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7. 매일 매일 너를 위한 선물을 생각해
"믿겨지니? 초 대신 전구를 사용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야.”
카인이 트리에 촛대를 걸며 감회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트리에 촛불이 옮겨 붙어 화재가 날 뻔한 이후 올해는 LED 전구와 초를 함께 쓰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밑동이 잘린 전나무 아래쪽에는 별처럼 깜빡이는 전구가, 그 위로는 하늘거리는 촛불이 거실을 환하게 밝혔다. 크리스마스를 덤으로 얻는 휴일 정도로 여기는 나조차 눈앞에 펼쳐진 따뜻한 풍경에 속절없이 물들고 말았다.
몬그랜지의 12월은 25일 단 하루를 위한 준비 기간과도 같았다. 매일매일이 크리스마스 전야제다. 어른들이 크리스마스카드와 선물, 연말 홀리데이를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은 어드벤츠 캘린더의 1일부터 24일까지 하나씩 숨겨진 초콜릿을 꺼내 먹으며 최후의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베이커리는 어느 워크숍보다 분주했다. 크리스마스 시즌 디저트인 민스파이와 파운드케이크를 굽느라 쉴 틈없이 오븐이 돌아갔다.
크리스마스 선물 쇼핑을 위해 신혜와 더블린을 찾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이토록 많은 선물을 준비하기는 태어나 처음이었다. 4명의 빌리저와 하우스패런츠 가족, 시크릿 산타의 짝이 된 코워커까지 모두 9명. 12월 내내 선물에 관한 생각만 한 것 같다. 한정된 금액 안에서 각자의 취향이 반영된 물건을 고르기란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선물을 한다는 건 나의 안목과 센스가 은근히 드러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천만다행인 건 매달 100파운드씩 지급되던 포켓머니가 12월에는 두 배인 200파운드라는 사실이었다. 크리스마스 보너스인 셈이다.
더블린 시내의 한인 마트에서 컵라면과 햇반을 구입하고 순두부찌개까지 배불리 먹고 나서야 본격적인 쇼핑에 나섰다. 여느 유럽 도시가 그렇듯 더블린 역시 성탄절 무드로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촘촘히 엮은 작은 전구 불빛이 은하수처럼 사람들 머리 위로 흘렀고, 상점마다 흘러나온 캐럴은 한데 섞여 합창이 됐다. 아쉽게도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크리스마스 마켓은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아직 시기가 이른 탓인지 본격적으로 개장하기 전인 듯했다.
발길은 자연스레 리피 강 남쪽으로 뻗은 그래프턴 거리로 향했다. 더블린의 가장 번화가인 이곳을 나는 음악 영화 <원스>를 통해 먼저 알게 됐다. 악기 상점 앞에서 버스킹을 하던 글렌 핸사드와 꽃을 파는 마르게타 이글로바가 마주쳤던 거리, 소매치기를 쫓아 내달리던 성 스테판 공원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 스크린 속의 주인공이 떠난 자리에는 더블린의 젊은 음악가들이 한창 버스킹공연 중이었다. 대구의 오래된 독립영화관에서 <원스>를 세 번이나 관람했던 내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이 거리에 오게 될 줄 그때의 나는 상상이나 했을까. 한동안 영화 OST에 푹 빠져서 지냈던 스물둘의 내가 떠올라 기분이 묘했다. 가끔 글렌 핸사드가 그래프턴거리에서 깜짝 공연을 연다던데 아쉽게도 그런 드라마틱한 순간이 찾아오진 않았다.
아일랜드 기념품점과 축구용품 매장, 중고 서점, 편집숍을 오가며 선물을 고르는 일은 퍽 재밌었다. 상대가 필요로 할 만한 물건을 떠올리기 위해 그와의 지난 추억을 하나씩 되짚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무심코 흘린 말과 표정들을 다시 붙잡아보려 애썼다.
동물만 보면 반색하는 헬렌을 생각하며 얼룩소가 새겨진 머그잔을, 스포츠를 좋아하는 토마스를 위해 축구에 관한 일러스트북을 골랐다. 카인과 조 부부를 위해서는 선물보다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카드를 고르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카인은 생일 카드와 기념엽서를 서랍에 곧장 보관하지 않고 거실과 복도 곳곳에 한동안 진열하는 습관이 있었다.
선물을 핑계로 간만에 적극적인 소비 활동에 나선 것 역시 은근한 즐거움이었다. 잠들어 있던 감각 하나가 눈을 뜬 기분이었다. 몬그랜지에 온 이후 나는 옷과 액세서리, 잡화 등을 구입하는 소소한 씀씀이를 거의 잊고 지냈다. 킬킬의 세컨드 핸드 숍에서 중고 스웨터와 점퍼, 털모자를 공짜로 얻어 입었고, 아무렇게나 자란 긴머리카락은 해영이 부엌 가위로 댕강 잘라주었다. 미용사의 섬세한 손길은 닿지 않았지만 컨트리사이드에 제법 어울리는 단발머리였다.
이런 절약 생활이 궁상맞거나 처량하게 느껴진 적은 결코 없었다. 포켓머니를 모아 귀국길의 여행 경비로 쓰겠다는 명확한 계획이 있었고, 무엇보다 최소한의 소비만으로도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일상적인 스트레스를 번번이 소비로 해결했던 지난 나를 떠올리면 이것은 큰 변화였다.
치장하는 일에 어느 정도 무심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매일 먼지를 뒤집어쓰며 노동을 하는 데다 외모로 누군가의 환심을 살 필요가 없는 이곳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의 외모 지상주의는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영화 <비포 선셋>의 셀린은 “소비를 하지 않으니 내면이 풍부해졌다”고 말하던데. 내면의 성숙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예전보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음을 느꼈다. 기분 전환 삼아 혹은 파티에 가기 위해 스스로 화장대 앞에 서는 경우를 제외하면 누군가를 위해 마스카라를 바르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더블린의 랜드마크인 120미터 높이의 더 스파이어 첨탑을 지나 템플바 구역으로 걸음을 옮기자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됐다. 펍의 도시답게 골목 구석구석 자리한 수십 개의 펍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이곳에서는 캐럴 대신 흥겨운 아이리시 음악이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함께 거리로 쏟아졌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아직 오후 5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각이었다.
아무래도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행복을 감지하는 기관이 평소보다 예민해지는 게 틀림없었다. 바닥으로부터 몸이 한 뼘쯤 붕 뜬 듯한 기분으로 길을 걷던 중 불현듯 차가운 기운이 볼 위로 톡 닿았다. 신혜와 내가 얼굴을 마주 보며 설마 하는 찰나, 우리 옆을 지나가던 더블리너가 들뜬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Hey! It's s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