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매' 지식, 팬덤, 그리고 종교
- 반려견 행동 교정 훈련의 세계
1. 출처 없는 지식이 '진리'가 될 때
공중파와 OTT에서 접근 가능한 반려견 문제 행동 교정 콘텐츠(Canine Intervention)를 보다가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훈련사마다 개의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진단하고 개입하는 방식이 달랐고, 몇몇 지점에서는 상반된 견해와 해결책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훈련사가 자신의 진단과 개입 방식에 대해 그 근거를 제시하는 경우는 딱 한 군데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그것이 너무 이상했다.
예를 들어, 낯선 방문객에게 이빨을 드러내며 공격성을 보이는 개의 경우, 훈련사가 그 '문제'를 이해하고 풀어가는 방식, 그 개를 대하는 방식의 경우를 살펴보면,
사례 1. (디즈니 플러스, <불가능은 없개>) 어떤 이는 케이지 안에서 이빨을 드러내는 개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자기도 이빨을 드러낸다. 개에게 자기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보여주기 위한 '미러링'이라는 것이다.
사례 2. (KBS, <개는 훌륭하다>) 어떤 이는 흥분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의 개와 맞짱을 떠서 제압함으로써 개에게 '굴복'을 가르친다.
(이 두 가지 사례에서 훈련사의 공통점은 문제의 개를 대할 때 개에게 말을 거는 식의 '대사'를 중얼거린다는 점이다. 물론 대사의 내용과 전달되는 느낌은 조금 다르다. 전자의 경우 훈련사의 '대사'는 개를 다치게 할 마음이 없고, 안심시키고자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훈련사의 자기 암시처럼 읽힌다면, 후자는 너 그렇게 으르렁 거려봤자 소용없다는 식의 힘의 과시로 읽힌다.)
사례 3.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한편, 어떤 이는 케이지에 갇혀 극도로 흥분하여 이빨을 보이는 개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고, 개가 위협을 느끼지 않는 몸짓과 자세를 취하고, 개가 안정이 되면 간식 보상을 제공한다. 낯선 인간은 침입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개의 언어로 전달하고 환대의 제스처를 취하면, 개도 공격성을 내려놓는 식이다.
사례 1~2와 사례 3의 결정적 차이는 훈련사의 접근 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개의 문제에 대한 훈련사의 이해 방식과 접근방식이 무엇을 근거로 하는지 그 출처를 밝히는가의 여부다. 사례 1과 2에서 시청자는 훈련사가 어디서 훈련사로 교육받았는지 알 수 없고, 훈련사는 개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 방법을 보호자에게 설명할 때 왜 그렇게 해석하는지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 '개를 보호자 침대에서 재우면 안 된다', '개에게 무조건적인 애정을 주면 안 된다'라고 했을 때, 그것이 개의 문제 행동에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설명해줄 근거는 오로지 훈련사 자신이다. 그렇게 훈련사는 '진리'의 담지자가 된다.
반면 사례 3에서 훈련사는 자신이 '문제'를 왜 이렇게 이해하는지, 어떻게 풀어가는 것이 적절한 해결책인지에 대해서 출처를 밝히고 인용한다. 간혹 자신이 관련 지식을 잘 몰라서 예전에 오판한 적이 있다는 점도 서슴없이 언급한다. 이때 훈련사가 제시하는 진단과 솔루션, 그것은 동시대 연구 결과를 통해 나온 공유 지식이다. 여기서 훈련사는 '진리의 담지자'가 아니라, 권위 있는 공유 지식에 접근하여 그 내용을 정확히 파악한 후 보호자와 시청자에게 전달해 주는 '지식 번역자'다.
2. '야매 지식'이 권위를 획득할 때
'야매'라는 단어를 국립국어원 사전에서 찾아보면 "촌스럽고 어리석음"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내가 기억하는 이 단어의 일상적 사용례를 떠올려 보자면, 권위 있는 제도와 절차 속에서 형성되거나 승인된 지식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경험이나 추정에 근거함'의 의미로 이해된다. 예를 들면 어릴 적 동네 어른들이 알음알음 이용했던 '야매 치과'에서, '야매'는 제도적으로 승인된 교육 절차와 정식 면허가 없는 개인이 몰래 불법적으로 운영하는 곳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정식 치과에 비해 가격이 싸지만, 그만큼 이용자 입장에서 위험 부담이 있는 곳이었다. 소비자도 그 점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한편 야매 지식이 엄청난 권위를 갖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나의 경험을 돌아보자면, 이런 순간이다.
30여 년 전,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일이다.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였고, 완치 가능할지에 대해 담당 의사는 확신할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 치료하겠다고 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아버지의 몸과 마음은 쇠약해졌다. 가족 모두 그랬다. 온갖 사람들이 다가와서 조언했다. 그중에는 사기꾼도 있었다. 그런 조언에 넘어가 병원 치료를 중단하고 무당을 찾아가 굿을 하고, 민간요법을 했다. 결국 많은 돈을 잃었고, 그해 겨울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평소라면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까. 이런 상황에 놓이면 사람들은 불안, 두려움, 절박함, 죄책감 등의 감정에 사로잡히고 합리적 사고가 마비된다. 야매 지식은 바로 그런 순간에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파고들어 권위의 자리를 차지한다. 진리의 담지자, 절대자로 행세하는 자가 영향력을 갖기 쉽기 때문이다.
훈련사 자신이 '진리의 담지자'로 행세하는 프로그램에 사람들이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반려 동물을 돌보는 일은 대부분 '미지의 영역'이다. 사람들은 반려동물인 개에 대해, 개를 돌보는 일에 대해, 개와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다. 개는 인간의 '도구'로 개발된 종이지만,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반려' 생명체로 간주된 역사는 매우 짧다. 그래서 인간은 무지하다. 개의 언어와 상황에 대해서, 개와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서, 개가 인간 보호자와 함께 살아가면서 형성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 인간은 그다지 아는 바가 별로 없다. 그런 지식의 역사는 몹시 짧고, 그나마 이제 막 형성된 지식에 대해서 비-전문가는 접근이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진리의 담지자 행세를 하는 훈련사가 보여주는 '야매 지식'과 개입 효과는 엄청난 것처럼 보인다.
둘째, 훈련사마다 보호자와 시청자를 사로잡는 독특한 방식이 있다. 훈련사는 자신감이 붙으면서 진리의 담지자 행세를 하게 되고, 자신감 또는 인기가 올라갈수록 팬덤과 종교의 경계가 모호한 이상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런 방송에서 읽히는 '싸한 느낌'은 조금씩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종교, 정확히 사이비 종교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왜 특이하게 반려견 행동 교정 영상 콘텐츠에서 이런 사이비 종교 느낌이 폴폴 나는 것일까. 그것은 진리의 담지자로서 훈련사가 힘을 얻기 위해 도덕의 프레임을 작동시키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훈련사가 인간의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이다.
모 훈련사가 처음 방송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을 때, 반려견을 키우는 한 지인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 훈련사에게 뭔가 불쾌하고 꺼림칙한 느낌을 받았다고.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최선을 다해 돌보지만, 생명체를 돌보는 일이 완벽할 수는 없고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데, 그 훈련사는 바로 그 지점에서 보호자의 '죄의식'을 묘하게 자극한다는 것이다. 훈련사의 그러한 태도에서 내가 받은 꺼림칙한 느낌은 이런 것이었다. 도덕의 프레임을 가져와 상대방의 힘을 빼앗아 무력화한다는 느낌이었다. 이제 그 훈련사는 슈퍼 스타로 등극하면서 그러한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해당 방송에서 촬영 중 훈련사에게 개 물림 사고가 발생했고 언론에 보도되었다. 나쁜 개를 교정하다가 희생된 구원자 코스프레, 괴물로부터 인간을 지키다가 희생된 영웅 코스프레. 방송에서 매번 그런 연기를 펼쳐 센세이셔널한 장면을 보여주더니, 좀 센 것이 필요하다 싶었는지 거기까지 나간 것이다.
3. 반려동물 행동 교정 분야가 팬덤-종교가 될 때
왜 세계 각지에서 만들어진 서로 다른 반려견 행동 교정 영상 콘텐츠에서 몇몇 훈련사들이 사이비 종교의 교주처럼 행동하는가.
반려동물 중 개를 키우는 일은 다양한 방식으로 복합적인 도덕 감정과 연루되는 일이다. 우리 아파트에서 누군가 개똥을 치우지 않으면 보호자 전체가 싸잡아 비난받기 쉽다. 반려견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적절한 제도와 문화가 결핍된 현실에서 개 물림 사고가 빈번히 발생한다. 그래서 반려견의 보호자는 타인에게 폐를 끼칠 수 있다는 긴장을 하게 된다. 마치 젊은 엄마들이 '맘충'이라는 멸칭으로 낙인화되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보호자에게로 향할 때, 보호자는 훈련사 앞에서 무력해진다.
반려동물을 존중하는 보호자가 갖는 도덕 감정이다. 생명체를 존중하는 인간 보호자는 어떤 순간에도 개를 포기하는 모습을 방송에서 보이면 안 된다. 그러면 분명 동물권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로부터 손가락질받을 것이다. 또한 인간 보호자가 느끼는 개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자책감이다. 자신의 잘못으로 개를 망쳤고,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주게 되었다는 자책감, 인간이 누군가를 보살필 때 겪게 되는 도덕적 긴장 말이다. 그 모든 것이 오로지 인간 보호자가 잘못해서 생긴 문제라면, 보호자는 훈련사의 말을 잘 듣고 바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 한 가지. 보호자들은 필사적이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훈련사를 쳐다본다. 절박한 순간에 절대자를 찾게 되고, 그런 순간에 진리의 담지자 행세를 하는 이가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요컨대, 반려동물 행동 교정 분야는 출처 없는 '야매 지식'이 득세하기 쉽고, 방송을 통해 야매 지식의 담지자가 득세하게 되면 팬덤과 종교의 하이브리드 사이비 종교가 되기 쉬운 영역이다. 내가 지금까지 본 반려동물 행동 교정 프로그램 중에 유일하게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신뢰하는 이유는 훈련사가 수의사 출신이라서가 아니다. 수의사라도 자기가 '신'이라고 여기면 사이비 종교 교주처럼 행동할 수 있다. 신뢰의 근거는 훈련사가 제시하는 지식이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투명하게 알 수 있도록 출처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연구자로 훈련받은 사람으로서 비-연구자에게도 지식의 인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확인했다. 반려동물 행동 교정 콘텐츠를 섭렵하면서 얻은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