한 모든 전략을 공개해서 자율주행차 기술 전체의 발전에 기여했다.


흥미로운 것은 자율주행차 기술의 개발을 이끈 주체는 GM이나 토요타 같은 전통적인 자동차 기업이 아니라 실리콘밸리 회사들이라는 점이었다. 저자가 몸담고 있었던 GM은 자율주행차의 전망에 매우 비우호적이었고 개발자들의 말을 귀담아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여기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태도도 있었지만 자율주행차와 기존 자동차 시스템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드웨어가 제일 중요한 기존 자동차와는 달리 자율주행차는 소프트웨어가 핵심이다. 자동차 산업은 소프트웨어에 특화되어 있지 않았다. 자율주행차 분야로 넘어가려면 자동차를 더 이상 '상품'이 아닌 '서비스' 제공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모양만 비슷할 뿐이지 자동차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기존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구글의 캡슐 자동차에는 아예 핸들을 설치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왜 핸들이 필요하겠는가? 제어 장치를 아예 없애는 편이 대담하게 느껴졌다.
 


2020년이면 자율주행차 연간 시장규모가 2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영향을 받은 다른 산업들처럼 결국 자동차 산업도 소프트웨어라는 강력한 베이스를 갖춘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앞으로 대부분의 기존 산업들이 인공지능 기술을 중심으로 재정립되어 간다고 생각하면 이 방면의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이점을 누릴 것이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한 예로 자동차를 유지하기 위한 대부분의 활동을 개인이 아닌 자동차 회사가 맡게 되면 지금처럼 많은 주유소나 세차장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운전 기사, 배달업계,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등... 일자리가 파괴될 것이고 소득 불평등이 더 악화될 수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2의 이동혁명이 정말 멀지 않았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운송 수단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것만큼 모든 사람들의 일상을 변화시키는 건 많지 않다. 일반사람들이 운전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720억 시간이라고 할때 갑자기 생겨난 이들의 잉여 시간을 겨냥한 새로운 서비스들이 등장할 것이다. 정보의 소비가 늘어나면서 콘텐츠 업계가 제일 이득을 볼 수도 있고 이동 중 수면을 돕는 기술 등 상상하지 못한 서비스들이 출몰할 수도 있다. 


물론 아직 자율주행차를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눈초리도 많다. 역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고시 책임소재에 관한 것일텐데, 일년 전 처음으로 보행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나오면서 경각심이 더해졌다. 몇년 전 팩트체크에서 자율주행차 사고가 났을 때 책임은 누가질지 현행법에 비추어서 설명을 한 적이 있는데 이 이후로 바뀐 건 거의 없는 듯 한다. 그때도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법이 생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맥스 테그마크에서 나온 것처럼 자동차가 보험을 들 수 있게끔 하는 '자동차 법인화' 등 새로운 법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팩트체크] 자율주행차 교통사고, 책임은 누가질까?

https://www.youtube.com/watch?v=Kyr3MXt_p8A


나도 자율주행차를 설렘보다는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던 한 사람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관점이 조금은 달라졌다. 불가피한 변화라는 것, 그리고 사회 전반에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스케일의 변화가 생길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것. 거대한 전환의 서막을 예고하는 듯한 책이었다. 우리는 지금 폭풍전야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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