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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ked Aug 29. 2023

24. 명상과 과학(2)

- 과학적이라는 환상

1. 과학적 증명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1-1. 과학적 증명이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

보통 명상에 대한 과학적 증명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뇌과학에서 얘기하는 것으로, 뇌 자체에 대한 기능과 능력에 대해 기계적인 장치로 측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앞에서 말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통계적인 실험이다. 

예를 들어 뇌세포인 뉴런에 대해 연구하여 뇌의 작용을 파악한다. 대뇌는 기억이나 판단, 추리 등의 정신활동을 담당하고, 소뇌는 몸의 근육 운동을 조절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연수는 호흡 심장박동 등을 조절하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필수적인 활동을 한다고 한다. 변연계는 감정, 행동, 욕망 등의 조절에 기여하며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것들은 뇌과학 분야에서 증명해낸 과학적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은 뇌의 기능이 존재하는 장소를 알려주고 궁금증을 해소해주기는 해도, 우리가 이것들을 모르더라도 생각을 할 줄 모르거나, 감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욕망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런 마음들이 일어나는 육체적인 장소일 뿐이다. 명상을 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생각과 감정과 욕망을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것이지, 이런 기능들이 뇌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해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문제는 이런 과학적 증명은 사람들에게 착시를 일으키게 한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기존의 명상법들이 마치 과학적이지 않고 비합리적이며 심지어는 신비한 주술적인 느낌을 주고, 과학적 증명을 하는 현대의 서구명상은 마치 선진적이며, 합리적이며, 상대적으로 훌륭한 명상법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1-2. 과학적 증명이 인간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가?

명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 필연적으로 겪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괴로움이 오더라도 그 괴로움에 빠져있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을 제시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명상에 대한 과학적 증명은 사람이 가지는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명상의 작동원리가 아니라 명상을 통해 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증명이고, 통계적 실험을 통해서는 명상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알려준다.

과학적 증명은 명상을 통해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할 뿐이다. 임상적인 실험을 통해 명상의 효과를 증명해내는 것이 많다. 하지만 심리학에서 바라보는 명상은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그들은 심리학에 명상을 담으려고 하지만 뒷부분에서 말하는 종교적인 색채, 즉 연기설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명상의 기법들은 심리학적 명상일 뿐,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그래서 이런 과학적 증명은 인간의 괴로움의 현상은 단편적으로 완화할 수는 있어도, 그 깊은 이면까지는 들어갈 수 없게 된다.     



2. 과학적 통계란?


2-1. 과학적 통계에 오류는 없는가?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는 다르게 인간 그 자체나 관계, 그리고 인간의 삶이 녹아있는 사회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사회과학적 실험은 통계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통계는 여러 함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표본의 오류’, ‘잘못된 조사 방법’, ‘잘못된 인과관계 추론’,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 편향’이다. 이런 오류로 인해,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 명상에 대한 심리학적인 실험은 과학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특히 서구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명상은 기독교적인 문화에서 살고 있는 학자들의 편향된 시각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2-2. 과학적 통계가 없는 기존의 명상은 검증되지 않은 것인가? 

다른 명상법들은 논외로 하더라도, 불교에 기초한 명상법 즉, 사마타와 위빠사나, 그리고 선명상은 사실 따지고 보면 짧게는 백 년, 길게는 천 년 이상, 수많은 수행자가 직접 수행하고 체득하면서 내려온 방법들이다. 이런 방법들은 각각의 수행 전통으로 내려왔고, 부작용이 없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비록 과학적 통계는 없지만 이런 수행 전통들이 비과학적일 수는 있어도 비합리적이거나 비상식적인 것은 아니다.     



3. 서구 심리학에서 명상의 중요한 요소인 Sati를 Mindfulness로 번역하고 의미를 정의할 때 종교적인 색채를 빼고 정의했다고 한다.


3-1. 여기에서 말하는 종교적인 색채는 무엇일까? 

   무엇이 종교적인 색채이길래 심리학적 명상에서는 빼버렸을까? 심리학적 명상은 남방불교의 사마타 위빠사나명상에 그 기원을 둔다. 남방불교이든 북방불교이든 불교엔 명상적인 부분과 종교적인 부분이 있는데, 이 두 줄기의 뿌리에 해당하는 사상이 존재한다. 그것은 ‘연기설’이다. 연기설은 세상을 보는 이치이며, 이 연기설에 근거해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이 ‘윤회’이고 ‘업’이다. 이 연기설과 윤회설은 기독교사상과 공존할 수가 없다. 서구의 기독교사상은 창조설에 기원을 두고 절대적인 완전한 신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한다. 세상과 인간이 절대자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이 창조설이며, 연기설은 기독교의 창조설과는 완전히 반대의 관점인 것이다. 이 연기설과 윤회설은 불교의 종교적인 부분은 물론 명상적인 부분에서도 절대적인 사상이다. 다시 말하면 불교명상에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연기(緣起)를 깨닫는 것이고, 이것이 불교명상의 처음이자 끝인 것이다. 하지만 서양의 심리학자들이 사마타와 위빠사나명상을 서구에 들여올 때, 서구 기독교사상과의 사상적 충돌에서 벗어나려고, 연기설을 종교적인 색채라고 규정지었고, 이를 제외한 명상의 기법만 빌려 심리학적 명상을 발전시킨 것이다. 하지만 불교명상에서 연기설은 인간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절대 필요한 기본적인 사상인 것이다. 


3-2. 종교적인 색채를 뺀 Sati의 개념이 정확한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종교적인 색채라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명상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연기설이다. 이 연기설을 제외한 사띠의 개념이 과연 정확한 의미인가? 사띠는 서양에 Mindfulness로 번역되고 다시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마음챙김이 되었다. 마음챙김은 두 가지의 관점이 존재한다. 마음을 챙기는 자. 마음챙김의 대상이 되는 자. 이렇게 두 가지의 관점이 존재하게 된다. 문제는 이 두 가지 관점 모두 ‘나’라는 사실이다. 좀 복잡한 얘기지만 마음챙김을 하는 순간, 대상과 관찰자가 동일인이기 때문에, 관찰자도 대상이 되어버리기 쉽다. 자신은 마음챙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말해 관찰자인 자신이, 관찰 대상인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순식간에 두 관점은 붙어버리기 일쑤이다. 욕망이 욕망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명상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그것은 ‘연기(緣起)’를 보고 ‘무아(無我)’를 보며 ‘공(空)’을 보는 것이다. 이것은 ‘존재(存在)로서의 자아’는 인정하지만 ‘실체(實體)로서의 자아’는 부정하는 것이다.      


4. 서구 심리학이 명상을 제대로 담을 수 있는가?

심리학은 발전을 거듭하면서 마음에 병이 있는 사람들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사람의 마음을 분석하고 연구하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병에 이름을 부여하고,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많은 방법을 개발해냈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다. 이런 이유에서 심리학에서는 명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명상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명상을 활용한 치유법은 분명 효과가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명상을 활용한 치유법은 단지 치유법일 뿐이지 명상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심리학에서 명상을 해석하고 연구하는 것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려는 것과 같다고 생각된다. 심리학이라는 틀을 속에 명상을 집어넣으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 이유는 심리학은 말 그대로 마음(心)의 이치(理)를 연구하는 학문이고, 명상은 마음 자체를 연구하고, 체험을 통해 마음의 괴로움을 없애며 나아가 마음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코끼리가 들어갈 정도로 큰 냉장고를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코끼리를 해체하여 일부만 넣는 것이다. 해체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면 코끼리고기일 뿐 더 이상 코끼리가 아니다. 아직 심리학이 명상을 포함할 정도로 심오하거나 큰 학문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의 심리학에서 명상이라고 하는 것은 코끼리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즉 심리학에서 치유법으로 명상을 활용하기는 하지만 명상의 모든 의미를 담지는 못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과학의 시대이다. 모든 것이 과학으로 증명되고 과학으로 대답한다. 과학은 인간을 무지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고, 비합리적인 삶에서 더욱 상식적인 삶을 살도록 도와주었다. 

하지만 인간 그 자체가 비합리적이며 비과학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과학이 발달한다고 해서 인간을 해석할 수 없다. 더구나 과학은 늘 진행형이기 때문에, 인간을 해석하는 이론을 구하는 순간, 또 다른 이론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과학 자체의 중요성은 현대 사회에서 말할 필요도 없이 크지만,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수많은 비합리적인 폭력성도 존재하게 된다. 과학은 어쩌면 현대 사회에서 필요한 또 다른 형태의 종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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