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6. 어딜 가든 삶은 따라온다
아이스크림을 얹은 와플을 맛보는 게 대체 얼마 만인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팬시한 카페에 앉아 나와 신혜는 실없이 웃고 말았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도시가 싫다며 시골 중의 시골까지 제 발로 온것을 기뻐하더니 이제는 기껏 와플 한입에 마음이 들떴다.
아이스크림 가게를 나와 북아일랜드의 최고봉 슬리브 도너드를 배경으로 파스텔 톤의 건물이 늘어선 메인 거리를 걸었다. 얼핏 런던의 노팅힐을 떠올리게 하는 아기자기한 풍경의 한쪽에는 아일랜드해가 펼쳐져 있었다. 벨파스트처럼 대도시의 번잡함은 덜하되 킬킬보다는 다양한 문화 시설을 갖춘 뉴캐슬이 나는 무척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눈을 정화시키는 아름다운 자연이 도시 주변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매일 아침 이런 풍경을 마주하는 일상은 얼마나 풍요로울까. 하지만 슬리브 도너드를 오르거나 해변에서 물장구를 치는 날은 몹시 드물 것이다.
어쩌면 나는 자연 그 자체가 아닌, 자연이라는 이미지를 선망해왔던 것 아닐까. 여유, 느림, 선한 사람들, 건강함 같은 단어를 나 좋을대로 자연에 덧씌운 것인지도 모른다. 마루야마 겐지의 《시골은 그런것이 아니다》를 읽다 보면 시골 생활에 대한 철없는 로망이 산산조각난다. 예컨대 이런 문장.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생활환경으로는 가혹하다는 의미입니다.”
돌이켜보면 지금껏 내가 누려온 자연이란 엄밀히 말해인공적으로 가꿔진 장소들이었다. 걷기 좋게끔 정비된 공원과 트레킹코스, 나무 데크, 곰팡이가 슬지 않은 산장을 즐기며 자연의 품이 안락하다고 느꼈다. 정해진 루트에서 단 몇 발짝만 벗어나도 나는 어둠에 갇힌 아이처럼 겁에 질리고 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무와 꽃은 좋아하지만 다리 많은 벌레는 질색인 내게 몬그랜지의 환경은 더없이 안성맞춤이었다. 지리적으로는 고립되어 있지만 시골의 원초적인 불편함은 조금도느낄 수 없다. 잠자리는 깨끗했고 인터넷 속도는 원활했으며, 40여 분 남짓 소요되는 안락한 산책로를 언제든 걸을 수 있었다. 가혹함이라곤 없는 환경을 기꺼이 누리며 사람들은 건강하게 제 몫의일을 해내면 될 뿐이다.
건강하게 노동한다.
그것은 밤을 꼬박 새우거나 주말을 상납하면서까지 서로를 착취하지 않음을 의미했다. 그 대신 몬그랜지에선 매일의 성실함을 요했다. 계절 내내 밭을 갈고 수확한 것으로 한 끼 식사를 마련했다. 매일 한 가닥씩 베틀을 짜다 보면 어느새 커다란 카페트가 완성되듯 1년을 살아냈다. 그토록 꿈꿔 왔던 낭만적인 슬로 라이프였다.
하지만 현실이 된 꿈이 완전한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성실을 바탕으로 반복되는 일상은 때로 너무나 지루했다. 당장 손에 잡히는 성취가 없으니 열심히 임하겠다는 동기부여가 약해졌고, 스스로가 나태한 사람처럼 느껴져 죄책감에 빠지는 날도 더러 있었다.
그렇게 종잡을 수 없는 상태로 반년쯤 지냈을까. 더디게 움직이는 몬그랜지의 일과에 안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줄 알았던 달팽이가 실은 최선을 다해 조금씩 이동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분명 나아가고 있었다. 정해진 일과 동안 필요한 만큼의 일을 하는 것이 마치 게으름을 피우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던건 초과 노동의 경험에서 기인한 슬픈 부작용이었음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느슨한 일상이란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지 시간적 여유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신혜와 나를 비롯한 한국인 코워커들이 기대한 캠프힐은 아마도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더 이상 허겁지겁 달리지 않아도 되는 삶. 직장과 학업, 심지어 결혼마저도 뒤처질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삶. 적어도 몬그랜지는 나의 그런 기대를 얼마간 충족해 주었다. 비교와 경쟁이 제거된 환경 속에서 나는 훼손된 독립성을 회복해갔다. 필요한 타이밍에 숨을 고르고, 잠시 쉬어 가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간 뒤에도 내가 지금의 마음가짐을 지켜낼 수있을지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 까닭에 2 년차를 맞은 신혜의 고민은 깊은 미궁에 빠져있었다. 간호사였던 그녀는 해외에서 정착해 살고 싶어 했다. 연봉이 높은 대학병원은 그 대가로 일상을 앗아갔고,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개인병원은 턱없이 적은 월급을 지급했다. 한국으로 돌아간들 차악과 차악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불 보듯 뻔했다. 그렇다고 해서 해외 취업이 만만한 도전인 것은 또 아니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대체 어디로 향해야 하는 것일까. 직업군이 다를 뿐 나 역시 신혜가 처한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부끄럽게도 이곳에 오면 모든 고민거리가 자연히 해결될 줄 알았다. 대책 없는 긍정이었다. 혹은 그저 당장의 처지를 벗어나는데만 혈안이 되어 나 자신을 속여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딜 가든 삶은 따라온다’는 마루야마 겐지의 따끔한 충고는 옳았다. 우리는 여전히 다음을 걱정하고 또 두려워하는 중이었다.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예전보다 우리가 더 많은 가능성을 품게 되었다는 것이다.