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건 청소노동자, 요양보호사, 간병인이 되면 낮은 '계급 지위'로 편입되어 무시와 모욕을 겪게 된다. 청소, 간병, 돌봄의 일에서 기쁨과 자긍심을 느끼던 사람도 '직업'으로 그 일을 하게 되면 기쁨과 자긍심은커녕 인간성이 파괴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의 돌봄 연구 인터뷰 내용을 인용하자면, 간병을 천직으로 여기던 사람이 직업 간병을 시작한 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둔 이유, 생계로 인해 돌봄 노동을 지속할수록 '성격이 몹시 강퍅해졌다'라고 고백한 이유, 이 모두 그 때문이다. 모두가 그렇다고 일반화할 수 없더라도 적어도 제도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조건화되어 있다. 돌봄 노동의 물리적 강도, 경제적 보상, 인격적 처우 모두 돌봄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파괴하도록 조건화되어 있다.
그래서 돌봄 노동자는 비인간적 노동 조건 속에서 자신의 인간성을 구출하기 위한 추가 노동을 하게 된다. 경제적, 상징적 보상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일에서 노동자 스스로 자긍심을 찾지 않으면 일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기에 방도가 없다. 돌봄 노동에 '봉사'라는 레토릭이 난무하는 이유다.
청소노동자를 '여사님'이라고 부르고, 요양보호사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무엇이 해결될까? 그 호칭을 사용하는 사람도, 그렇게 불리는 사람도 안다. 바뀌는 것이 없다는 것을. '여사님',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돌봄 노동자의 비인간적 노동 현실에서 내가 당신을 얕보고 있지 않다는 제스처일 뿐이다.
한국인은 모든 일상에서 그런 '호칭 존대 노동'을 한다. 워라벨을 유지할 수 없는 자영업자를 '사장님'이라고 부르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이런 '호칭 존대 노동'은 고개만 돌리면 신분적 질서가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현실에서, 나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한 추가 노동이다.
이렇게 사는 것도 피곤하다. 직업의 귀천이 존재하고,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현실에서 가만있으면 나쁜 사람이 되기 쉽다. 노동 현실을 바꾸면 내가 못돼 먹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불필요한 호칭 노동을 하느라 에너지를 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호칭 바꾸기 운동을 할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노동 현실을 바꿔야 한다. 한국의 노동 현실은 정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