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시민됨 citizenship'이라는 용어는 두 가지 일반적 용법으로 활용된다. 하나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서 정치적 성원(membership) 자격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른 하나는 정치적 성원으로서 인간에게 필요한 자질, 태도, 역량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어떤 의미로 사용되건 이 용어는 정치체의 구성원 또는 주체를 '시민'으로 보는 관점을 공유한다.
언제부터인가 무심코 사용하는 이 '시민'이라는 단어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고대 희랍 민주주의의 시민 개념, 이런 기원에 대한 지식과 무관하게,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민주주의 정치 생태계의 구성 요소이자 주체로서 '시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어떤 뉘앙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지 그런 의문 말이다. '백성', '국민'이라는 말보다 적절하고 세련된 의미로 사용되는 '시민'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민주주의는 도시에서만 가능한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적절한/세련된 민주주의 정치 역량을 갖고 있나? 이 단어가 정치적 역량에 있어서 도시와 비도시 지역 간의 위계를 당연시하는 정서를 만들어내고 있지 않나? 이제 비도시 지역 거주민이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과 실천 방향을 공유하고 논의하고 실현하고 있는데, 도시 지역과 비도시 지역 간의 교류, 상호작용과 관련된 교류방식과 흐름이 분명히 있는데, 이 용어가 그런 흐름과 변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벌목으로 생계를 꾸리는 산간 지역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내고 도시로 이주하여 장애-퀴어 정체성을 갖게 되었으나 동시에 지속적으로 '집'의 상실을 경험한 일라이 클레어의 자전적 에세이, <망명과 자긍심>을 읽고 나서 그런 의문들이 좀 더 구체화되었다. 그런데 '시민'을 대체할 다른 용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어쨌든 '시민'이라는 말이 누군가의 자긍심을 저해하는 말, 장소에 기반하여 사람을 차별하는 말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