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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수현 Jul 31. 2022

중드에서 시대극 비중이 압도적인 이유

중국에서 제작되는 전체 연속 드라마 중에서 시대극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으나, 국내에 배급된 중국 드라마만 놓고 보면 시대극, 그중에서도 로맨스물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그래서 하게 된 생각 몇 조각, 중드에서 시대극 비중이 압도적인 이유에 관한 잡설.


중국 장편 시대극의 주요 등장인물의 계급적 지위는 대부분 왕족이나 귀족이다. 어떤 사연, 어떤 고난, 어떤 극복 서사 건 관계없이 주인공은 신분제 사회의 최고위층이다. 중드의 특성상 주인공을 포함한 주요 등장인물이 수십 명에 달해도 그들 모두 왕족이나 귀족이다. 주인공의 신분이 평민이라고 하더라도 서사의 종착점은 주인공이 왕족이나 귀족 사회에 편입되어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것이다.


시청자는 주인공에게 동일시하거나 주요 등장인물을 응원하며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주인공의 신분에 로맨틱한 애착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애착은 드라마의 회차가 쌓이면서 일종의 습관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습관은 다른 장편 시대극을 시청하면서 더욱 견고해지고 종국에는 상층 계급에 대한 강한 열망과 동일시가 무의식으로 굳어진다. 그렇게 인간 사회의 불평등을 자연스러운 질서로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극 중 내가 응원하고 동일시하는 귀족/왕족 주인공이 나쁜 짓을 해도 별일 아닌 것처럼 인식되거나 아예 문제로 인식되지 않을 수 있다. 등장인물 중 귀족 신분의 '주인'이 '하인'을 죽이는 일이 일어나고, 주인공이 누군가를 고문하는 일을 사주해도 주요 플롯에서 그다지 큰 역동을 일으키지 않는다. 우여곡절의 일부에 해당될 뿐, 이들에 대한 시청자의 시선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


로맨스 시대물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중드 목록을 보면서, 이게 다 중국 공산당의 큰 그림의 일부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사람들이 기득권에게 동일시하고 불평등을 당연하게 여기면 '모두를 위한 정치'를 펼치지 않아도 된다. 문화 정치에 큰 공을 들이는 중국 정부가 했던 일련의 프로젝트를 염두에 둔다면 그러고도 남을 일이다.


여기까지는 나의 상상이긴 하다. 그러나 중국의 독재 정치가 중국에서 만들어지는 문화 콘텐츠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저해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른 나라의 독재 체제는 나의 일상에도 영향을 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지켜보면서, 중국이 대만을 침략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랬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대만 영상 콘텐츠에서만 누릴 수 있는 기쁨과 풍요를 더 이상 맛볼 수 없을 것이라는 아주아주 이기적인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만 영상 콘텐츠의 창의성과 풍요로움이 꼭 지켜지길 바란다.


문화 콘텐츠의 다양성을 위해서 중국의 독재 체제가 와해되고 민주주의 체제가 도래하길 바란다.  


이상 오늘의 잡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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