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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수현 Aug 15. 2022

비혼의 삶을 상상하기

데이비드 스몰, 사라 스튜어트의 <도서관>

비혼 여성의 삶을 다룬 그림책 읽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데이비드 스몰, 사라 스튜어트의 <도서관>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가장 먼저 손이 갔다. 엘리자베스 브라운이라는 이름의 여성이 주인공인데, 이 사람의 관심은 오로지 책이다. 평생 독신으로 책에 몰두하면서 살다가, 집에 책이 너무 많이 쌓여 더 이상 책을 한 권도 더 들일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책으로 가득한 집을 도서관으로 마을에 기증하고, 자신은 역시 독신인 친구네 집에 들어가 살면서 여생을 책을 읽으며 보낸다는 그런 이야기다.


데이비드 스몰의 그림은 자서전 그림책에서는 흑백의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로 가득하지만, 다른 그림책에서는 대체로 밝고 화사한 분위기다. 데이비드 스몰은 늘 사람의 외모를 예쁘고/잘생기고, 귀엽게 그리지는 않는 것 같다. 인물의 자세, 태도, 풍경에서 기분 좋은 느낌이 느껴지게 그린다.


흥미로운 점은 이 그림책에서 주인공이 정면을 응시하는 컷, 주인공을 정면에서 그린 컷이 하나도 없다는 것. 작가의 시선은 주인공이 책과 관련하여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장면을 한 발자국 떨어져 멀리서 그리거나, 창가에 다리를 올리고 차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 장면을 살짝 뒤에서 비껴 나서 촬영하듯이 그린다. 이러한 그림 각도는 인간 사회와는 적당히 거리를 둔 채 오로지 책으로 가득한 자기 만의 세상에서 살았던 주인공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삶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싶다.


평생 책을 쟁이고 쌓아놓고 살다가 책으로 가득한 집에서 탈출하기로 마음먹고 바로 실행에 옮긴 주인공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나는 집을 버릴 수는 없으니 짐을 버릴 수밖에. 작업실은 여전히 책으로 가득하다. 앞으로 작업실 비우기 프로젝트를 할 생각이다. 책을 사는 만큼 안 읽는 책은 정리하고, 한번 보고 말 책은 빌려서 읽기로.  


집을 구할 때 내가 염두에 두는 것 중 하나는 도서관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인가 하는 점이다. 나중에 혹시 도시 외곽의 주택에서 살게 되더라도 최소한 근처에 도서관이 있는 곳에서 살기로 마음먹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반납하고, 서가에서 느긋하게 어슬렁거리며 우연히 뜻밖에 마음에 들어오는 책을 읽는 일상,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렌다. 그것은 아마 노년기에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일 것이다.



주인공이 걸으면서 책읽는 장면 하나. <도서관>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컷은 젊은 주인공이 빗속에서 우산 들고 책 보면서 걷는 장면, 기차 타고 여행하다가 길을 잃어서 '하는 수 없이' 거기서 눌러살기로 하는 장면.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장면. 주인공이 기차 여행에서 길을 잃었는데, 길을 잃은 그곳에서 눌러살기로 마음 먹는 장면. 가끔, 지도를 못 읽을 때, 길을 잃을 때, 새로운 인생의 장면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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