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수현 Jul 02. 2022

데이비드 스몰, <나 혼자>

미국의 그래픽 노블 작가 데이비드 스몰의 자전적 서사 <바늘땀>을 읽고 이런 느낌을 받았다. 작가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느낌, 부모의 방치와 학대로 인해 지독한 외로움과 공포 속에서 소년기를 보낸 작가에게 할 말이 더 있다는 느낌. 그래서 <나 혼자>를 찾아내어 읽었다.  역시 내 예감이 맞았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전작 <바늘땀>에서 '입이 터진' 작가가 아주 오래 깊이 영혼을 울리는 언어의 세계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작품을 연달아 읽은 나로서는, <바늘땀>이 <나 혼자>의 프리퀄로 읽힌다. <바늘땀>이 작가의 자전적 서사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면, <나 혼자>는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상상과 자신의 잔혹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준 주변인들의 경험담을 엮어낸 창작물이다.


주인공 소년의 가족사를 조명한 <바늘땀>은 여느 스릴러 장르 못지않은 공포와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긴장으로 가득하다. <바늘땀>의 핵심 등장인물인 가족 구성원 모두 공포 영화의 괴물처럼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을 하고 있고, 이야기 전개 방식 역시 마찬가지여서 흑백으로 그려진 이 그래픽 노블을 읽는 내내 실제로 손에서 땀이 난다. <바늘땀>의 마지막 장면은 슬픈 느낌보다는 흡사 공포영화에서 주인공 혼자 살아남은 것과 같은 안도감을 더 크게 느끼게 한다.


한편, 13세 소년이 주인공인 <나 혼자>는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른 분위기의 그래픽 노블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소년이 부모의 이혼 후 아버지를 따라 오하이오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아무도 아는 이 없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부모의 방치, 학대, 버려짐이라는 가족 서사와 '이주' 상황이 겹쳐진 삶의 조건에서 13세 소년은 가족 외에 학교, 지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 속에서 '혼자' 살아간다.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소년에게 가장 큰 위협은 아버지였고, 홀로 남겨진 소년에게 가장 큰 위협은 또래 남자들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가족이나 학교에서 어른들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방치된 소년들, 신뢰-사랑-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인간관계를 경험해 보지 못한 소년들,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무기가 된 소년들, 두려움 때문에 남을 공격하는 방식 외에는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나 다른 이와 관계 맺는 방법을 모르는 소년들이다.


거리의 '작은 사나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무기는 남성성이다. 으스대거나 우쭐댈 때, 다른 사람을 공격할 때, 이들이 꺼내는 무기는 이런 것이다. '계집애', '호모 새끼'라는 호칭은 상대를 위협할 때 사용한다. 그리고 그런 위협은 자기 힘을 증명할 때 상대를 처형하는 방식의 폭력으로 실현된다. 늘 '생존 모드'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폭력은 일상이다. 주인공 소년은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해로운 남성성'을 채택한 이들 무리에 포함되어 폭력에 동참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13세 소년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과 마주한다.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주인공 소년이 구원받을 것임을 직감했다. 이런 장면들 때문이다.


아버지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는 길 위에서 소년이 떠돌이개를 발견하는 장면이 나온다. 소년은 방치된 강아지가 굶어 죽을까 걱정하지만, 그에게는 이 강아지를 구출할 자원도, 결정권도 없다. 소년이 떠돌이개를 걱정하는 마음, 그 마음을 가진 소년은 결국 구원받을 것이라고 여겼다. 이주한 후 가난한 노동자 거주 지역에서 사는 소년은 매일 '짖는 개'들을 만난다. 보호자가 일하러 나간 뒤 묶여있는 개들은 사람을 보면 '짖었다'. 13세 소년이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또 하나. 주인공 소년을 돕는 중국인 이민자 부부의 존재. 이들이 있기에 소년이 다른 '거리의 작은 사나이들'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라 여겼다.


"러셀, 이것만 알아둬. 너와 장 아저씨는 닮은 점이 참 많단다. 외롭니? 아저씨도 무척 외로운 사람이야. 오하이오로 돌아갈 수 없지? 아저씨도 중국으로 다신 돌아갈 수 없어. 장 아저씨는 열심히 일하지만 사람들은 아저씨를 세탁소에나 어울리는 <중국인>이라고 생각하지. 그 사람들은 진짜 아저씨를 못 보는 거야. 아저씨의 유일한 고향은 아저씨가 요리하는 음식 안에만 있는 거야."

- 소년을 챙겨주는 '마 아줌마'의 대사 중에서


"난 그 집 사람들이 좋았다. 사연도 행동도 하나같이 기이한 사람들이긴 했지만, 그 틈에 있을 때면 난 그나마 평범해진 기분이었고, 외로움도 덜했다."

"난 밤의 정원이 좋다. 얽힌 모양들이 단순해진다. 어둠 속에선 장 아저씨의 얼굴과 이민자의 슬픔이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부드러운 팔의 움직임과 위험에서 벗어나는 강하고 분명한 발동작뿐.

- 소년의 대사 중에서


그래픽 노블 <나 혼자>는 작가가 "내 마음의 형제들"이라고 명명한 지인들의 이야기를 모아 쓴 책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이 책은 어린 시절에서 중학교 시기에 이르는 시기에 '해로운 남성성'을 지독하고 잔혹하게 겪은, 어른이 된 남자들이 함께 만들어낸 이야기다. 청소년기의 생존 모드 속에서 어떻게 해로운 남성성을 경험했는지 목소리를 내는 남자 어른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그것은 자긍심을 찾는 방법인 동시에 미래 세대에게 사랑, 신뢰, 존중에 기반한 인간관계를 열어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해로운 남성성'을 다룬 석사 논문을 썼다. 이 책을 진작 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 때는 이 책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좋은 세상에 살고 있구나.


데이비드 스몰의 <나 혼자>, 이 책을 세 번 읽었다. 두 번 더 읽을 생각이다.



작가의 이전글 취소 문화 cancel cultur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