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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은정 Jun 12. 2015

재취업의 뫼비우스띠

선택의 나의 것 

애석하게도 한 직장에서 뿌리를 박고 일하지 못했다. 짧게는 3.5개월 길게는 1년반 정도를 다니고 그만두길 반복했는데 그때마다 직장만 새로고침한 것이 아니라 직업도 바뀌었다. 


첫 직장은 방송국이었다. H.O.T.(점을 반드시 찍어야 한다) 토니의 팬이었던 나는 기어코 방송국에 입성하여 그와 직업적 동지애를 나누길 꿈꿨는데, 별다른 이변 없이 대학을 졸업한 뒤 지상파 예능국의 막내작가로 일하기 시작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구질구질하므로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이곳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작가 일을 한다는 8년차 언니의 오늘이 나의 미래가 될까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 다음 격전지는 인문역사서를 다루는 출판사였다. 국문학을 전공했고, 대학교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으며, 온라인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지난 이력과 제법 잘 어울리는 직장이었다. 추가 합격으로 간신히 붙었던 편집자 양성 교육과정도 한몫했을 것이다. 편집자라는 직업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듯 매의 눈으로 오탈자를 찾아내고 저자가 쓴 원고의 잘못된 팩트를 발견할 때는 희열마저 느꼈다. 월급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책을 만드는 중차대한 역사적 임무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명감도 더러 있었다.(다행히 이것이 얼마나 어줍잖은 감상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편집자로 1여 년을 보냈을 즈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질법한 일상적인 불만들이 쌓이고 쌓여 나에게도 퇴사와 이직을 고민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일하는 틈틈이 구직 사이트를 훑어 보았고, 병원에 다녀오겠다는 핑계를 대고서 파주로 면접을 다녀오기도 했다. 물론 면접은 미끄러졌고 마땅한 구직자리가 보이지 않았므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회사로 출근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어느날', '문득'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어쩐지 신뢰하지 않는 편이지만, 나에게도 그 '문득'의 순간이 불현듯 찾아왔다. 그리고 어떤 속삭임이 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갔다.  


"왜 굳이 재취업을 해야 하는거지? 여행을 갈 수도 있고 아쉬웠던 공부를 해도 좋을텐데 말이야." 


의문을 품은 질문은 늘 골치가 아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도통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도저히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생각의 꼬리잡기는 며칠째 이런 패턴이었다. 


'회사를 그만둔다 - 다음 회사를 찾는다 - 회사를 다닌다 - 언젠가 회사를 그만둔다 - 다음 회사를 찾는다 - ??'


서글펐다. 애초부터 그런 운명을 짊어지고 태어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퇴사-재취업의 절차를 밟고 있다는 사실이. 여기엔 어떤 의심과 갈등조차 없었다. 더 서글픈 건 이 모든 판을 짜고 제안한 장본인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점이었다. 한편으로는 청개구리처럼 굴고도 싶었다. 20대 후반을 앞둔 여성이라면 으레 거쳐야 할 단계들-안정적인 직장과 결혼, 출산-을 역주행하고 싶은 마음이 겉잡을 수 없이 일기 시작했다. 월급쟁이든 자영업자든 평생 밥 벌어먹을 걱정을 껴안고 살아야 한다면, 그렇다면 그 시기를 아주 조금은 늦춰도 괜찮지 않을까. 


 A출판사와 B출판사, C출판사를 견주며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원 입학과 사진 공부와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와 백수의 삶을 두고서 끙끙 앓고 싶었다. 재취업은 다양한 옵션 중의 하나일 뿐이다.  나는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내게 주기로 했다. 


북아일랜드에서의 생뚱맞은 1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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