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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수현 Aug 08. 2022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오랫동안 진심으로 아끼고 챙겨준 이로부터 큰 봉변을 겪은 분이 있었다. 그분은 그 몹쓸 일을 겪고 몸과 마음이 크게 상했고 회복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여전히 그 일로 인해 부침을 겪던 시기에 그분은 자신을 가장 힘들게 했던 감정 중 하나가 '자책감'이었다고 했다. '내가 왜 이렇게 사람을 잘못 봤을까?'라는 자기 비난이었다. 그분이 그 생각으로 인해 괴로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막연히 '나라도 역시 그랬을 것 같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막상 그런 일을 겪고 보니 그것은 매우 복잡하고 심층적인 경험이었다. 그런 경험은 내 인생의 감춰진 핵심을 건드린다. 나는 왜 이렇게 사람을 제대로 못 볼까, 나는 왜 늘 같은 지점에서 실패하는가, 나는 왜 이런 식으로 내 인생을 낭비하는가,... '나는 왜'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런 생각들이 자책감, 자괴감과 같은 감정의 파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러한 번뇌를 더 큰 마음이 다스리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나의 일상을 주도하는 것은 언제든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의지, 태도다. 프리랜서로 살아가면서 여전히 자주 부당하고, 억울하고, 불쾌한 상황을 접하지만, 항상 나를 가장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대응하고 있다. 때로는 분을 참지 못해 어쩔 줄 모르기도 하지만 그건 이 무더위가 나의 인간성을 방전시켰기 때문이다. 대개는 침착하고 차분하게, 그러면서도 단호하게 대응한다. 


그것은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나는 결함이 많은 사람이다. 사람을 제대로 볼 줄 모르고, 인간관계에서 비슷한 과오를 반복하고, 비슷한 방식으로 내 시간, 에너지, 재능을 낭비하면서 살고 있다. 50대 중반이 되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10대의 허술함, 미숙함을 되돌이표처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의 실패에서 나는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제일 귀하게 여기는 삶의 방향성이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 어떤 실패가 있더라도 나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나침반과 등불이 되어 나를 이끌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내가 자주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내가 참 소중하다.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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