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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수현 Jul 08. 2022

‘OO녀’라는 기사 제목의 문제

미디어 비평

"당찬 여성에서 섬뜩한 '갑질녀'로... 정은채의 연기 반전“ (한국일보, 2022년 7월 8일) (기사 링크는 댓글에)


이 기사의 제목에서, ‘갑질’과 ‘여성’을 결합한 ‘갑질녀’라는 표현이 꼭 필요했을까? 


‘갑질’은 우월적 지위에 있는 이가 자신의 지위를 남용하는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한 행동을 하는 인간이 특정한 인간 범주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물론 ‘갑질’이라는 행동 패턴이 ‘여성’이라는 성별 범주와 유의미한 관련성을 보이면서 나타날 수는 있다. 예를 들면 갑질의 양상이 ‘여성화된 특징’을 보인다면 말이다.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문제를 ‘갑질녀’로 표현할 이유는 없다. 연관성이 제목이 아니라 기사 내용에서 서술되면 그만이다. 


그러면 기사 제목의 ‘갑질녀’라는 표현이 왜 여성 혐오인가? ‘갑질’과 ‘여성’을 부당하게 결합하여 ‘갑질’이 아니라 ‘여성’에게 시선을 돌리기 때문이다. 마치 ‘갑질’이라는 행동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것 자체가 문제인 듯 말이다. 그리하여 범주적으로 ‘여성’은 ‘매를 부르는/비난받는’ 인격이 된다. 이것이 갑질과 여성을 등치/결합함으로써 발생하는 효과다.  


말이 나왔으니 한 가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갑질의 성별 관련성을 따지자면, 갑질의 양상이 성별의 범주와 유의미하게 연관되는 경우는 ‘남성성’이지 ‘여성성’은 아니다. 그런데 기사 제목에서 ‘갑질남’이라는 표현은 보지 못했다. 도덕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행동의 행위자가 남성인 경우, 남성의 성별은 눈에 띄지 않게 처리된다.  미디어의 뿌리 깊은 성차별, 그것은 이처럼 두 가지 동전의 양면과 같은 패턴을 띤다. 즉, 잘못된 행동의 행위자가 남성일 때 그 성별은 가려주고, 반면 여성일 때 ‘여성’이라는 성별을 강조하여 제목을 뽑는 미디어 관행이다.  


기사 제목에서 흔히 등장하는 ‘OO녀’라는 제목. 한국 미디어의 습관이자 관행인 이러한 제목 뽑기는 여성 혐오를 바탕으로 하고 이루어지고 있고, 또 그것을 확산한다. 기사의 제목을 이렇게 뽑는 관행, 습관을 바꿔야 한다. 제대로 된 미디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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