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재현이 폭력을 낳을 때

어둠이 내릴 때(Nar Morkret Faller, 2006)

by 권수현

<어둠이 내릴 때(Nar Morkret Faller, When Darkness Falls, 2006)>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다민족 인구로 구성된 스웨덴을 배경으로 세 편의 에피소드가 교차 편집된 형식의 영화다. 세 편의 에피소드 모두 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다. 1~2편은 여성에 대한 폭력, 3편은 갱으로부터의 폭력과 위협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


1편은 연애를 포함하여 여성에게 금지된 행동을 한 이슬람계 이민 사회의 여성이 친족 집단으로부터 살해당하는 상황을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다. 1편은 언니의 죽음을 목격한 후 고심 끝에 경찰에 신고하여 이러한 비극에 종지부를 찍고자 하였으나 자기 역시 가족으로부터 살해의 위기에 놓인 여동생이 주인공이다. 2편은 10년 동안 아내 폭력을 겪어온 잘 나가는 저널리스트가 드디어 이혼을 결심하고 가정폭력을 어젠다로 삼아 정치계에 입문하게 되는 이야기다.

폭력 이슈를 다루는 드라마의 긴장감 같은 것이 있어서 몰입을 할 수는 있었으나,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가 간혹 그러하듯 디테일한 부분에서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 감독의 정치적 지향점에 영화의 모든 디테일들이 흡수되기 때문이다.


2편의 주인공은 10년 동안 남편의 폭력을 감내하다가, 어느 순간 스스로 그런 상황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하고, 폭력 남편을 고발하고, 가정 폭력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슈화하는데 앞장서게 된다. "남편을 사랑하기에 헤어질 수 없다"면서 10년을 버텨온 그녀가, 그 폭력의 세월을 겪어야 했던 아이들의 처지를 보려고 하지 않았던 그녀가, 어떻게 갑자기 그 모든 '정당화의 시간들'을 훌쩍 건너뛰어 '반-가정폭력 액티비스트'로 돌변하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설득력이 상당히 떨어졌다. 또한 주인공은 40년 동안 시아버지로부터 죽음 직전에 이르는 폭력에 시달렸던 시어머니로부터 지지를 받는데, 물론 같은 상처를 받은 자들 간의 연대는 이상적이고 또 바람직하긴 하나, 그 관계가 시어머니와 며느리일 때 이게 그렇게 쉽게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해가 안 된다.

1편은 그 내용이 어찌나 끔찍한지 영화를 보면서 몸서리를 쳤다. 정말 유럽의 이슬람 사회에서 저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면, 그것이 어떤 맥락의 문제인지 영화는 질문하지 않는다. 그 폭력이 ‘이슬람’의 문제인지, 아니면 민족적, 계급적, 문화적으로 비주류적인 사람들이 주류 사회에 편입되어 살아가는 과정에서 생긴 다른 복잡한 문제들 때문인지, 영화는 그 배경에 대해서는 질문하지도 분석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런 일들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이슬람포비아, 이런 소재를 다룬 영화나 다큐를 보다 보면, “아! 내가 이슬람 사회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니까 이슬람은 역시 안돼!”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유럽의 이슬람 사회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상당 부분, 즉 내부의 타자들, 특히 여성들을 겨냥한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이 문제가 재현되는 과정, 그리고 그 재현물이 수용되는 과정에는 항상 의도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이슬람 혐오증이 등장하게 된다. 그 재현의 총체적 과정 자체가 이슬람 혐오증의 생산 과정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간혹 젠더 문제,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을 언어화한다는 건 이렇게 의도하지 않게 복잡하고 치열한 정치적 의미망, 그 전투의 현장에 들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쉽지 않을 것 같고, 또 고민이 될 것 같기는 하다. 내가 보기에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사람은 “폭력은 나쁜 것”이라는 문제의식은 있되, 폭력을 경험하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정신세계에 대한 이해가 깊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어떤 재현이 폭력을 보여주되/전시하되 그 맥락을 삭제하거나 질문하지 않으면, 그것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2010년 4월 12일


영화 정보 :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66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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