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디어의 '에로틱한 성적 학대' 이미지 활용 문제
미디어가 '성폭력'을 다루는 '문제적' 방식 중 대표적인 양상 두 가지. 첫째, 기사 내용과 무관하게 성적 대상화된 여성의 몸의 이미지를 기사에 포함하는 방식, 둘째, 텍스트에서는 폭력 사건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으나 이미지에서는 폭력을 에로틱하게 재현하는 방식. 오늘은 후자의 사례를 다루고자 한다.
"'왕게임' 빌미로 아동과 성관계한 20대 2명 '집행유예'" (출처 : SBS 뉴스, 링크는 댓글에)이라는 제목에 삽입된 일러스트레이션을 보면, 성인 남자가 성인(또는 성인에 가까운) 여자를 강압적으로 잡는 이미지, 즉 성적 학대가 시작되었음을 암시하는 이미지다. 텍스트보다 훨씬 강력한 영향력 또는 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시각적 재현물이다.
이런 일러스트레이션이 포함된 기사에서 독자는 머리로는 이런 범죄가 '나쁘다'라고 생각할지라도 무의식적으로 성적 학대의 장면을 '쾌락적 감각'으로 상상하게 된다. 그리하여 독자는 문화적으로 에로틱한 성적 폭력을 즐기는 DNA를 갖게 된다.
내가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바, 시각 양식을 다루는 미디어에서 이런 행태는 습관이자 무의식이다.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습관, 성적 학대/폭력을 '야하게' 감각하는 습관이 뿌리 깊게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재현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메시지를 통해서는 문제의식을 전달하고, 이미지를 통해서는 에로틱한 강간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미디어의 자기 분열적 양상은 '보통'의 관행이 되는 것이다.
2. '에로틱한 성폭력'의 이미지를 공유하지 말자
여성 및 아동 대상 폭력에 반대하는 사람들, 심지어 반성폭력/반성매매 활동가조차도 흔히 '에로틱한 성폭력' 이미지가 포함된 기사를 공유한다. 물론 사건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런 기사가 공유되고 확산되면 거기에 딸려오는 이미지에 그만큼 많은 이들이 노출된다. 시각적 재현물의 영향력을 너무나 강력해서 그것에 노출되는 것만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에로틱한 성폭력'의 이미지를 공유하지 말자. 대신 '에로틱한 성폭력'의 이미지를 끝없이 재생산하는 기사 생산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자. 그러한 실천을 통해 우리는 문제적 기사 생산 관행을 바꿀 수 없더라도 부지불식 중에 자연스럽게 각인되는 '폭력의 선정화'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그러한 '탈-자연화'를 통해 적어도 자기 자신은 구할 수 있다. 스스로를 구할 수 있다면, 그게 어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